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nA Aug 18. 2018

홍대 앞 ‘제니스’가 서귀포 ‘제니스’가 되는 사이

대학생이 직장인이 되었다가 백수가 되는 사이

내가 신입생이었던 2002년, 학교 앞에는 샌드위치 가게가 있었다. 이름은 ‘제니스’. 동기들과 자주 찾았던 그 가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고, 커졌다. 그리고 홍대의 상권은 거대해졌고 가게는 자꾸만 학교 정문에서 멀어져 갔다. 그 당시의 한 끼 식비에 비하면 그 샌드위치의 가격은 비쌌다. 아무렇지 않게 사 먹기엔 내겐 비쌌다. 꾸준히 해오던 학교 앞 커피숍 에스파냐의 아르바이트비 세 시간 짜리였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나의 시간을 내주었다.  

가게 사장님에게 나는 그저 손님 중 하나였겠지만 내게 그 곳은 좋아하는 오래된 벗 같은 그런 곳이었다. 첫 번째 남자 친구와 갔고, 대학시절 마지막 남자 친구와도 갔다. 내가 그곳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레스토랑 알바를 했던 경험 때문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 내게 이태리 음식은 그리 가깝지 않았다.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며 많은 음식을 먹었다. 조리하는 법을 어깨너머로 배우고 재료들을 눈에 익히고 맛을 알아갔다. 그런 내게 제니스는 점점 더 좋아하는 식당이 되었다. 몇 년이 지나 정문 바로 옆의 미술학원 길에서 합정 쪽 먼 골목길로 이전을 하고 나는 졸업을 했다. 졸업식을 축하하러 올라오신 부모님을 모시고 그 식당에 갔다.

 

신입사원 때였던가. 오랜만에 졸업한 동기들과 만났던 곳도 그곳이었다. 아주 친하다고 생각했던 대학 친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상처받았다. 피식 웃고 말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친구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후로 많은 연인들을 만났고 여전히 밤거리를 쏘다녔지만 그 가게를 함께 갈 만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그 가게를 함께 갔던 새로운 남자는 지금 내 남편이다. 그 후로 매번 그와 갔다. 그마저도 드물어지고 어느 날 찾아갔더니 간판이 사라져 있었다. 어디론가 이사를 했는데 더 이상 찾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을 쉽게 포기했다. 그때 많은 것들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 노력하면 더 힘들어지는 것을 알아가던 사회인이었다. 쉽게 내 손에 쥐어야 하는 것들만으로 충분히 살아갈만했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것보다 가까운 것, 편한 것들만 내겐 가득했다.


시간은 참 속절없이 지나갔고 되돌리고 싶은 순간은 항상 나중에서야 떠오른다. 아마도 그 가게 사장님은 내가 얼마나 수많은 장면을 그곳에서 만들었는지 모를 것이다. 기억 속 반은 지우고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마저도 오늘 그 가게를 우연히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꾸준히 좋아했던 그곳을 16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도착한 이곳, 서귀포에서 다시 만났다. 똑같은 폰트의 가게 간판이다. 예전과 똑같은 메뉴를 시켰다. 흥분해서 남편에게는 똑같은 맛이라고 얘기했지만 사실 그때의 맛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맘 속 깊은 곳에서 좋아한다고 결정해버렸다. 맛을 느낄 새 없이 그릇을 비워냈다.


내가 먹은 것은 지난날의 기억이 아닐까.


대학 시절, 내가 그렇게 큰 회사의 건축 쟁이가 될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월급쟁이의 한숨을 쉴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아무 생각 없이 회사를 나와 바이크를 타고 유라시아 횡단을 할 수 있을 꺼라 믿었을까. 너무나도 다른 장소와 시간, 단지 같은 것은 나라는 사람과 '제니스'라고 쓰인 똑같은 폰트의 가게 이름뿐이다. 쓸데없이 감성적이 된 내게 기억이 쏟아져내린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지금 직장인이거나 자영업자이거나 혹은 백수인 우리의 예전 모습, 그 젊은이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아쉽거나 안타까운 건 아니다. 지금의 나도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우니까. 매번 나는 최선을 다해 선택했다. 비록 지금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또한 아름다운 내 인생의 한 조각이다. 이렇게 현재에 충실한 나는 지난날을 뒤돌아보지 않았다. 어쩌면 소심해서 후회하거나 좌절할까 봐 걱정했던 것 일지도. 현재에 충실하겠다는 마음으로 과거가 어제의 오늘이라는 것을 잘 몰랐다. 그래서 그 맛을 잊었나보다.  지난 날을 기억하려 한 적이 없었으니.

 

지금의 유행은 현재에 충실하고 작은 행복에 만족하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그게 지금만 생각하라는 건 아니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겠다.


예전에 누군가가 다시 돌아간다면 언제로 갈래?라고 물을 때마다, 나는 지금이 항상 더 좋다고 말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내 젊은 날은 청춘 드라마처럼 상큼하지 않았다. (시간을 되돌리는 기계가 아직 발명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런데 되돌려봐야 하나보다. 항상 기억해야 하는 것이었나보다. 잊지 말 걸 그랬다.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이 있고 중년이 되기 전 (지금의 나처럼) 애매한 삼십 대가 있다. 내가 곧 중년과 노년을 맞이할 것을 생각하며 고민하는 것처럼 지금 젊은이들은 지금 내 나이가 되는 것를 고민한다. 우리의 고민은 그렇게 다를게 없다. 그러나 사회의 대우는 다르다. 내가 걸어왔던 컴컴한 시절이 지금을 살아가는 이십 대에게 없기를 바라지만, 난 아무것도 바꿔놓은 게 없다. 오히려 더 나쁜 쪽으로 진화시킨 걸지도 모른다.


나는 과연 그들에게 적당한 시대(적어도 상큼하지 않았던 젊은 날보다 나은 날)를 만들어주었는가.

내가 만든 이 사회는 과연 지난날보다 나아진 걸까.

 

내가 과거를 곱씹어야 하는 건 다가오는 중년과 노년만을 위해서는 아니어야 한다. 내가 맞이하는 중년과 노년이 아름답기를 소망한다면 똑같이 다른 이가 맞이하는 삼십 대도 아름다워야 한다. 공존은 모두가 조금씩 덜 벌어야 하고 조금씩 더 고생해야 한다. 때론 그게 내게만 불편한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바로 그렇게 나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불편하지 않은 현실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랬다. 최저임금이나 국민연금도 그렇게 바라봤다. 내가 벌어야 하는 돈이라면 최저임금은 올라야 하고 내가 주어야 하는 돈이라면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부었던 국민연금이 혹시라도 적어질까 기사를 정독하고 내가 65세가 되고 나서가 언제인지를 손꼽아 보았다.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서 내가 지나온 과거를 내가 짊어질 내일을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다. 과거의 20살 나 자신이 아닌 현재의 20살을, 미래의 60살 내가 아닌 지금 내 옆의 노인을 생각해보는 것, 그게 현재 사회를 살아가는 나를 위한 것이다. (과연 개미보다 작은 존재인 백수가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젊은 ‘나’를 만났다. 홍대 앞 제니스가 서귀포 제니스가 되는 동안 나는 도돌이표가 되어 다시 시작점에 서 있다.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게 변했지만 시작점에 서 있으니 마치 이십 대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서귀포의 바람이 오늘만큼은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을 부리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럽다'는 말 앞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