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돼지고기김치밥과 토마토스프
토요일 아침이다. 눈을 떴는데 이렇게 민숭민숭할 수가 없다. 딱히 일어나야 할 일도 없는데 그렇다고 또 꼭 누워 있고 싶은 마음도 안 든다. 어제 동거인 딸아이는 생일을 맞아 아빠 집에 갔다. 모처럼 해방감이 들어서 금요일 밤에는 시시껄렁한 드라마를 내리 세 편을 몰아보고 세 시 조금 넘어서 잤다. 잘 안 하는 짓이다.
수십년 구력이 눈꺼풀 올림을 자동으로 만들어서 늦어도 일곱 시나 여덟 시 경에는 꼭 눈이 떠진다. 눈을 뜨고 나서도 한참, 아홉 시가 지났는데도 하릴없이 뭉기적거리는 자유를 누린다. 자유와 해방은 젊고 패기 넘치는 말인데, 그말들조차 나이 먹은 내게 오니 주름살이 생겨버린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주름진 자유와 해방이 맘에 든다.
다 큰 딸아이가 내게 뭘 해달라고 까탈스러운 요구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은 내손으로 지은 내 밥을 먹고 사니 주말에는 조금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것도 짐이라고 잠시 벗어두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주어졌다.
마른 눈꼽을 달고 부스스한 행색으로 뜨개질 바구니를 끌어다 앞에 두고 다시 텔레비전을 켰다. 어제 보던 드라마를 보며 뜨개질 하는데, 이 별볼일 없는 걸 하는 게 그렇게나 평화롭고 좋다. 물론 솜씨가 별로여서 뜨개질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는 한다. 스트레스 없는 삶은 중력 없이 살아야 하는 우주 공간의 삶만큼이나 불가능한 것이겠지.
빈 속에 뭔가를 집어먹은 거 같은데 생각이 잘 안 난다. 드라마를 2회 이어보며 뜨개질을 하다보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이젠 아무거나 해도 다 피곤하다. 오십대 중반의 나이에 이렇게나 무시무시한 육체적 변화가 기다리고 있을 줄 꿈엔들 알았으랴. 아니다, 내가 오십대 중반이 될 거라는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증상은 또 뭐가 그리 다양하고 복잡한지, 당황했다가 불안했다가 받아들이자 되뇌다가. 그러면서 늙어가는 몸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늦은 점심은 미리 정해뒀다. 돼지고기김치밥을 해먹으려고 돼지고기 뒷살을 꺼내 뭉텅뭉텅 자르고, 허연 기름 부분을 도려내면서 이걸 모았다가 짜장을 할 때 쓰면 좋은데, 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귀찮고 양도 많은 것 같지 않아 버리기로 했다. 압력밥솥 바닥에 고기를 깐 다음, 알맞게 익은 김장김치를 꺼내서 가위로 쑹덩쑹덩 썰어넣는다. 그런 다음 흰쌀을 씻어 그 위에 붓는데, 물은 그저 대략 4, 5 밀리미터쯤, 찰랑찰랑 할 정도로 맞추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뒀다가 30분쯤 지나 밥을 지었다.
이북 출신 엄마는 김장김치가 푹 익어갈 무렵이면 자주 김치밥을 해주었다. 어릴 때도 김치밥을 너무 좋아해서 꼭 두 공기씩은 먹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김치밥은 소화가 잘 되니 마음껏 먹으라고 그랬다. 지난 겨울 양평에서 구매한 김장김치를 받자마자 매콤한 고춧가루를 더 넣어둔 덕에 김치가 맞춤하게 매콤하다. 뜨끈한 김을 올린 다음, 대접 가득 퍼서 참기름만 넣고 슬슬 비벼 쇼파에 앉아 쿠션 위에 올려두고 먹으며 다시 드라마를 보는데,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뻔했다. 김치가 넉넉해서 따로 양념간장을 안해도 됐다. 이렇게 맛있는 걸 혼자 먹는 게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이 밥은 일이인분 해서는 제맛이 안 나고, 데워 먹어도 맛있지만 갓 했을 때가 진짜 맛있어서 더 아쉬웠다. 한 대접 퍼주면 좋으련만.
알량한 것들을 나누면서 좋아하다
그러다 부동산 언니 생각이 났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아파트 초입 상가에 있는 부동산을 통해 구입했는데, 그 흔한 인연이 은근 가까워졌다. 그렇다고 대단히 친한 사이는 아니다. 가끔 주말에 사람 없을 때 들러서 언니가 타준 봉다리 커피를 얻어마시며 수다를 잠시 떠는 사이. 일단 막 김이 나는 밥을 유리 찬통에 담았다. 돼지고기가 밥에 섞여 있는데다 낯선 음식이라 좋아할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누구랑 나눠 먹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한 음식이라 담으면서도 조금 편치가 않았다.
그리고 작아서 잘 안 입는, 그렇다고 헌옷통에 쑤셔박기는 좀 아까운 겨울외투도 두 벌 ‘일단’ 담았다. 이것 역시 참 애매하다. 그래도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소용이 될지도 모른다고 나를 위로하며 외투를 보자기로 싸고, 쇼핑백에 김치밥을 넣고 부동산 문을 열었다. 너무나 알량해서 보따리를 내놓기가 면구스럽지만, 진심이 뭔지 아는 양반이니, 커피 한 잔 얻어마시고 그것들을 내밀었다.
