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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쎈쓰 ssence Jun 26. 2017

'박열', 그는 누구인가

개새끼라고 하기에는 2% 부족한

"조선인에게는 영웅, 우리에겐 원수로 적당한 놈"



강렬한 자태를 내뿜고 있는 '박열' 포스터와는 달리 영화는 내게 어떠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물론 감독님은 영화 '사도'나 '동주'와는 사뭇 다르게 조금은 가볍거나 유쾌하게 풀어나가고 싶었했던 의중이 엿보였다. 하지만, 굳이 그런 선택을 할 필요가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일단,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이유는 제목조차 대놓고 '박열'이지만, 보면서도 보고 난 후에도 그가 과연 누군지 명확하게 답할 수 없다.  그가 인간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혹은 연인으로서 어떤 사람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의 사상이 어떠한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 영화를 만든 취지가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박열'이라는 사람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둔 것이라면 지금의 영화 '박열'에 만족할 수 있다. 탁월한 마케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포스터 및 예고편으로 적당한 흥미를 자아냈고 그를 알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관객영화를 통해 박열에 대한 정보 그 이상을 바란다면, 슬프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영화를 통해 박열에 대한 그 어떠한 감동도 관심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화를 보면서 박열이라는 인물이 현존했다는 사실만 취해야 했다.


정말 좋아하면서 존경하는 감독님이기도 했으며, 전작들이 잔잔하지만 크게 심금을 울렸던지라 굉장히 기대했던 만큼 실망이 컸다.



개인적으로 이제훈이라는 배우를 상당히 좋아한다.


특히 영화 '고지전'에서 비중 있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두각을 나타냈다고 생각했다. '건축학 개론' 때도 풋풋한 첫사랑을 하는 대학생 역할을 소화했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 그가 단독 주연으로서 영화를 이끌어 나가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그래서 그가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지금 영화 속 인물은 '박열'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제훈의 자아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영회에 몰입이 되지 않았다. 물론 여기서 8할은 일본어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영화 속 인물, 즉 박열이라는 사람 특성상 일본어는 빠질 수 없는 대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러닝타임 내내 대사를 일어로 치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특히 재판에서 마지막 한 마디를 거창하게 하는 박열의 모습에서 관객은 감동받거나 혹은 집중해야 할 장면이었던 것 같지만 몰입도가 떨어졌다.


그래서 결국 이런 불편함이 과연 배우의 연기 때문인지 아니면 박열이라는 사람의 문제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사실만을 다룬다고 선전 포고하듯이 얘기한 바 있다. 그래서 더더욱 박열의 삶에 큰 초점을 뒀을 것이고, 그중 그가 개새끼가 되어야만 했던 사건을 중점적으로 비춘 것도 이해된다. 그러나 스토리 상 긴박함이나 긴장감이 전혀 없었고, 그런 영화일수록 세밀한 감정 연기와 울림 있는 대사가 중요하지만 그 또한 관객의 입장에서는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한 마디로, 이도 저도 아니게 된 꼴이다.


박열과 같이 죽는다면, 나는 만족할 것이다.



미코는 정말 그 시대를 살아 숨 쉬는 후미코였다.


만일 이 영화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최희서라는 배우일 것이다. 그녀가 낯설지 않게 여겨진다면, 아마 당신은 '동주'를 본 이가 분명하다. 쿠미에서 후미코로의 변신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어쩌면, 박열보다 더 개새끼? 혹은 그들이 표현하는 영웅에 더 가까웠다.


그녀가 말하는 '아나키즘' 그리고 '아나키스트'란 것은 납득이 갔다.


어쩌면 '동주'의 송몽규보다 더 비중 있게 그려지는 '쿠미코' 역을 그녀가 완벽하게 소화해 냈기에 그나마 영화를 보면서 조금은 덜 지루했던 것 같다.


그리고 오히려 '박열'보다는 '쿠미코'의 삶에 더 눈길이 갔다.


이는 스토리 텔러의 의도된 계략이었다면, 상당히 큰 성공을 이루었다 칭찬했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그녀가 이 스토리를 리드하는 뛰어난 주연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박열'과 '쿠미코'와의 관계를 다시 한번 되짚어 봐야 한다. 연인으로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동지'다.


일본의 제국주의에 반(反)하는, 조선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하나의 목적으로 똘똘 뭉친 동지인 셈이다. 하지만, 영화는 동지도 연인도 아닌 그 애매한 경계선에 놓여 있었고, 이를 보면서 관객은 그들의 관계에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이러한 무신경이 반복되면서 나중에 영화는 끝내 오리무중으로 끝난다.

 


그 외 다른 조연들 또한, 마찬가지로 상당히 산만하게 느껴졌으며, 그의 출현이 영화에 어떤 역할을 하고 무슨 전개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조력자인지 아니면 배척자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점점 더 영화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알신잡>에서 소설가 김영하 씨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순신'장군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에게 주인공에 걸맞은 3가지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충분한 고통

분명한 목표

적어도 한 번의 기회


과연 '박열'은 주인공에 어울리는 사람이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까지 하게 되는 시점에서 과연 영화에 대한 나의 과한 기대감이 그릇된 것인지 아니면 이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연출의 잘못인지 그도 아니면 연출의 큰 그림을 따라가지 못한 배우의 부족 때문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박열'은 내게 소문만 무성한 맛집의 밑반찬과 같았다.

기본은 하지만, 그걸 가지고 크게 동요하게끔 만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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