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테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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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 “김 과장, 왜 굳이 이 업체와 계약을 유지하는 거지? 여기저기 컴플레인이 많아.”
(김 과장) “거기보다 싼 곳이 거의 없습니다.”
(부장) “좀 성의를 가지고 답변해 봐요. (팸플릿을 하나 내밀며) 여기도 괜찮아 보이는구먼.”
(김 과장)“…….”
[김 과장의 입장]
부장님 너무 속보입니다. 기존에 있는 명함업체를 왜 자르고 이 업체랑 계약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이전 업체는 최저가 입찰로 결정된 업체거든요. 물론 지금 이 업체가 가격이 이전 업체보다 아주 비싼 건 아닙니다. 그런데 가격이 올라간다고 품질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회사 규정이 변경돼서 1억 이하의 지출은 최저가 입찰을 안 하는데, 그걸 알고 아는 업체를 넣는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어요. 만약 이 업체랑 왜 계약을 했냐고 하면, 그 근거를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부장님 하자는 대로 하면 속은 편할 것 같은데, 나중에 감사라도 받게 되면,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러다가 내가 다 뒤집어쓰는 건 아닌지.
매직 워드 있지 않습니까?
“난 결제만 하고 실무자가 다 알아서 했어요.”
[부장의 입장]
김 과장은 별거 아닌 거로 깐깐하게 구는 게 있어요. 직원들이 기존 명함업체에 불만이 많아요. 최저가 입찰이니 뭐니 하는 절차가 없어졌다 해도, 명함 업체 바꾸려면 자기가 발품 들여서 찾아봐야 하잖아요. 내가 그 수고를 덜어준 줄은 모르고, 그냥 귀찮으니 기존 업체로 하고 싶은 거겠죠.
‘문 간에 발 들여놓기(Foot-in-the-door)’ 1) 라고 들어보셨나요?
별거 아닌 사소한 부탁을 들어주면, 나중에는 무리한 부탁, 처음 요청과 성격이 다를 수도 있는 부탁까지 들어주게 됩니다.
영업사원들은 처음부터 물건을 사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YES’라고 답할 수 있는 사소한 질문을 던지죠. 마지막에 상대방에게 원하는 바를 이야기해 ‘YES’ 답변을 받아냅니다.
‘설득의 심리학’의 저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이를 ‘일관성의 법칙’으로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선택의 상황에서 일단 선택을 하거나 견해를 밝히면, 그 결정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려 합니다. 그에 맞춰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들을 합리화/정당화합니다.
‘문 간에 발 들여놓기(Foot-in-the-door)’의 반대는 문전박대 전략(Door In The Face Technique)'입니다. 거절 후 양보하게 만드는 거죠. 아예 처음부터 상대방이 들어줄 수 없는 큰 부탁을 해서 거절을 할 수밖에 없게 합니다. 그다음에 작은 부탁을 하면 상대방은 미안해서 들어주게 됩니다.
일단 첫 번째 부탁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부담이 되는 부탁인 데다, 상대방도 큰 부탁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작은 부탁을 하니, ‘양보’를 받은 셈입니다. 그러니 나도 ‘양보’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거절하는 것은 마음이 불편한 일입니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질까, 걱정되어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첫 번째의 과도한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단 말이라도 꺼내 보는 게 손해날 일은 없는 거죠.
큰 부탁을 위해 작은 부탁을 먼저 하든 작은 부탁을 위해 큰 부탁을 먼저 하든, 내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고민하지 말고, 내 기준으로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명함 납품업체를 바꾸는 것, 이 한 번의 시작이 더 큰 요청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명함 납품업체를 바꾸는 것을 거부한다고 해도 다른 요청을 할 수도 있습니다.
초반에 단호하게 끊는 것이 좋습니다.
애초에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업체를 바꾸겠다는 사람이,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질 리가 만무합니다.
[괴로움을 겪고 있는 당신을 위한 제언]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들어주지 않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만, 여의치가 않다면, 그 업체를 선정하는 이유를 제삼자가 보아도 수긍이 갈 수 있을 정도로 보고서나 품의 자료를 완벽하게 만드시길 바랍니다.
정도가 지나치다 싶다면, 감사실이나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구나 담당자에게 제보하시기 바랍니다. 부장이 명함 대행업체에 소정에 사례비를 받았다면 배임죄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배임죄(背任罪)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임무를 저버리고 불법행위를 하여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임무를 맡긴 사람에게 손해를 입힘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를 말합니다.
손해를 입었더라도, 행위자 또는 제삼자가 얻은 이익이 없다면 배임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판례 2)는 업무상배임죄는 본인에게 재산상 손해를 가하는 외에 임무위배행위로 인하여 행위자 스스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할 것을 요건으로 하므로,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였다고 할지라도 행위자 또는 제삼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사실이 없다면 배임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배임의 죄는 적용 범위가 넓어 법리 적용이 모호한데다 재판에 회부 되었을 경우 무죄율이 높은 범죄입니다. 그러나, 조심하셔야 합니다. 한두 번 가볍게 생각한 행동이 ‘배임’으로 이어질 수 있고, 사회적 평판을 고려했을 때 커리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최악의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1) Freedman J. L, & Fraser, S. C. (1966). Compliance without pressure: The foot-in-the-door techniqu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4(2), 195-202.
2) 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16도3452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