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iru Oct 20. 2016

새벽별을 따라

케냐산 등반기 (3) - 4,985m까지의 기록

잠에 든 것같지도 않은데, 가이드가 조용히 와서 깨워준다. 등산 가자고.


갓 튀긴 팝콘을 준비해주고, 새벽 등산에 필요한 헤드랜턴을 챙기고, 장갑도 필수라며 챙겨준다. 기대와 흥분보단 걱정과 피곤이 둘러싼 나에게 가이드는 청정자연 속, 4,200m의 밤하늘을 보라며 또 챙겨준다. 별 사이에 까만 밤하늘이 있는 것 같았다. 은하수가 뚜렷히 보이는 케냐산의 밤하늘은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가장 아쉬운 장면 중 하나이다.


어쨌든 어제 손가락으로 가리켜준 경로를 따라 새벽 등산을 시작했다. 역시 보이는 것처럼 정상을 향한 길을 훨씬 더 가파르고 험난했다. 분명히 산을 오르며 더 힘들고 있는데 날씨는 더 춥게 느껴졌고 어느순간 나타난 눈, 얼음은 발걸음 하나 하나를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암벽등반가들이 좋아한다는 케냐산답게 바위를 딛고 올라야할 곳도 있어서 왜 장갑을 챙겨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밤새 카드게임을 하고도 앞서가던 다른 한팀도 유난히 느린 우리의 걸음과 비슷한걸보니 정말 힘든 코스인가보다. 힘들면 별을 보며 기운을 내라는 가이드의 말이 무색하게 발만 보며 쫓았고, 그렇게 한참을 오르다 날이 밝았는지도 알 수 없던 순간, 바위 틈 사이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일출을 기다렸다. 비록 정상에서 보지 못했지만, 산을 넘어 떠오르는 일출은 아마 내평생의 기억에 남아도 좋을만큼 경이로웠다.

하루의 시작과 함께 다시 힘을 내어 정상을 향해 가자는 마음으로 일어섰고, 눈앞에 보이는 정상이 보였다. 가이드에게 들뜬 마음으로 저곳이냐고 물었는데, 저기를 넘어 보이는 더 높은 곳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라고 했다. 이미 바위산을 2시 30분부터 6시까지 오른 나는 목표를 잃어버린 마음에 기운이 빠져나갈데로 빠졌다. 어이없는 마음에 웃음을 짓자, 그렇게 웃는걸 보니 좋다며 힘을 내자고 자기도 씨익 웃는다. 나는 정말 이사람이 없었으면, 아마 정상을 못갔을거다. 


바위를 짚고, 기어가다시피 하여, 목적지라 생각했던 곳을 넘어 진짜 Lenana Point 4,985m의 입구에 다다랐다.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여기구나, 여기가 진짜 최종목적지구나. 라는 마음과 함께 포기하지 않은 나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다. 더이상 힘들지도 않았다. 힘들지 않으니, Lenana point가 선물하는 최절정의 케냐산 절경이 눈 안에 들어왔다. 밤사이 빼곡히 수놓았던 어둠이 지나고, 이 높은 곳에 케냐산이 숨겨놓은 절경이 나의 인생 가운데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는 것이 더할나위 없는 축복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 아직 남아있는 빙하를 가리키며, 가이드는 우리에게 아직 이 빙하를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매우 행운이라 했다. 함께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서먹했던 두그룹도 함께 사진을 찍으며 이 기쁨을 마음껏 표현했다. 그 누구하나 더이상 힘드니 쉬고 싶다는 사람 없이 우리는 Lenana point가 준비한 선물을 마음껏 기뻐했다. 한참을 즐기고, 미끄러져 내려오며 아침에 못다한 잠을 자고 다시 OLD MOSES CAMP를 향해 걸었다. 정상에 대한 부푼 마음 때문인지, 내려오는 길이 아쉽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산을 오르고 내리며 그 어떤 날보다 가장 힘들었던 셋째날, 늘 긍정적이고 차분히 우리를 안내해주던 가이드도 새벽 내내 힘이 들었는지, 내려오는 길에 꽤 긴 시간동안 쪽잠을 청하기도 했다. 

케냐산에서 만난 야생 사슴과 동물

그날밤 우리는 우리가 해낸 이 모든 일의 공을 우리의 가이드와 요리사, 포터에게 돌리며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MOSES CAMP로 돌아오니 아침의 일이 꿈처럼 우리가 올랐던 봉우리도 시야에서 가려졌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내가 그곳에 있었고, 그 기분과 경험이 나에게 주었던 감동과 감격의 마음이 오래된 선물처럼 남아 있었다. 이미 케냐산을 내려온지 한참이 지났고, 나는 일상에서 살고 있지만 언제 꺼내보아도 기분 좋아지는 이 기분을 보아, 케냐산은 내가 나 스스로에게 선물한 선물 중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었다고 나에게도 고마움 마음을 전해본다. 


---


[케냐산 3일차 일정]

02:20 기상 및 준비

02:40 등산 시작

06:00 일출

07:00 4,985m Lenana Point 도착

07:40 하산

09:00 SHIPTON CAMP 도착 및 아침(바나나 팬케이크, 씨리얼, 소시지, 토스트)

10:30 낮잠

11:00 OLD MOSES CAMP로 출발

13:30 점심 - 중간에 요리사를 만나서 요리를 해줌(누들, 아보카도 샌드위치)

17:00 OLD MOSES CAMP 도착  

19:00 저녁(짜파티, 콩요리, 과일)


[케냐산 4일차 일정]

07:00 기상 및 아침(오믈렛, 삶은계란, 소시지, 과일, 팬케익)

08:00 하산시작

11:00 케냐산 입구 도착 및 나이로비 출발

13:30 나이로비 도착


3박 4일 등산비(이동,식사, 가이드비 포함) 28,500실링

-레지던스 입장료 적용비

작가의 이전글 오래 전, 그대로의 아름다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