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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Nov 12. 2024

천사백 년의 인연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신라와 페르시아 제국의 인연을 사랑 이야기로 풀어낸 역사소설을 만났다. 작가는 방송국 PD로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와 관련된 역사적 증거를 모으고, 경주 시장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제공받아 이 소설을 완성했다. 자료 조사에만 2년 반이 걸렸다는데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철저한 자료 조사가 그대로 드러나는 만큼 방대한 고증에 랄 수밖에 없다.


<쿠쉬나메>통일신라 전후의 신라를 다룬 페르시아 구전 서사시다. '쿠쉬의 기록'이란 의미로 이란의 '하킴 이란샨 아불 카이'가 기록한 신화 역사의 일부다. 신라에 온 왕자 아비틴은 공주 프라랑과 결혼해 페리둔이라는 아들을 낳고 페르시아를 다시 일으켰다고 기록돼 있다. 현재 이란에서는 <쿠쉬나메>의 내용을 전래동화로 배우고 있다. 그들은 조상인 아비틴 왕자를 받아준 바실라(신라)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알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적이라고 한다.


작가 이상훈의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쿠쉬나메>의 기록에서 출발한다. 661년 페르시아가 아랍 이슬람에 패망하자 아비틴 왕자는 당나라로 망명한다. 환대하던 고종과 달리 실크로드를 끊겠다고 위협하는 아랍에 동조한 측천무후를 피해 679년엔 바실라(신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왕자가 우여곡절 끝에 신라에 정착하여 재건을 노리는 중 신라공주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쿠쉬나메>에는 프라랑이라는 신라공주가 기록으로 남았지만 우리 역사엔 그 기록이 없다. 다만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이 신라에 온 시기가 문무왕이 다스리던 때라 프라랑이 그의 딸이라고 추정하게 된 것이다.


왕실 혼인은 대체로 정치적이거나 정략적인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신라 왕실 공주의 국제결혼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쉬나메>에는 신라공주와 페르시아 왕자가 결혼했다는 기록이 분명하게 남았으니 작가는 그 혼인이 사실일 거라고 말한다. 천사백 년 전 당시 신라가 인도와 페르시아로 진출했다는 기록이 있고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유물 중에 페르시아의 흔적이 많은 것을 보면 국제결혼은 분명한 사실로 다가온다. 가락국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후가 인도 사람이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봐도 신라공주의 국제결혼이 허무맹랑한 풍설로 볼 수는 없을 듯하다.


소설에선 아비틴 왕자가 만난 신라인들의 이야기도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모두 사실이라고 믿고 싶을 만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마치 맛깔스러운 요리를 앞에 둔 것처럼 왕성한 욕구가 당기는 소설이다. 

동서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사마르칸트(현재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신랑 화랑 죽지랑과 화엄종의 대가 의상 대사와 우정을 나눈다. 의상대사가 어려서부터 형처럼 따르며 존경했던 원효대사를 만나면서 요석공주(태종무열왕의 딸)와도 친분을 쌓는, 원효와 요석공주의 아들 설총에겐 원효의 부탁을 받아 페르시아의 문화와 철학을 가르치며 스승이자 아버지 역할도 한다,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까지 다양한 신라인들과 만나 도움을 주고받으며 페르시아를 되찾으려는 아비틴과 그의 아들 페리둔의 삶이 역사와 설화, 전설을 바탕으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덕분에 국어 시간에 배웠던 신라 향가 '모죽지랑가'를 오랜만에 찾아보았다. 경주 원성왕릉 앞에 세워져 있다는 서구인 석상(소설에선 페리둔으로 예상)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흔적을 찾아 겨울이 오기 전 발걸음을 재촉해 봐야다는 마음도 생겼다. 원효가 마지막에 머물던 자재암, 공주봉과 원효 폭포가 동두천 소재 소요산이라고 하니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삼국유사> <쿠쉬나메>와 만나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와 문명에 대해 짚어주는 바람에 신라라는 나라를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 신라는 왜 이민족인 당나라와 손을 잡았을까에 집중하느라 신라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후손들이 사는 머나먼 페르시아까지 사신을 보내고 실크로드를 누빈 걸 보면 상당히 개방적인 나라였음에 틀림없다. 한반도에 가둔 사대주의적 역사관라의 위상을 축소시킨 것 같아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경주에서 오래된 집을 수리하다 발견된 페르시아 국새를 계기로 서울과 이란에 테헤란로와 서울로가 건설되었다. 테헤란로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으나 소설 덕분에 건설 배경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란에선 테헤란로가 널리 알려진 상태라 이란인들은 한국 방문 시 반드시 들러가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서울로와 테헤란로는 천사백 년이라는 시간과 인연을 보존하는 가교 역할을 거뜬히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라 원성왕릉을 지키는 서역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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