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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10주년 전시, 솔직한 후기

by 차돌


벌써 몇 주가 지났지만, 브런치 10주년 팝업 전시에 다녀온 이야기를 이제야 꺼낸다.


사실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희소한 대중 글쓰기 플랫폼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지지하고 응원하기엔, 몇 년 전 코엑스 전시에서 이미 한 차례 실망을 겪었기 때문이다. 몇 년 만에 '그럴듯한 전시'를 펼쳐낼 거라 믿을 만큼 순진한 기대도 품지 않았다.


브런치에 좋은 이야기만 써야 할 이유도 없다. 건강한 플랫폼이라면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고백하자면, 공모전에 응모한 두 편의 글이 모두 광탈한 뒤, 한동안 글을 올릴 의욕조차 사라졌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렇게 브런치를 비판함으로써 다시 글을 쓸 동력을 얻어보려는 얄팍한 욕심도 있다.




현장에서 본 '100인의 작가' 전시는 다양한 소재와 작가 100인의 구성 그 자체에 방점을 둔 기획처럼 보였다. 정작 개개인 작가가 10주년 브런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그 경험을 문장 속에 어떤 결로 녹여냈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오히려 내 탈락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물론 좋은 글도 많았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진 않지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은 게 사실이다. 선정되지 못한 작가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그만큼 선정된 글은 더 훌륭하고 완결성 있는 글이길 바랐던 것이다.


특히 전시장 곳곳에 놓인 특정 작가의 개인 소장품 전시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유명세나 직업적 특이성만으로 선별한 듯한 분들의 사적인 물건이 과연 브런치 10주년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그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전시 공간을 채울 만한 섬세한 스토리나 기획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적어도 그날 전시에서만큼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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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쓰다 보면 괜히 운영진과 타 작가들에게 미안해지다가도, 한편으로는 또 생각한다. 브런치에 10년을 연재했는데 이 정도 솔직함도 말 못할까. 그동안 참고 참다 터져 나오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은 넋두리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데서 브런치 흉보느니, 이곳에 쓰는 게 그나마 예의라는 나름의 의리도 있다.


브런치가 내세우는 것처럼 다양한 작가의 참여와 글쓰기의 부흥을 원한다면, 적어도 '그들만의 잔치'에 머물지 않기 위한 고민은 필요하지 않았을까. 서촌이라는 멋진 공간의 분위기를 제외하면, 이번 10주년 전시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는지 또렷하게 읽히지 않아 아쉬웠다. 누적 게시글, 베스트셀러 판매액 같은 숫자 지표를 한쪽 벽면을 다 할애해 인쇄한 건 솔직히 스타트업 송년 행사에나 어울릴 법한 모습이었다.


꾸준히 글을 써온 작가들의 노하우,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한 훈련법, 브런치팀이 어떤 기준으로 소위 '밀어주는 글'을 선정하는지- 정작 많은 브런치 작가들과, 예비 작가가 궁금해 할 만한 건 그런 '내용'이 아니었을까? 혹은 작가의 북토크라든지 세미나 참여 기회라도 있었다면 이번 전시가 훨씬 깊이 있게 기억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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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까지 길게 불만을 늘어놓는다는 사실 자체는 결국 내가 브런치를 여전히 좋아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애정이 없는 플랫폼이라면 굳이 서촌까지 발걸음을 옮기지도 않았을 테고, 공모 탈락 이후에도 글에 대해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저, 선정된 100인보다 더 많은 글쓰는 이들에게 힘을 주고, 서로의 문장이 더 멀리 닿을 수 있는 공간으로 브런치가 성장하길 바란다.


브런치가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작가의 문장을 품어온 것처럼, 앞으로의 10년은 그 문장들을 더 단단하게 떠받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느낀 아쉬움도 결국 그런 바람의 또 다른 표현이었으리라. 애정은 때로 가장 솔직한 비판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플랫폼이 더 흥행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p.s.

끝까지 이걸 올릴까 말까 하다가 아내에게 슬며시 보여주며 의견을 물었다.

"좋네. 물론 열폭한 사람 글 같긴 한데, 재밌는 오빠만의 관점이야."


음... 다시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아내의 말에 용기를 얻어 결국 발행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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