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으로 사는 인생 앞, 한 점 부끄럼
우리 엄마의 엄마는 엄마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
방송을 보니 효리네 엄마의 엄마도 어릴 때 돌아가셨다.
“우리 엄마 이름은 엄봉순”
-아빠 이름은?
“전청서던가…”
-엄마 이름은 정확히 기억하고 아빠 이름은 잘 기억을 못하네.
<엄마, 단둘이 여행갈래?> 중에서
나도 엄마의 엄마의 이름을 알고 있다.
‘심 영자’
심씨를 볼 때마다 엄마는, 심씨는 하나밖에 없다며 먼 친척일 거라고 말하곤 했다.
엄마 없이 자란 엄마들은, 대체 어떻게 엄마를 하는 걸까.
그 생각을 하면 아득해져 그만 생각을 접고 외면하게 된다. 이러다 결국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니까…’ 와 같은 말로 과거를 무마할까봐서.
난 아직 묵은 마음을 털어내지 못한 성 싶다.
효리네 엄마는 막냇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나이 사십의 노산이었고, 피를 많이 흘려 하얗게 질린 얼굴을 업고서 십 리, 이십 리 되는 먼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거지 뭐.”
담담한 어투에 담긴 그리움의 세월은 헤아릴 길 없었다.
‘시대’라.
나는 좋은 시대에 태어난 걸까.
내가 엄마의 엄마 시대에 태어났다면 이미 결혼도 하고 자식도 있었겠지.
내 나이쯤이면 이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시대가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나는 지금 보너스로 살고 있는 게 아닌가?
노래방에서 열창하다 받은 서비스 시간마냥,
꽁으로 받은 인생 아닌가 말이다.
정녕 그렇다면 흠뻑 즐기며 하루하루 신나게 살아가야 할 터인데 나는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잎새에 이는 바람을 보며 부동산 임장기를 정리하고 있던 나는, 어딘지 모르게 부끄러워 하염없이 창밖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흔들리는 가지와 빛나는 초록 비늘은 기둥의 굳건함을 자랑하듯 펄럭여댔다.
나는 왜 이리도 성공과 돈을 쫓고 있는 것인가.
이유를 찾지 못해 내내 답답했지만, 뒤처질까 불안해 일단 내달렸다.
그러나 나는,
한강뷰 아파트를 욕망하지도 않고 집 한채 가지겠다는 바람도 없었다. 운전석 자리 뒤로 제끼면 그곳이 침대가 되었다. 2만원 짜리 게스트 하우스 침대에서 이불을 꼭 덮으면 ‘온 세상이 내 집 같다’ 생각했다.
토끼같은 내 새끼와 가족을 이룰 생각도 없었다.
준비 안 된 부모는 세대를 넘어 전승되는 자연재해다.
재앙을 계승하기는 싫었다.
그럼에도 돈이 세상의 규칙인 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살기 좋은 아파트와 명품 학군, 타인의 욕망을 탐구하며 아등바등 애를 써야 했다.
그리하여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수 없게 된 나는
그 시대와 꼭 같이 괴롭지만,
별을 노래하는 마음도
나에게 주어진 길도
모른 채 헤매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울까
올려다 본 하늘에
보이지 않는 별이 원망스러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