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라무섬' 여행기
5천 마리의 당나귀가 골목골목을 누비는 작은 섬마을 '라무'. 2015년 가리사 테러 이후로 소말리아와 가까운 지역은 테러 위험 지역으로 지정되었고, 크고 작은 테러의 위협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그 경계의 바로 밑 '라무섬'만큼은 예외이다 (물론 나도 출발 직전까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14세기 아랍과의 무역으로 자연스레 그 문화를 받아들이며 라무는 독특한 문화를 창조해나가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의 침략, 영국의 식민지로 노예무역이라는 가슴 아픈 역사도 지니고 있지만, 그 아픔을 딛고 여전히 그들만의 문화를 아름답게 지켜나가고 있다.
짧은 휴가 기간 동안 라무를 온전히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라무의 분위기, 그 섬의 삶의 현장 등이 그립다.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 후 꼭 가고 싶다고 했던 '라무섬'. 여행 내내 나 또한 그가 어떤 매력에 이끌려 이곳을 버킷리스트에 올렸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열하기에도 부족한 라무섬의 아름다움 매력 몇 가지를 꺼내보고자 한다.
1. 배에서 만끽하는 일몰, 선셋(Sun set) 투어
라무섬 작은 크기에 비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올드타운'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해변의 '쉘라 비치', 평화로운 '만다 섬' 등 다양한 여행코스가 가득하다. 특히 오후 5시를 조금 넘긴 시각, 쉘라 비치를 출발하여 여유롭게 해변을 떠돌다가 바다 중간에서 일몰을 바라보는 선셋(sun set) 투어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로 꼽을 수 있겠다. 스와힐리, 모잠비크 스타일 등 정교한 나무배가 한가로이 떠다니고 뱃사공들이 노랫소리가 더할 나위 없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해가 지는 시간을 짧지만,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 넉넉한 시간 동안 바라보는 바다의 변화가 신비롭기도 한 여행이다. (보트 대여비 - 5,000실링)
2. 스와힐리 문화를 구석구석 체험하는, 라무 '올드타운'
새하얗고, 소박한 올드타운의 입구 앞은 당나귀와 사람들만이 서성인다.
'올드타운'은 라무 여행의 진주와도 같은 곳이다. 무엇보다 '스와힐리'문화를 깊이 느끼며, 그들의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담아낼 수 있는 곳이다. 워낙 독특한 문화가 깊이 자리 잡은 곳이라, 진짜 라무를 더 알고 싶으면 '가이드'와 함께 다니며 구석구석을 걱정 없이 둘러보고 설명도 들으며 다니는 것이 훨씬 좋다. 우리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신 나이가 지긋한 '가이드'아저씨를 만나서 집에도 들어가 보고, 기념품도 적정 가격으로 살 수 있었다. 마치 돈을 벌기보다 '라무'자체에 대한 소개를 즐기시는 분이랄까.
라무에는 정부 관계 차량 3대 만을 제외하고, 차가 없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것을 불평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좁은 골목길을 당나귀와 함께 움직이고, 당나귀 병원도 있을 정도로 당나귀는 라무섬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다. 또 집 앞마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조각을 빼곡히 세워놓은 몇 백 년씩 된 대문들은 예술 작품을 보는 기분이 든다. 골목 곳곳에 널찍한 나무에 조각칼로 하나하나 새겨가고 있는 모습은 마치 오래전에도 그랬듯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이드비 - 2,000실링)
3.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는, 낚시 투어
라무섬은 무엇보다 해산물이 풍부하게 나는 곳이다. 랍스터, 게, 새우도 나이로비보다 훨씬 싼 가격이지만 신선도는 최고이다. 특별한 기구 없이 미끼를 단 낚싯줄 하나만 던져놓고 있으면 금방 입질이 온다.
아침 9시부터 시작되는 보트 투어는 중간중간 멈춰서 낚시를 하고 점심때쯤 '만다섬'에서 선장이 직접 요리를 해준다. 2시간 정도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초보 낚시꾼들은 8마리의 결실을 이루어냈다. 갓 잡은 생선을 숯불에 굽는 동안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보드라운 모래밭에 누워 태양을 즐기는 순간도 재미있다. 라무 여행에서 가장 재미있고, 신나는 여행이 아닐까 한다.(보트 투어 - 6,000실링)
4. 평화로운 여유가 가득한, 만다섬
어쩌면 지나쳐버릴 수 있는 코스이기는 하지만 나는 바닷가의 더운 날씨 속에 올드타운을 걸어 다니고, 당나귀를 타고 낚시도 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데에 만다 섬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만다 섬에 모여 살던 사람들이 물에 염분이 많이 포함되어 식수로 쓸 수 없게 되자 쉘라 비치나 올드타운 쪽으로 거주지를 옮겼다고 한다. 그렇지만 멀리 보이는 라무섬의 소박하고 귀여운 전경이 펼쳐진 아름다운 해변은 만다 섬에서 만 누릴 수 있는 풍경이다. 지나가는 사람도 몇 안 되는 무인도와 같은 섬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고즈넉한 분위기와 함께 여행의 피로를 풀어준다.
내가 체험한 여행은 크게 4가지였지만, 그 사이사이를 빼곡히 채워놓은 재미도 가득하다. 라무섬 트레이드마크인 당나귀를 타고 돌아다닐 수도 있고, 헤나 체험도 할 수 있다. 신선하고 맛 좋은 해산물 요리는 그 무엇보다 이 여행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운이 좋게도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의 사장님의 요리 솜씨가 유명하다는 음식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 거의 모든 식사를 굳이 게스트 하우스에 들려서 해결했다. 스와힐리 전통이 느껴지는 숙소도 마음에 들었다. 사장님께 진지하게 레스토랑 운영을 추천드리니,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주어서 지금 준비 중인데, 아직 이 소박함이 좋아 천천히 준비하고 싶다고 한다. 최고의 식재료에 넉넉한 사장님의 인심이 더해져 진정한 아프리카 전통 음식을 저렴하고 최고의 맛으로 즐길 수 있다.
<맨발로 걸어 다녀야 했던 특이한 숙소 / 전통 가옥 창문의 흔한 뷰>
<라무 요리왕, 사장님의 음식>
물론 관광 또한 주요 산업이어서 중간중간 친근하게 다가와 이런저런 흥정을 하는 이도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직하게 자신들의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문화를 닮아 아름다운 라무의 풍경이 여행을 마친 나에게 끊임없는 아쉬움을 선물한다. 그리고 라무는 나에게도 꼭 한번 다시 찾아오고 싶은, 그래서 다시 낚시도 하고, 만다해변에 누워 생선도 굽고 싶은 버킷리스트 여행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