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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와 시공사이

by NanA

건축과가 5년제가 된 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나는 5년제의 첫 입학생이었다. 그땐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4년 제로 입학했던 선배들과 3, 4학년 수업을 같이 들었다. 달라진 건 1년 더 학교를 다닌다는 것. 회사에 들어갈 때 1년의 등록금이 경력 1년으로 인정받고 나서야 그나마 차이가 있구나 생각했다. 학과과정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고 좀 더 심도 있게 건축가를 기르겠다는 의도와 선진국의 시스템을 더해 학부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첫 입학생인 나는 그 차이가 그렇게 크다고 느끼지 못했다. 대학원까지 가면 총 7년이란 긴 시간이 되니까 공부를 더하기가 애매했다. 등록금이 비싼 사립학교를 졸업한 것도 사회로 빨리 나가고 싶은 이유 중 하나였다.


연봉이 높은 건설회사에 가고 싶었다. 건축설계 회사는 학부생 때 웬만한 곳을 인턴 혹은 알바로 경험했다. 연봉이 적었다. 일을 내 뜻대로 하려면 적어도 십 년은 짱박아야 될 것 같았다. 나중에 내 이름을 걸고 설계사무소를 열 생각도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건설회사를 가려고 했다. 작업실 선배들이 1군 건설사에 들어간 것도 영향이 있었다. 졸업 후 간간히 만난 오빠들의 얼굴이 좋아 보였다. 그나마 설계사무소중에 연봉이 가장 높은 곳에 입사지원서를 냈다. 1차 서류전형에서 대다수가 떨어진단다. 그런데 붙었다. 왜일까. 그리고 그냥 그렇게 입사를 했다. 끝까지 붙을 거라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다.


욕심은 쓸데없다. 언제부터 알았던 건지 모르겠다. 그냥 욕심부린다고 이뤄진 건 없었다. 될 놈은 항상 되고, 안 되는 놈은 안된다. 그 극명한 운명 사이에서 나는 간간히 될 놈이었다. 첫 입사도 그중 하나였던 것 같다. 누구도 내 입사를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에 추천서도 써주시고 인턴에도 보내주신 교수님이 있었다. 이제는 연락이 끓겼지만 정교수는 아니었다. 나름 이름 있는 건축가중 한분이었지만 그 추천서는 정교수의 추천서와 무게감이 다르다. 인턴을 했던 팀의 소장님들, 알고 보면 학교 선배였던 분들의 알음알음의 추천과 나름의 당찼던 면접이 도움이 되었나 보다. 뭔가 우주의 기운이 나를 향해 모아졌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덕분에 나는 건설회사를 가지 않았다.


건설회사와 설계회사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전공은 같다. 건축이 베이스다. 시공이냐, 건축학이냐, 4년제? 5년제 뭐 여러 가지 조건들이 붙지만 어쨌든 뿌리는 건축이다. 내 졸업 앞에 그저 많은 길 중에 하나였던 거 같은데,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시공과 설계의 간극은 크다. 지방일수록 더 크다. 4년 이상 같은 공부를 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업계의 입장은 다르다. 학교 선후배와 만나보면 건축을 바라보는 자세가 다르다. 나는 그게 항상 이상하다.


한쪽이 문제가 있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건축물을 접근하는 방식, 공간에 대한 가치관 그리고 설계와 시공 각자의 영역에 대한 무지가 불러오는 적대감이 합쳐져 시너지를 더해야 할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와 불신으로 인해 업계 전체로 보면 퇴보하는 중이다.


건축가가 시공을 모르는 게 말이 되는가.

