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
드디어 세누아의 희생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를 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한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정신병적인 새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정신질환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발견이 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봅시다. 의학은 결국 해부학의 기준을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해부학이 족쇄처럼 기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증상 자체가 해부학적인 원인으로 인해서 일어난다고 하면 그것은 '운명’이라고 해도 될 겁니다. 프로이트도 '해부학은 운명이다’라는 말을 남겼으니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뇌에 실질적인 단백질 이상이 발생해서 이상행동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주연했던 영화 "브레인 온 파이어"에서 주인공은 갑자기 이상행동들을 경험하게 되고 병원에서는 조현병으로 진단을 받습니다. 병리적 행동들로 진단을 한다면 거의 구분이 되질 않습니다. 그 영화에서는 마지막에 뇌에 발생하는 단백질의 문제로 인해서 발생하는 희귀질환임을 의학적으로 밝혀냅니다. 따라서 그 부분을 치료하고 나서 행동이 다시 원상태로 복구됩니다. 의학의 장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병의 원인이 해부학적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치료를 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경우는 매우 특이한 사례입니다. 이렇게 병리적 행동 원인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조현병 진단에 머무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프로이트는 정신질환에 '심인성 질환’이라는 것을 주장 했지만, 프로이트 당시의 의사들이 '심인성’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정신질환의 경우 의학에서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병인론과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겁니다. 단순히 '유아성욕'이고 이해될 수 없는 변태적인 관념 때문에 프로이트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훨씬 더 근본적인 개념들을 따질 필요가 있는 것이죠.
게임 내용으로 들어가 봅시다. 세누아는 헬라를 만납니다. 드디어 딜리온의 머리통을 가지고 그를 부활시켜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존재를 만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헬라를 만나지만 세누아가 곧 헬라가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세누아는 드디어 어떤 변화를 감지하면서 딜리온을 떠나보냅니다.
자, 이 내용이 게임의 엔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것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런 장면들이 나온다면, 혹은 조현병으로 진단되어서 망상을 지껄이던 사람이 갑자기 멀쩡한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는 그 순간에 그런 생각을 합니다. 드디어 병이 괜찮아져서 제정신을 차리는 것 아닌가?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일 때는 조금 더 주의를 기해야 합니다.
정신증의 급성기에는 티가 좀 납니다. 자아 효율이 급속도로 떨어지면서 자기 관리도 잘 되지 않고 좀 기괴하다 싶은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시간이 좀 지나게 되면 갑자기 일상생활의 효율을 다시 회복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치료가 되었다거나 자신의 정신증을 스스로 극복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도 편집증 분석을 담당했던 때에, 그런 모습을 직접 보았습니다.
일반적인 인식이 그러니까 세누아의 마지막 모습은 아마도 스스로의 병을 이겨낸 것 같은 드라마틱한 내용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증상의 완화 상태를 유지하는 기간에 대해서 '관해기’라는 말을 합니다. 이 때는 일상생활도 조절이 되고요. 일반적으로 완화 상태의 유지가 5년이 된다면 치료가 되었다고 판단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정신질환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되어야 할까요?
정신분석에서 이야기하는 정신증은 정신의학이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꽤 많습니다. 정신의학은 궁극적으로 뇌와 중추신경 연계를 통해서 정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약으로 조절하고자 하는 것이 정신의학 전통의 치료법입니다. 약물 문제가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정신의학 전통에서 약을 쓰는 것은 당연한 치료법입니다. 그 해악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치료방식을 쉽게 바꿀 수는 없는 겁니다.
정신분석에서 이야기하는 정신증은 현실을 견딜 수 없는 자아가 현실을 다시 재구축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자아가 현실을 견딜 수 있는 방식으로 재가공해서 다른 세계에 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정신병자들의 말은 일반적으로 들리는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다시 우리말로 재번역이 되어야 한다고도 합니다. 편집증 환자의 언어를 번역하는 데 있어서는 융이 굉장히 소중한 아이디어를 프로이트와 나누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재구축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망상체가 있습니다. 편집-망상체가 우리 정신에서 한 번 형성이 되고 나면 초반에는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기저기로 떠돌아다니면서 자리를 잡을 곳을 찾습니다. 주체가 리비도를 가장 많이 투자하는 곳에 잡을 겁니다. 우리 주변에서 정신병자들이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고 또 성적인 말들을 계속 지껄이는 그런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주체는 개인이나 자아거나 주인이나 그런 것과는 관련성이 없습니다. 대부분 주체를 이해하는데 개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선호해서 오해하게 되는 경우가 꽤 발생하긴 합니다. 자아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의 의식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세누아의 여정에서 딜리온의 머리통을 달고 있었던 때는 편집 망상체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딜리온의 머리통을 떠나보낼 때는 바로 편집 망상체가 자리를 잡아서 안정화를 꾀하게 된 시점으로 추측됩니다. 편집 망상체가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증상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최근 발매된 헬블레이드 2에서는 사라졌다고 받아들였던 환각들이 다시 등장을 하게 됩니다. 이런 증상의 작동기전은 환경에 따라서도 다양하게 변화합니다.
