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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Sep 05. 2023

오염강박에 대해서

진짜 오염이 문제일까?

안녕하십니까?

프로이튜븝니다


혹시 '물어보살'을 즐겨보시는 분들이 있을까요?

저도 가끔 보는데 이번주의 물어보살에서는

'오염강박'에 시달리는 분이 나왔습니다.

오염강박에 대해서 정신분석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강박증은 생각이 멈추지 않거나

특정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을 주로 떠올립니다.

강박증과 관련된 영화에서도 그렇게 묘사하는 측면들이 많고요

그런데 사실 강박증을 바라보는 스펙트럼은 훨씬 광범위합니다.

강박증에서의 세부사항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결합하고

또 그 결합된 것들이 의미를 형성합니다.

또한 정신작용의 메커니즘을 통해서 다양한 의미차원들을 형성해내기도 합니다

이런 복잡한 내용이 숨겨져 있으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당장 드러나는 내용만 가지고는 증상을 다루는데도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프로이트가 리비도 이론을 채택해서 증상을 설명한 이유가 그것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오염강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오염' 자체가 문제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오염보다는 '접촉'이 더 먼저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오염강박이라고 부르지만

그 자체를 접촉혐오라고도 말합니다.

접촉하는 것에 혐오감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접촉혐오의 예시는 영화에서도 잘 등장합니다.

세탁소로 달려가는 정석

영화 플랜맨에서 정석은 어디 닿는 것을 혐오합니다. 

고양이도 안지 못하고 악수도 힘들어하죠. 

주인공인 정석이 세탁소에 옷을 맡기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접촉한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죠.


제 과거 내담자 한분도 그랬습니다.

접촉혐오가 너무 심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분은 언제나 예쁜 옷을 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위 어디 닿기만 해도 그 옷을 가지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비싼 옷이라고 해도 버려야만 했죠.

그러니 직장에 면접 보러 갈 때, 정장 입고 면접 보러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어디 닿거나 하면 몇십만 원짜리 정장을 그냥 버려야 했던 겁니다.

그럼 또 일상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꼭 고치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쉽진 않습니다.


이 것은 어딘가 닿는 접촉 혹은 오염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이 것들이 우회로를 거치면서 전혀 다른 의미들과 관계됩니다.

죄의 문제와 관계가 되는 것이죠.

프로이트는 강박증의 이런 특징을 셰익스피어에서 찾습니다. 


멕베스에서 멕베스 부인이 몽유상태로 손을 씻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혼잣말로 자신의 죄를 씻어야 한다고 하죠.

이러한 메커니즘이 강박증에서는 꽤 많이 발견이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이 '죄'로 연결되는지를 검토해 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으로 증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드러나는 내용으로만 다루려고만 한다면 현상의 완화는 생겨날 수 있어도 사라지진 않는다는 겁니다. 

마치 약으로 증상을 줄이는 것과 흡사하죠.

그러나 그 메커니즘은 쉽게 얻어지진 않습니다

예를 든다면 공격성이 뜨는 것을 자기 처벌로서의 신경증으로 억제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당장 드러나는 증상내용만 가지고는 다루기가 어렵습니다. 

좀 더 익숙한 용어로 '병식'이라고 하죠.

이런 방식으로 증상을 다루는 것이 생소할 수도 있을 겁니다. 

대부분 정신의학이나 상담에서도 드러나는 것에 초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킨십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렇다면 물어보살에 나온 분의 이야기 중 하나를 생각해 봅시다.

다른 것이 닿는 것은 어려운데 남자친구와의 스킨십은 괜찮다고 합니다.

남자친구가 그렇게 깔끔한 스타일이 아니라도 스킨십이 가능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럴 때 우리는 리비도 이론을 활용해서 대상 리비도의 투자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상을 통해 이 리비도가 처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증상을 통해서 처리되는 곤란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즉, 사랑하면 증상으로 처리될 에너지를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처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강박증에 시달린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증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들을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강박증에 시달린다고 해도 연인의 존재가 있는 경우

어느 정도 정신적 균형상태를 유지하기도 합니다.


영화 플랜맨에서도 주인공 정석은 세탁소 아저씨에게 신뢰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혹은 신뢰하는 사람 앞에서 증상은 많이 완화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랑하는 동물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일어납니다.

인간은 믿기 어려운데 동물에는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는 신경증자들의 존재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것이 프로이트가 정신건강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일하고 사랑하는 것'의 의미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럼 이만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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