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과 불공정 사회의 축소판이 된 축구판
'홍명보 감독이 성공해서는 안 된다.'
다소 과격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한 개인의 실패를 바라는 감정이 아니다. 부패와 편법, 불투명한 권력의 결탁이 반복되는 구조가 또다시 보상받아선 안 된다는 절박함이다.
홍 감독의 선임은 윤석열 정권이 극단으로 치달아 자멸하기도 전의 일이다. 당시부터 밀실 행정 논란이 거셌고, 전력강화 위원회가 들러리로 전락한 채 내부 인맥에 의해 감독 선임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국정감사 현장을 통해 전국민에게 생생히 드러났다. 팬들은 분노했고, 언론은 투명성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가적 비상 사태가 이어지면서, 스포츠계의 최대 이슈였던 사건은 금세 뒷전으로 밀렸다. 축구협회는 '국가대표팀의 안정'을 명분 삼아 모든 비판을 덮었고, 이후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로 불합리한 과정은 또 아무 일 없던 듯 봉합됐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은 점차 잊었다. 나를 비롯한 축구팬들은 무력감을 느꼈지만, 선수들을 응원해 주는 일 말고는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브라질전 대패는 그 기억을 다시 꺼내게 만들었다. 세계 최강 팀을 상대로 한 홈경기에서 대표팀은 전술이 아닌 선수 개인의 능력에 의존했다. 조직력은 보이지 않았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 홍 감독은 자신의 전술 문제가 아닌 선수 개인의 실책을 언급하며 은근히 책임을 돌렸다. 지도자의 무능을 선수 탓이나 팬 탓으로 전가하는 익숙한 프레임- 그것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실패 이후 그가 보여준 태도와 다르지 않았다.
도저히 축구를 외면할 수 없는 팬으로서 나는 또다시 화가 났다. 홍 감독의 문제는 단순한 전술이나 경기력의 문제가 아니다. '내 안의 무언가 꿈틀거린다'는 말로 자신의 명예욕과 도전의식을 국가대표 감독이라는 공적 자리에서 실현하려는 태도, 이 과정에서 책임을 회피하고 결과로 정당성을 덧칠하려는 방식이 문제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런 행태를 비판으로부터 철저히 막고 사람만 바꿔가며 반복하는 협회의 부패다. 축구협회는 언제나 내부 인맥과 여론 통제를 통해 문제를 키우고, 시간이 지나면 '결과로 보여주겠다'는 말로 모든 과오를 덮는다.
문득 유명 과학 유투버 궤도의 말이 떠오른다.
"요즘 사회는 화내는 사람이 이겨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 규칙을 지키는 사람은 손해를 봅니다."
궤도의 말은 단순한 세태 비판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목소리가 크거나 권력에 가까운 사람의 말이 아니라 정직하게 순서를 지키는 이들의 인내와 원칙이 존중받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규칙을 무시하고 감정이나 편법으로 밀어붙이는 문화는 결국 시스템을 망가뜨린다. 지금의 축구협회가 바로 그 병든 축소판이다.
만약 홍명보 감독이 이런 구조 속에서도 성공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편법의 승리이자 사회의 퇴보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운 좋게 회복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축구는, 그리고 이 사회는 더 깊은 무기력 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나는 홍명보 감독이 꼭 실패하길 바란다. 그의 실패가 곧 정의의 회복이자 정당성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부당한 성공이 박수받는 순간, 정직하게 기다리고 절차를 지키는 사람들은 또다시 세상에 배신당한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월드컵의 순위표가 아니라, 공정한 과정이 존중받는 사회다. 홍 감독의 실패는 그 회복의 신호탄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