물론 사람들 중에서는 이러한 정신질환에 시달리면서 살아가지만 안정화된 채로 생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슈레버 같은 경우도 그렇습니다. 편집증이 심각했지만 슈레버는 나중에 법정에서 다시 병원에 입원하지 않아도 좋다는 허가까지 받았습니다. 그의 광기가 법적 질서에 편입이 된 겁니다. 슈레버는 자신이 비록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그저 나의 망상이 현실화되길 기대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지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는 거죠.
이제는 메이킹 필름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러한 게임의 시도가 신선한 것이었던 것만큼 세부사항도 꽤 공을 들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각종 매체에서 표현하는 정신질환에 대한 문제입니다. 대부분 게임에서 정신질환이 등장하게 된다면 '사이코패스’가 자주 등장합니다. 즉, 자극적인 소재로 정신질환을 활용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그런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게임 제작사는 좀 더 섬세한 구분을 위해서 캠브릿지 대학의 신경과학과 교수이고 정신과 의사인 폴 플레처 박사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그는 정신증을 객관적인 현실과 접촉을 상실한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환각과 망상을 주 특징으로 지닌다고 이야기합니다.
정신분석에서 생각하는 환각은 정신병의 근거가 되질 않습니다. 히스테리로 등장하는 환각은 일반 상태에서도 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증상에서도 환각이 나타나는데 꼭 정신증에서만 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신경증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신경증에 시달리면서 환각을 경험한다 치면 조현병이 아닌지 많이 의심하곤 합니다. 과거 어떤 학생은 자신의 환각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을 저에게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자기가 조현병이 아니냐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때도 저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했었습니다. 내용이 심각한 것과는 별개입니다.
그리고 망상이 있습니다. 이 망상 역시도 정신분석에서 따질 때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망상을 좀 단순하게 생각한다거나 혹은 쓸데없는 생각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엉뚱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망상하기’로 쓰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요. 상상과 망상은 그 차원이 아예 다릅니다. 치료하시는 분들도 이 구분을 조금 난해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망상과 의심이 구분이 잘 안될 때입니다. 망상의 경우에는 반박이 되지 않습니다.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대신 의심은 논리적인 작동을 합니다.
영상에서 정신의학은 외과 의학에 비해 치료법이 아직은 원시적인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해부학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게임을 통해서는 어느 정도 경험을 해볼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병리적인 행동에 대한 이해를 조금 넓힐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증상이 어떻게 시작이 되고 어떻게 안정화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일 겁니다.
세누아가 딜리온의 머리통과 결별하는 장면을 다시 떠올려봅시다. 안정화의 방식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병리적 안정화입니다. 병 상태에 머물러서 그걸로 만족하고 사는 겁니다. 두 번째는 건강을 위해 증상과 투쟁하는 겁니다. 이때는 병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과정을 스스로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분석 치료는 이상행동만을 제거하는 정신위생적인 치료방식은 아닙니다.
정신위생이라는 말을 정신 건강과 동의어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건강과 위생은 다른 개념입니다. 프로이트는 정신과에서 주는 약을 복용하고 문제행동을 제거한 뒤에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 것을 정신위생으로 보고 있습니다. 건강은 그보다 훨씬 역동적이죠.
이제 글을 매듭짓고자 합니다. 이 게임의 호불호는 명확하게 갈립니다. 게임성보다는 예술성에 점수를 더 높이 매기죠. 그리고 하나의 정신질환 시뮬레이터로서의 기능이 더 뛰어납니다. 단순히 '정신질환’으로 정의되어 온 것들에 대해서 조금 더 섬세한 의미를 부여하고 경험하게 해주는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물론 게임에서 설정된 정신질환이 현실과 모든 부분이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현실의 정신질환이 더 직접적이고 교묘하게 등장하죠. 제가 이 게임으로 쓴 글들도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이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게임상에서 등장하는 것과 쉽게 구분지어볼 수가 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현실에서 증상을 보게 된다면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 게임의 의의는 아무래도 정신병이라는 주제에 대한 일반 이해를 조금 넓혀주는 것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알아야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이나 주변 사람이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고 그 사람에 대한 수용의 폭을 좀 넓히고자 하신다면 이 게임을 한번 플레이해보시는 것도 권할 만한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병을 알지 못하는 몰이해의 상태에 있게 된다면 어떨까요? 생각보다 그 결과는 끔찍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