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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ee An Nov 21. 2016

다시는 만질 수 없는 손들

2인칭의 '너'가 3인칭의 '당신'이 되는 일

 2인칭의 '너'가 3인칭의 '당신'이 되는 것, 한 프레임 안에 담겨 있던 두 사람을 각각의 프레임으로 옮겨놓는 것, 수도 없이 많은 밀어가 사어가 되는 것, 지켜지지 않을 약속들을 무심히 꼽아 보는 것, '다녀 감'이라는 방명록 같은 존재로 남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처로워할 필요 없는 것은 정말 단순히 그저 '다녀 가'지만 않고 내 몸 구석구석 남아 두고두고 꺼내먹을 만한 양식으로 남는 것이기에, 그 양식만으로도 한참 동안은 배부를 수 있을 만큼 부지런히 재생산을 해낼 수 있기에. 함께 나눈 것이 사랑이었든 우정이었든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생각해 보면 이별은 참 좋은 것.


 지난 시절과 다가올 시절은 재빠른 바통 터치를 하지 않는다. 현재라는 등을 맞대고 조심조심 순서가 바뀌길 기다리며 눈치를 볼뿐.



 *   *   *


 15개월. 해외에 나와 한 번도 한국에 들어가지 않고 가장 오래 버틴 기간이다. 아마도 계획대로 삶이 흘러간다면 18개월 전후의 기록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이 생활이 너무 익숙해져서 유럽이 내 집 같다. 내가 있어야 할 곳, 나에게 어울리는 곳은 여기인 것 같은데 나는 곧 돌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돌아가서는 이전에 내가 늘 그래 온 것처럼 나의 시간들과 추억을 한참 동안이나 그리워할 것이며, 그 그리움 때문에 조금은 아프게 될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삶을 꾸려나갈 것이다. 고문처럼 아팠던 시절은 나를 살아있게 했던 밀도 있는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는 것 말고는 없었던 외로운 나날들은 서울에서는 가질 수 없는 여유로 미화될 것이다.


 아일랜드를 떠나온 지 5달 남짓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미화 작업이 시작되려는지 뭇내 그리운 것들이 많아진다. 나의 작은 아파트, 그곳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던 우리들, 내 방의 작은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던 풍경, 매일 걷던 거리, 반복해서 먹던 음식과 나를 감싸던 공기, 그 공기를 채우던 음악 그리고 너와 내가 나눈 그 모든 절절한 마음과 일화 같은 것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더블린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상하게도 겨울의 시작과 함께 그곳이 그리워져버린 것은 아마도 사람들과 나누었던 정이 참으로 따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분명한 것은 더블린은 이제 내가 다시 도달할 수 없는 완전한 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동안 더블린을 싫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아직은 현재에 속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과거는 그리워하고 현재는 미워하는 고약한 습관을 지녔으니까. 다시는 닿을 수 없는 사람들, 다시는 만질 수 없는 손들, 다시는 부를 수 없는 이름들을 그리워하며 살도록 설계된 사람이니까 나는. 


 겨울이 되어서 그렇다고 말하면 내가 왜 이러는 이유들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도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구차하나마 핑계가 있는 것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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