시공회사가 건축도면을 못 읽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기본적인 시공, 설비 설치에 대한 이해도 없이 외관 치장하기에 바쁜 설계사무실이 많다. 허가방이라 불리는 설계사무소의 도면들은 있어야 할 것들이 없다. 선 세 개면 끝나는 외벽으로 이루어진 평면도가 대부분이다. 오 년이나 공부해서 그리는 도면이 고작 저 정도라니, 열정이 끓어 넘쳤던 학부생 때였다면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건축가도 여러 종류가 있고, 어느 업계든 저렴한 시장이 존재하기에 그 누구도 잘못이라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러한 설계 사무실들이 생겨났다. 점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건설회사는 도면을 보고 시공을 한다. 공간이 복잡할수록, 고급 자재를 많이 적용할수록 시공도면은 복잡해진다. 설계를 하는 사람은 시공 가능한 도면을 그려내야 하는 것이 원칙이긴 하다. 그런데 시공가능하다는 정의는 시공사가 내린다. 20년간 바뀐 건 없다. 건축물을 짓는 방법은 철근, 콘크리트, 단열과 방수, 그리고 내외장재의 조합이다. 그 조합의 기준이 되는 법규가 있고, 시공을 하는 수많은 인부들이 있다. 그러니까 공장에서 로봇이 만드는 복잡하고 정교한 물건이 아니라, 일반 인부들이 해오던 대로 그냥 짓는 거다. 항상 해오던 방법이 때론 법규에 의해 바뀌기도 하고 더 저렴한 재료들로 대체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동일하다. 설계도면에서 특별한 시공법을 지시하면 시공사가 아 나 안 해! 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설계도면이 오류투성이면 시공사가 아 내 맘대로 할래도 가능한 것이다.


도면을 그려 공간을 계획하는 자와 공간을 현실로 구현하는 자, 가장 긴밀하고 협력을 해야 할 관계가 서로를 적대시하는 것은 그만큼 건축이라는 광범위한 영역 중에 한 부분으로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기보다 누가 더 이익을 보는지와 책임을 질 건지에 초점이 맞춰진 법적 제도 속에서 서로를 깎아내리고 추궁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의 탓이 가장 크다. 서로의 협력관계 속에 오류와 하자를 줄여가기보다 서로의 탓으로 돌려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설계를 끝내고 도면을 납품하고 두세 달이 지나면 시공사와 감리단과의 만남을 갖게 된다. 나는 항상 반갑게 인사하고 최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한다. 내 새끼가 이 분들 손에서 만들어지는구나 생각하면 뭐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은 맘이 든다. 보통은 첫 만남에서 적대감이 없어지면 오는 마음과 가는 마음이 비슷할 결을 띠게 된다. 시공사는 발주처 모르게 오류를 미리 알려줘서 대응을 쉽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미리 시공사가 원하는 변경이 있으면 불편한 자리가 되지 않도록 귀띔을 해주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 협력관계가 되면 준공 후 모습이 조금은 초라해지고, 마음이 아프더라도 함부로 탓을 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공감하게 된다. (같이 발주처와 업계의 현실을 한탄하며 등을 두드려주기도 한다.)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가고 있다. 가을에 만나 추운 겨울 동안 애지중지 아꼈던 녀석이 어디 가서 구박받지 않게 작은 구멍하나도 알뜰히 살뜰히 살펴서 세상에 내보내고 싶다. 나의 능력과 체력이 허락해 주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백장 가까운 도면을 하나씩 들여다 보기를 몇 번을 했던가. 그럼에도 매번 보이는 오류 앞에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공간을 계획하는 사람, 건축가의 꿈을 현실에 존재하게 만드는 건 시공, 건설업자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함께 고민하는 감리자가 있다. 이상적인 관계가 되길 바라지만 모두가 역량이 부족한 이들이 태반인 오늘날, 우리 업계는 매일 싸움이 일어나는 중이다. 분명, 같은 과를 나온 동문들일 텐데 말이다.


부디, 나의 노력과 진심이 닿을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 이어지기를. 모두가 즐거웠다 기억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준공까지 이어지기를.

내가 빈다고 될진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빈다. 우주의 기운이 모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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