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위험해요. 하지만 위험을 감수할 만큼 아름답잖아요"
우즈베크 현지 여행사 인스타에서 우연히 한 장의 에메랄드빛 맑은 호수 사진을 보는 순간 이곳은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인 우즈베크어만 하는 내가 DM을 보내고 답장을 받고 첫 계좌 이체를 하고 집합 장소를 확인하는 등 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지만 한인 여행사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두 배 이상 저렴했기에 현지 여행사 직원에게 몇 차례의 확인 과정을 거치고 예약했다.
때마침 타슈켄트에서 당일치기가 가능한 근교 여행지를 찾던 중이었고,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에 반해 새벽 5시 30에 출발해 저녁 9시에 도착하는 빡빡한 일정의 여행을 가기로 했다.
우룬가치 호수(Urunghach Lake) 두 개를 보고 돌아오는 것이었는데 점심 식사를 사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없으니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오랜만에 소풍 가는 기분으로 부족한 재료지만 정성껏 김밥 도시락과 생수, 군것질할 스낵 몇 가지를 준비했다.
집결 장소는 집과 거리가 멀었으며 집결 시간은 새벽 5시, 출발은 5시 30이었다. 이곳에서 대중교통으로 새벽에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었는데 타슈켄트도 24시간 택시를 이용할 수 있었다.
여행사로부터 절대 늦지 말라는 통보를 몇 차례 받은 터라 새벽 4시에 일어나 부산을 떨고 들뜬 마음으로 집결지로 갔다. 현지 여행사에서 가는 상품이라 외국인을 포함해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모두들 도대체 이 낯선 이방인들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 무척 궁금해 말을 걸어왔다.
우리를 우룬가치 호수(Urunghach Lake, ‘우렁가치’라고도 함)로 태워다 줄 단체 버스는 출발 시간이 지나도 올 기미가 없었는데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나타난 여행사 직원은 버스가 늦어질 거라고만 이야기했다. 절대 늦지 말라던 그들이 약속 시간이 30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고, 더 놀라운 것은 직원들은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버스는 타슈켄트 도시를 벗어나 비포장 길로 들어섰고 구불구불 산을 넘어 4시간가량(약 150km)을 이동했다. 예전에 장가계를 갔을 때 천문산을 가기 위해 구불구불 난 길을 따라 미니버스가 산을 오를 때, 어지럽던 일이 떠올랐으나 사실 이곳의 도로 사정은 더 열악해 어지러움에 더해 엉덩이도 쥐가 날 지경이었다.
4시간가량의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드디어 우리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행 상품에 대한 설명은 거창했지만 실상은 왕복 픽업해 주는 것 외에 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시간 맞춰 움직이는 패키지여행을 선호하지 않아 오후 5시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만족스러웠다.
호수를 보기 위해 걷는 동안 친절한 우즈베크 사람들은 외국인이 이곳까지 온 것이 신기했는지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반가워해주면서 과일과 빵 등 다양한 먹을거리를 나눠주는 친절함을 베풀어 감동을 주기도 했다.
우룬가치(Urunghach) 첫 번째 호수에 도착하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사진에서 본 물빛 그대로의 호수였고 실제의 모습이 상상한 것보다 더 아름답고 장관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봤다.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는데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두 번째 호수가 있고 대부분 그곳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들은 우리도 두 번째 호수까지 일단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는 길이 좁고 영 엉망이었는데 산행인지 몰랐던 우리는 밑창이 다 낡은 운동화가 난감했다. 몇 차례의 한라산 등반도 쉬웠던 우리는 등산로도 없는 이 높은 산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사람들이 걸어 자연스레 길을 내고 산을 넘는 이 길은 등산로가 아니라 가파른 길의 연속이었는데 나무 한 그루 없는 돌산은 잡을 곳이 하나 없어 아차 하는 순간 바로 옆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아슬아슬한 몇몇 구간을 지나 가파른 길을 기어 올라가면서 머릿속은 온통 내려올 때의 두려움으로 가득 찼지만 되돌아 내려가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산을 넘어가니 바위산 틈으로 장관이 펼쳐졌다. 우룬가치 호수(Urunghach Lake)의 물은 천년설과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자연호수라 근처에만 가도 추울 만큼 공기가 차고 속이 상쾌하게 뚫리는 묘한 기분마저 든다.
내려오는 길은 걱정했던 것 이상의 고난도 코스였다. 돌산이고 가파른 흙길이라 잡고 의지할만한 나무 하나 없어서 도무지 어떻게 내려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데 우즈베크 사람들은 익숙하다는 듯 빠른 속도로 요리조리 미끄럼 타듯 내려가는 것이었다.
한치라도 발을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라는 것을 보고 나니 발이 더 떨어지지 않아 사색이 되자 친절한 우즈베크 분들이 앞뒤에서 잡아주어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이런 난코스의 산을 등산장비 하나 없이 갓난아기를 안고 넘어가는 몇몇 분들을 보았는데 너무 걱정되기도 했다.
대부분 운동화도 아닌 신발을 신고 등산로도 없는 바위 산을 아슬아슬하게 곡예하는 우즈베크 분들이 놀라웠다. 우르겐치가 어떠했냐고 묻는 우즈벡분에게 낭떠러지 산행을 하는 우즈벡 분들 너무 위험해요~!라고 하자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그렇죠 알아요. 매우 위험해요. 하지만 위험을 감수할 만큼 아름답잖아요!!"
우즈베키스탄 자연보호 구역에 숨겨진 우룬가치 호수(Urunghach Lake)는 우렁가치로도 불리는데 믿을 수 없을만큼 맑고 투명한 물빛은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호수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특히 이 호수는 빙하가 녹으면서 만들어진 호수이기 때문에 5~6월 한시적으로만 볼 수 있는(이 시기가 지나면 수량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자연경관이라는 점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죽음의 두려움과 아찔함을 느끼며 힘겹게 내려와 1호수에서 여유를 부리며 물놀이도 하고 우룬가치 호수(Urunghach Lake)의 황홀한 풍경에 취해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
"여보, 우르겐치를 또 간다면 이젠 1호수에서만 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