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들
마치 그런 느낌이 있다.
이걸 지나가면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통로를 만날 때가 있다.
나는 요새 그러한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 통로를 지나고 나면,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 통로를 무시할 수는 없다. 지금 이 통로를 지나가기를 멈추기에는 벌써 5/7을 지나고 있다.
돌아가는 길보다는 남은 길이 더 짧다. 그러나 그 길은 너무 좁고 시간은 느리게 간다.
그 통로를 나름대로 수월하게 지나던 1/7을 넘어서서, 조금 버겁지만 참을 만하던 3/7을 지나서,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고민하던 4/7을 넘어서, 지금까지 도달했다. 이 지옥 같은 과정도 2/7만 지나면 끝이 보인다.
문제는 7/7을 채우면 끝인가하면, 꼭 그건 아니다. 7/7은 곧 다시 1이고, 이것은 시작의 숫자이다.
역사적인 깊이를 자랑하는 마르세유 타로 카드와 현재 전세계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유니버셜 타로카드의 1번 메이저 카드는 바로 '마술사 카드'이다.
마술사 카드는 역사적으로 무한대와 4개 원소를 모두 상징하는 카드로 쓰였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고, 그 끝이 있다. 그러나 끝은 다시 시작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므로 1번인 마술사 카드는 곧 끝이자 시작을 상징한다.
마술사는 4개의 원소를 다룬다. 그래서 엘리멘탈리스트라고도 할 수 있고, 원소술사라고도 할 수 있다. 또는 연금술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카드가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나오면, 시작을 해도 된다는 것이며, 조금 불안하지만 기반이 갖추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을 한창 하고 있는 사람에게 나오면 곧 그것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곧 시작은 끝이고, 끝은 시작이 되는 법이다.
이 터널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너무도 뻔해 보려서 터널의 끝에 도달하기가 두렵다.
끝이라고 도달한 그곳에는 다른 종류의 터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아웃은 온다.
이 터널의 끝이 다른 터널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끝임없이 상기하는 순간마다, 번아웃이 나를 집어삼킨다.
그럼에도 시동을 끌 수는 없다. 우선은 이 터널을 끝내야, 다른 터널에 들어갈지 말지를 선택할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우선은 통행증이라도 얻자. 고작 그 통행증이 뭐라고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지 가련하기까지 하다.
번아웃은 이미 시작되었다. 멈출 수는 없다. 그러니 오늘은 라벤더 밭으로 가자.
지독히도 끔찍한 향긋함을 맡으면 잠시는 잊겠지, 잠깐은 모른 척해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