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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Jul 31. 2024

HELL BLADE -세누아의 희생(2)

환청과 망상


처음 게임을 시작하게 되면 환청이 사방에서 들립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계속 들려오는 거죠. 그러나 단순히 귀찮은 소리 이상의 기능이 환청에 있습니다. 환청 자체는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줍니다. 


 이 게임 자체는 조금 불편합니다. 맵이 직선형이라 해도 따로 지도 창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잃어버리면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저도 여러 번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게임에서 설정된 환청이 길잡이의 역할을 해줍니다. 길을 엉뚱하게 가면 환청이 들리지 않는 겁니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세누아의 환청을 이정표 삼아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이런 기능은 저에게 정신병과 관련된 내용을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정신분석에서는 환청에 세 가지 기능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지시하고 두 번째로는 달래고 세 번째로는 욕을 합니다. 이는 우리가 주변에서 조현병 환자의 이야기를 접할 때 듣게 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증상이 발달해가면서 들리는 목소리가 다양해지고 거기에 이름도 붙여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환청의 기능을 쉽게 접할 수는 없습니다. 전문서적에서나 읽어볼 법한 내용이 게임에서 구현되었다는 것에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이 게임에서 환청의 도움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곳은 전투 장면입니다. 전투를 하고 있으면 뒤에 적이 있을 때 환청이 그것을 알려줍니다. 게임상의 기능을 구현해서 환청이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보여주었고 그리고 행동에 있어서 지시도 하고 있습니다. 어떤 행동을 어떻게 하라는 것이죠.


 게다가 욕도 합니다. 정신병자가 이유없이 듣는 욕설처럼요. 환각은 늘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그런 환각에 사로잡힌다면 두려움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정신질환자들과도 섬세하게 인터뷰를 했다고 하지만. 이 정도까지 구현이 되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흔히 드라마에서 구현되는 정신질환의 모습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자기 전문분야에 대한 고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드라마를 보기 좀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낭만 닥터 김 사부"는 무척 재미있는 드라마지만 실제 의사가 본다면 도무지 공감이 안된다고도 합니다. 드라마에서 그런 것들은 드물지 않게 관찰이 됩니다. 저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좋아했다고 하는 드라마에서 그려진 정신질환의 내용에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곤합니다. 제가 치료한 경험이 있는 신경증 문제라면 더 그렇습니다. 작품의 재미를 위한 작가적 상상력이라지만 뭔가 보고 있기 힘들어지는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예시로 넷플릭스에 프로이트의 살인 해석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일종의 추리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인데 저는 그거 초반에 두편정도 보고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프로이트가 코카인을 쓰던 시대의 고증이 안맞아서 좀 거북하더군요. 


 게임으로 돌아가서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 봅시다. 환청은 왜 들리는 걸까요? 뇌에 이상이 생겨서 환청이 들리게 되는 걸까요? 하지만 조현병 환자의 뇌와 일반인의 뇌 혈류량 차이만 발견되고 똑같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런 실험 사례는 뇌라는 해부학적 기관의 이상이 정신질환을 발병시킨다는 것에 대한 반박 내용이 될 수 있습니다. 말이 길지만 환청이 들린다고 해서 꼭 조현병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프로이트의 후기 이론에서 초자아는 소리의 형태로 들어온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환청의 문제는 꼭 조현병과 같은 정신병의 분석이 아니라도 등장할 수 있습니다. 공포증에서도 비슷한 내용은 등장합니다. 그래서 프로이트가 강박증과 공포증을 한데 묶어서 쓴 논문이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신체 기관의 작용이 정신작용으로 이어지면서 특정한 감정반응을 일으키게 되는 겁니다. 환각작용이 초자아의 작동과 관계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신경증의 경우에는 환상 문제가 현실의 거친 에너지를 일차적으로 걸러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좀 덜할 수 있습니다. 현실과 구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훨씬 과장된 공포에 시달리게 됩니다. ptsd에서 우리가 보이는 반응이 그렇습니다. 자신과 관계없는 사소한 자극에도 행동이 멈춰버리고 패닉 상태에 빠져버립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의 안위만이 중요하게 되죠. 