정직하고 뚝뚝하고 꾸밈없는 투박한 말투를 쓰는 부동산 언니는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자질구레한 치장이 없고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 오후가 되면 뇌가 작동을 잘 안해서 아침시간에 늘 부동산 관련 공부를 한다고 했다. 세법이랑 정책이 자꾸 바뀌니 공부해서 숙지하지 않으면 고객이 신뢰할 수 없어서 계속 공부해야 한다며, 십대 남자아이 같은 표정으로 말하고 웃는 사람이다.
우리는 나의 알량한 보따리를 두고 정말로 즐거워했다. 가져간 외투가 마음에 딱 든다고 했다. 둘다 거의 안 입은 새것이긴 하다. 아, 너무나 다행이다. 김치밥도 너무 고맙다고 했다. 저녁에 김밥 한 줄 사서 남편이랑 둘이 먹으면 저녁 일도 덜고 너무 좋다면서, 바쁜 지나씨에게 내가 해줘야 하는데, 거꾸로 내가 받았다며 고맙다고 했다.
부동산을 아들아이와 함께 했는데, 이번에 아들의 업장을 새로 만들어 내보내게 됐다며, 혼자 하면 좀 벅찬데 퇴직한 남편이 온다고 해서 네버네버 못 오게 했다는 얘기를 재미나게 했다. 사람을 새로 쓰려니 믿을 만한 사람 찾기가 어려워 걱정이라길래, 남편을 파트타임으로 써먹어도 괜찮지 않냐고 했는데, 어떻게 됐는지 갑자기 궁금하다.
밥을 너무 많이 먹어 돼지가 됐다고 하니까 한바퀴 돌고 들어가면 배가 꺼질 거라고 해서 언니의 말대로 40여분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나갈 땐 곰이었는데 돌아올 땐 돼지가 돼서 온 것 같다. 곰이 아니니 다행이지. 그렇게 한바탕 휘젓고 나니 금세 어둠이 찾아왔다. 참으로 한심할 정도로 별거 없는 일상이 내 마음에 꼭 들었다. 거창하고 의미 있어 보이는 것들은 예쁘지만 무거운 가죽가방 같다. 이제는 어지간하지 않으면 그런 가방을 애써 들지 않는다.
딸아이에게 생일 톡을 보내며
그러고도 자유의 날이 하루 더 남았다. 딸아이가 아빠 집에 있다 친구들과 저녁 약속을 하고 밤늦게 집으로 들어온다니, 야호~.
어제 일찌감치 잠을 잤더니 일찍 깨버렸다. 일곱 시도 안 됐구만. 아, 요즘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밤 10시가 조금 넘으면 잠을 자러 들어간다. 딱 노인네다. 잠들기 전에 이거저거 하는 게 좋아서 12시가 슬쩍 지나야 잠들곤 했는데, 체력이 축나서 10시쯤 되면 너무 피곤하다. 아니, 무슨, 정말로 노인이 된 것 같은데, 뭐 이상할 일도 아니다. 태어나면 동반되는 과정이니.
오늘은 일찍 테이블에 앉았다. 식탁겸 테이블이 제법 길어서, 한 귀퉁이를 내 책상처럼 쓰고 있는데, 한두 해 전부터 영어 필사를 하고 있다. 거의 몇 개월을 끌어온 <Book of a Thousand Days>가 거의 끝나간다. 주인공 대쉬티와 함께 한 시간들. 350페이지 분량이라 오래 걸렸다.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같이 있었다.
필사를 하다가 딸아이 생일 아침이라 카톡을 보내는데, 특별하지도 않은 내용을 쓰면서 괜히 울컥 하는 기분이 들었다. 작은 떼쟁이 꼬마가 이렇게 근사한 어른으로 성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우리 엄마도 나를 보면서 비슷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돌고도는 물레방아 인생이다.
조금 있으려니 출출해서 초간단 토마토스프를 하려고 움직였다. 작은 뚝배기에 토마토를 잘라 넣고, 물을 좀 넣고, 버터도 조금, 소금도 조금, 마늘도 조금, 후추도 조금, 허브 가루도 조금 넣고 마지막으로 계란 하나를 탁 깨서 넣고 싱싱한 노란자를 젓가락으로 살짝 구멍을 내고 끓이면 끝이다. 딸아이가 해주던 건데, 바게트 한두 개 먹으면 든든한 아침요기가 된다.
지금은 단촐하니 둘이 살지만, 4인가족의 음식을 20여년 해먹여와서 밥하고 반찬하는 게 어려울 게 없는데, 내 먹을 음식해본 기억이 없다. 냉장고에 돌아다니는 찬 꺼내놓고 먹거나 라면이나 끓이거나. 내게 인색했던 게 음식뿐이었으랴만. 이제 혼자 사는 노인의 삶이 기다리고 있으니, 슬슬 나를 위한 요리를 하나씩 새로 배워야 할 시간이 왔나보다. 두려워하던 많은 것들이 알고 보니 별거 아니어서 사는 게 드라마만큼 시시껍절해 보이고, 그래서 더 편해졌다. 체력이 딸리는 것 빼고는, 다 괜찮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