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는데 쉽지가 않아.
일기가 오빠 브런치 글보다 재밌어~
아내가 일기를 훔쳐 봤다. 딱히 숨겨둘 만한 곳이 없어 책장에 꽂아놨는데, 글쎄 내가 없는 틈에 그걸 몰래 꺼내 본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몰래도 아니다. 그런 데 뒀으면 볼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오빠 일기 좀 보면 어떠냐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내에게 할 말이 없었다. 오히려 나 역시 당당해진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일기를 까발려도 딱히 부끄럽지 않은 삶이란 걸 증명받은 듯해서...(이런 게 가스라이팅인가)
아무튼 나도 안다. 여기(브런치)에 올린 글 다수는 재미가 없다. 온라인에 공개적으로 올리다 보니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쓴 글에 재미를 담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을 웃기려는 시도 같다고 할까. 잘 짜여진 꽁트 같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만으로 빅재미를 만들었다면 진작에 작가로 성공하고도 남았을 거다.
난 지인과 함께 있을 때 꽤나 웃기는 편인데, 남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재미의 비결은 바로 솔직함이다. 하지만 잘 아는 사람에게나 솔직하기 쉽지, 생판 남에게 솔직하기란 어렵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솔직함이 무기가 아니라 약점이 될 수 있단 걸 사회 생활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에세이를 솔직하게 쓰기 어려운 이유다.
반면 서점가를 휩쓴 인기 에세이를 보면 하나같이 솔직하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어김없이 재밌다. 잘 모르는 사람이야 '이런 건 나도 쓰겠다'며 쉽게 보지만, 글을 조금이라도 써 본 이라면 안다. 솔직담백하여 재밌는 글을 쓰는 게 젠체하느라 '좋아 보이는' 글을 쓰는 일보다 훨씬 훨씬 어렵단 사실을.
주위를 보면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까 고민하는 경우가 많지, '재밌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좋은 글, 좋은 사람에 비해 재밌는 글, 재밌는 사람이 드물다 느끼는 건 나뿐일까? 내가 보기에 이는 인간관계와 마찬가지인데, 좋은 사람이 되려고 예의 차리는 사람은 많아도 재밌는 분위기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드문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재밌는 글을 쓰겠답시고 일기 그대로를 공개할 순 없는 노릇이다. 지난 어느 글(https://brunch.co.kr/@hyuksnote/376)에서 밝혔듯 지극히 사적인 일기를 에세이라고 올려봤자 타인의 공감을 얻기는 힘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재미는커녕 공감도 얻지 못한 '죽은 글'로 남기 딱 좋다. 아내가 인정한 내 일기 또한 누구에게나 재미있으리라 보장하긴 힘들지 않겠는가.
이런, 쓰다 보니 또 재미없는 글이 되고 말았다. 시작은 솔직했는데 뒤이어 줄줄줄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서...'라며 설명하느라 그랬나 보다.
역시 재밌고 좋은 글을 쓰는 건 참 어렵다. 오늘밤 집에 돌아가면 지난 일기를 펼쳐서(이젠 진짜 숨겨놨다) 각색할 만한 글이 있을지 찬찬히 살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