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nA Nov 04. 2018

 검은머리  앤

 누가 빨강머리 앤을 죽였을까.

빨강머리 앤을 읽었던 건 중학교 때였지만 처음 만난 건 글자도 모르던 어릴 적 만화영화였다. 그 후론 매번 다른 버전의 빨강머리 앤을 읽었다. 고전문학, 청소년 문학, 세계문학이란 타이틀을 달고 새로운 앤의 이야기를 접했다. 새로운 앤을 만날 때마다 조금씩 나는 자라 있었다. 책 속의 앤과는 달리 붙잡지 못한 어린 시절의 꿈만큼 허무하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 언제나 기대한 것보다 더러운 세상을 만났고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을 감추기 급급했다.  그때, 성인이 된 앤의 이야기를 만났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빨강머리 앤을 읽었다. 그녀의 인생을 따라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 콩닥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만의 상상을 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날, 다시 상상하는 것을, 꿈꾸는 것을 잊었다.

언제나 그렇다. 나는 그녀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기대했지만 내게 열린 현실은 다른 세상이다.


빨강머리 앤의 상상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아름답게 반짝인다. 그러나 나의 상상은 항상 현실에 갇힌다.  내가 갇혀있다는 것을 인정한 건 주어진 세상을 벗어나는 건 혼자만의 피나는 노력으로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순수한 상상은 현실에서 더 큰 좌절감으로 다가왔다.

 

나의 삶은 한국의 여느 학생들처럼 성적에 좌우되었고, 평범한 대학생처럼 돈에 저당 잡혔다. 매번 언젠가를 기약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오늘을 저당 잡히는 직장생활 안에서 나의 빨간 머리 앤은 서서히 침몰하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꿈은 빨간 머리 앤과는 달랐다. 그저 검은머리 앤 이였던 나는 스스로를 빨간머리 앤과 같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고민하고 선택했던 앤과는 달리 나는 어렸을 적부터 더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했다. 진실을 말하면 그동안 쌓아온 시간을 모두 부정하는 것 같아 모른 척했을 뿐이다. 변명을 하자면 대부분이 그랬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어른의 꿈은 그런 거라고, 좋은 집에서 평범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스러운 아이를 기르며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모두 꿈을 꾼다. 그리고 노력한다. 하루를 빼곡히 채우는 모든 선택은 나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돈’과 ‘생계’와 이어져 있다.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 되면 현실과 맞지 않는 꿈은 삶을 지치게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단 돈을 벌자고 생각한 순간부터 더 이상 그 어떤 상상도 달콤하지 않았다. 나는 남들과 다른 꿈을 꿀 용기와 능력이 없었지만 현실에 안주하면서도 여전히 빨강머리 앤이 되고 싶었다. 상대적인 박탈감, 태생적 한계란 말로 나를 점점 설득시켰다. 그래, 어차피 이 곳은 한국이니까. 나는 검은머리 앤이니까.


그렇게 나는 빨강머리 앤을 죽였다. 그리고 여전히 찾았다. 도망갈 구멍을.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보통의 가정에서 자란 우리는 거의 비슷하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균적인 모습에 조금을 더 보탠 풍족한 삶을 동경한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들어온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예쁘고 똑똑한 데다 착하기까지 하다. 결국 성공하며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내 인생의 주인공인 나만 빼고 그랬다. 


가끔 눈을 감고 새로운 상상을 한다. 지금과는 다른 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선택은 예상하던 결과와 다르게 흘렀다. 그리고 항상 나를 탓했다. 노력이 부족했거나, 간절함이 없어서라고. 못생겼거나 뚱뚱하거나 성격이 모났거나 진중하지 못하고 덜렁거려서라고. 


어쩌면 빨강머리 앤이 되지 못한 건 못난 나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검은머리 앤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든 내가 살고 있는 세상 탓이니까.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바람 부는 언덕과 작은 개울이 있는 마을에 살았다. 여름이면 큰 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 물장구를 치며 마당에서 놀았다. 마당 앞 작은 정원에 오래된 나무 아래에서 나와 형제들은 바뀌는 계절마다 사진을 찍었다. 눈이 하얗게 쌓인 겨울에는 눈사람이 살았고 봄이 오면 노란 병아리들이 가득이었다. 집에는 다락방이 있었고, 전에 살던 가족들이 남겨놓은 알 수 없는 집기들을 조심스레 탐험하곤 했다. 나는 아주 작았고 내 방이 없었다. 학년마다 반이 하나밖에 없어서 우리는 모두 서로를 알았다. 모두가 달랐다. 그래서 그들 중에 한 명이 아니라 모두가 다른 한 명이었다. 

그 작은 마을에서 그렇게 계속 살았다면 어땠을까. 가족보다 더 서로를 잘 알만큼 작은 이야기까지 나누는 친구들과 오래도록 서로의 안부를 물었을 것이다. 결국 누군가는 마을에 남아 농부가 되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도시로 나가 전혀 다른 삶을 살다 가끔 명절에나 얼굴을 비추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하나가 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 더 큰 도시로 이사를 했다. 

도시로 이사 오는 순간 바람을 느끼던 시골을 잊어버렸다. 너무나 반짝이던 시냇물보다 더 선명하고 화려한 도시의 낮과 밤을 몇 번 지내니 도시의 편안함과 안락함에 익숙해졌다. 도시의 학교에서 시골의 나는 그렇게 똑똑한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다시 맹렬히 노력했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생이 되는 순간, 가장 큰 도시 서울을 만났다. 서울에 오니 나는 지방에서 올라온 가난한 학생이었다. 다시 맹렬히 노력했다. 태생적 한계를 입에 달고 살았다. 예나 지금이나 오르지 못할 벽은 언제나 있었다. 


나는 도중하차를 선택했다. 직장을 떠나고 도시를 떠났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선택은 예상과 다르게 흐른다. 여전히 나는 그대로였다. 모든 것이 바꼈지만 나는 그대로였다. 


나는 빨강머리 앤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좀 더 일찍 모든 것을 떠났다면 말이다.


그러나 경기장에서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경주마처럼 매번 새로운 경쟁에 휘말려 열심히 살아가던 때를 되돌릴 수는 없다. 살아온 날들이 쌓여 지금껏 ‘나’를 만들었는데 이제 와서 다르게 살 수는 없다. 그러니 인정하자. 나는 검은머리 앤 이다. 적당히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데다 약삭빠른 거기에 감수성이 풍부하고 지금의 현실, 당장의 삶과 어울리지 않는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한국의 평범한 여자이다. 


검은머리 앤이라서 행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갈 것이다. 비록 내 어린 친구 빨강머리 앤이 될 수는 없겠지만 여긴 헬조선이라 불리는 한국 아닌가. 그러니 이 곳엔 나 같은 검은머리 앤이 더 잘 어울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