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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hyuk kim Dec 07. 2019

저도 당신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류학자의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를 읽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는 제목과 함께 저자의 독특한 이력에 이끌려 산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의료인류학자다. 책 속에 의료인류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와 있지 않지만 흡연과 중독, 감정노동과 공황장애, 이주노동과 자살 등 저자가 연구해온 이력을 통해 어림짐작해본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몸’과 ‘아픔’은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이 책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건, 베트남 전쟁과 같이 우리가 잘 아는 사례뿐만 아니라 콜센터 직원 자살 사건, 이주노동자 산업재해, 뇌 병변 장애 치료를 위한 의료용 대마 불법 수입 시도 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아픔’에 대한 기록들이 담겨있다.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이 책의 제목이 이해가 간다. ‘아픔’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한 셈이다.


이 책은 저자의 배려로 보다 쉬운 설명과 개념들로 이루어졌다. 의료인류학에 대한 심도 있는 서술이나 최신 경향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조금 아쉬운 책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딱딱한 논리로 자신의 의견을 설득시키기보다 보편적인 감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쪽을 택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아픔이 너무 많은 게 아니냐고 말이다. 저자는 의료인류학을 낯설어할 독자들에게 인류학이 우리와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라 ‘지금-여기’를 응시하는 도구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중독’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 신선하고 사려 깊다고 느꼈다. 저자는 중독이라는 단어에 담긴 우리의 편견을 되돌아보자고 말하며 ‘일상적 중독’이나 ‘삶이 유발하는 금단증세’와 같은 개념을 꺼내든다. 중독을 당사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비난하고 싶은 생각을 잠시 꺼두자고 말이다. 중독이 또 다른 낙인이 되는 악순환을 막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다. 비단 원인을 규명해야 하는 의사 대신 이해를 우선으로 하는 인류학자의 모습이 앞서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중독은 결핍의 산물’이라는 문장이 아프다.


이 책을 읽기 전 또는 읽은 후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공감’, ‘연대’라는 실천과 어떻게 연결고리를 맺고 있는지, 더 촘촘한 논리가 궁금한 독자들에게는 이 책에도 발췌 등을 통해 등장하는 『사람, 장소, 환대』(김현경, 문학과지성사)를 추천하고 싶다. 또는 ‘고통’이라는 주제를 밀고 나가 구조적 폭력을 겪은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고통은 어떻게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는지 알고 싶은 이에게는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엄기호, 나무연필)를 권한다.


이 책에는 저자의 물음이 자주 등장한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저자를 포함해) 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는지,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와 같은 물음들 말이다. 처음에는 너무 자주 등장하는 저자의 물음표가 정제되지 않고 무책임하다고까지 생각했다. 저자는 문제 제기뿐만 아니라 대안 제시에도 책임이 있는 전문가가 아닌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저자는 독자가, 이 책을 읽는 우리가 되묻는 힘을 기르기를 바랐던 것인지 모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말이다. 아픔이 허다한 사회에서도 ‘희망’을 품도록 말이다. 우리가 문제의 원인을 바로 파악하고 잊지 않을 때 비로소 희망은 생겨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질문을 통해 희망을 기르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그간 잊고 있던 기형도 시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비가2-붉은 달>이라는 시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누가 떠나든 죽든/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이 책을 읽으며 주위 사람들이 생각났다. 연락에 인색한 탓에 제대로 된 안부를 전하지 못했다. 이 글을 빌려 염치없이 안부를 전한다. 잘 지내는지. 나는 당신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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