 게임을 하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세누아의 마을은 바이킹에 의해서 몰살당합니다. 이 상황을 맨정신으로 견딜 수 있을 수 있을까요? 굉장한 고통에 시달릴 겁니다. 


 우리 정신은 기본적으로 쾌락원리에 의해서 작동합니다. 쾌락원리에 의해서 작동된다는 것은 불쾌 상태를 피하는 것인데 긴장을 높이지 않으려는 겁니다. 낮은 긴장상태에 있을 때가 쾌락입니다. 프로이트를 배울 때, 쾌락이라고 해서 성적 쾌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쾌락은 ‘고통이 없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인간은 고통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세누아는 특징적인 행동을 나타냅니다. 자기 스스로가 고통을 찾아가는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내용을 봐도 그렇습니다. 죽은 남자친구의 머리통을 허리에 차고 실체가 있는지도 모르는 여신에게서 구해내기 위해서 험난한 여정을 수행하는 거죠. 

 죽은 남친의 머리통을 달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끔찍한 일이지만 그걸 합니다. 헬라라는 여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남자친구를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거죠. 그래서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태도가 미친 것 처럼 여겨질 수 있을 겁니다. 정신병자들은 가끔 무생물에도 인격적 요소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아파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기도 합니다. 그것도 아주 천진난만하게 물어보고 낭만적으로 생각합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 대답 해주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제 경험에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어떤 어르신이 말을 걸었습니다. 세상이 참 아름답고 나무도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이야기를 대뜸하는 겁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일겁니다. 어쩌면 겁을 집어먹을 수도 있을 것이고요. 그런데 정신분석을 하는 제 입장에서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어떻게보면 고마운 겁니다. 정신병동에서 근무하면서도 그런 경우가 몇번 있었습니다. 망상이란 것은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습니다. 의사에게도 잘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을 듣게 된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입니다. 그래서 길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서 그분의 질문에 대해서 몇가지 대답을 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질문이 어떻게 보면 말이 안되는 내용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지능이 낮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걸까요? 정신의학적인 시각에서는 병전 지능보다는 인지능력도 떨어져서 그렇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편집증과 같은 정신병에서는 지능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망상이란 지능 저하의 증거가 아니라 현실과 자신의 연결지점을 다시 회복하려는 회복 시도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납득할 만한 가설을 통해서 설명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정신질환자들의 ‘말’이나 ‘행동’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그것을 지능이나 인지의 문제로 판단하고 약물처방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 있습니다. 기능의 문제를 중시하는 의학적 태도에서는 그런 입장이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은 그런 관점을 지니고 있진 않습니다. 정신병자가 보이는 망상과 같은 그런 단서들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질문이나 행동의 기전은 꿈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꿈은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죠. 우리가 정신병자들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중 하나는 무의식을 겉으로 드러내놓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요. 


 꿈을 정상 신경증이라고 부를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부르냐면 꿈에서 등장하는 작용 기전들을 정신병에서도 그대로 활용되기 때문입니다. 꿈의 작용 기전은 자아에게는 휴식을 이끌어 내고 정신병에서 활용될 때는 현실과 관계되는 행동으로 등장합니다. 


 어느 분석 주체가 보이는 한 장면의 꿈은 수 십 페이지로도 번역이 됩니다. 꿈은 그 정도로 교묘합니다.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면 알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당사자의 의식에는 그 의미가 뜨지도 않죠. 무의식은 자아에서 퇴출된 내용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의식에 진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게임에서 세누아가 보여주는 증상들이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행동에서 이해되기가 어려운 것들이죠.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잘 듣고 반영했었는지가 여기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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