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달 로이의 비극
*드라마 <석세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18년 HBO에서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석세션>은 내가 본 드라마 중 가장 연극적인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연극을 닮았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극작가로 불리는 셰익스피어의 글쓰기가 가지고 있던 특성도 가지고 있다. 지금부터 <석세션>의 숨은 디테일들과 함께 이 드라마가 왜 주목할 만한지, 그리고 셰익스피어와는 어떤 닮은 부분이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석세션>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아빠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자식들의 이야기'이다. 회사라느니 권력 다툼이라느니 공식 시놉시스에 나와 있는 이런 말은 전부 필요없다. <석세션>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키워드는 회사도 상속도 아닌 가족이다. 주인공 켄달 로이는(원톱 주인공물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세 형제의 이야기에 가깝지만, 시즌 4 최종 결말을 본 이상 나는 켄달 로이를 당당하게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안노 히데아키의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이카리 신지와 닮았다. 이카리 신지는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던 아버지로부터 어느 날 불려가게 되는데, 그가 불려간 이유는 '에바'라고 불리는 거대한 기계에 타서 괴수를 물리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카리 신지는 에바에 타기 싫어해서 아버지와 갈등을 겪지만 자신보다 더 약해 보이는 조종사를 태우겠다는 협박에 자신을 희생해서 결국 에바에 타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에바에 타서 괴수를 물리쳐야 한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동화되어 자신이 인류를 구하지 못하면 어떡하냐는 심한 불안감과 공포심에 시달린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우리는 곧바로 이카리 신지와 켄달 로이를 비교해볼 수 있다.
켄달 로이는 7살 때 아버지로부터 회사 CEO 자리를 약속받았고 그것은 켄달 로이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켄달 로이가 가지고 있는 목표는 오직 한 가지,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아 경영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늙어서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 할 시점에서도 켄달 로이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석세션> 시즌 1은 아버지가 이런 발언을 철회하면서 시작한다. 물론 아버지 로건 로이는 켄달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준 적이 없다. 켄달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은 오직 회사를 경영해야 한다는 사명이고 그 자신의 마음 속에서 생겨난 욕망도, 할 줄 아는 것도 회사를 경영하는 것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이카리 신지를 떠올려볼 수 있겠다. 신지가 해야만 하는 것, 그리고 할 줄 아는 것은 에바를 조종하는 것 밖에 없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유일한 욕망이 자라나서 이제는 자신을 잡아먹어버린 것이다. 목표가 하나밖에 없는 맹목적인 인생은 필연적으로 자신을 파괴한다.
'에반게리온'은 수많은 애니메이션의 고전으로 불린다. 그 이후에 탄생한 다른 모든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주었으며 아직도 우리는 대디 이슈가 있는 캐릭터를 떠올릴 때 가장 대표적으로 이카리 신지를 떠올린다. 그만큼 에반게리온의 플롯은 다른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신지라는 캐릭터는 보편적인 특성을 가진 캐릭터가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석세션>이 에반게리온을 참고해서 만들어졌다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한계를 뛰어넘은 좋은 이야기들은 서로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반게리온과 <석세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아버지의 사랑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나 좋아할 법한 이야기다. 물론 정신분석학적으로 이 이야기에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좀 더 문학적인 측면에서 <석세션>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카리 신지는 혼자였지만 켄달 로이는 혼자가 아니다. 그에게는 로만과 시브, 그리고 코너라는 형제들이 있다. 물론 코너는 이 이야기에서 거의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로만과 시브, 그리고 켄달이다. 셋 모두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를 경영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아버지의 사랑이 아버지의 인정과 혼동되었기 때문이다. 그 둘은 같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로이 형제들은 둘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제작진들은 켄달 로이가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석세션>이 인물 혼자서 행동하는 장면보다 다른 인물과 대화하며 상호작용하는 장면이 더 많다는 점이다. 모든 사건은 가족 외부에서 발생해서 로이 가족을 덮쳐오거나 진상이 따로 존재하는 미스터리한 것이 아니라 로이 가족 내부에서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일어나는 것이다. 즉, 대사를 통해 모든 사건이 발생한다.
대사를 통해 모든 사건이 발생하는 것, 이것은 셰익스피어 연극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다. 햄릿은 유령에게 이야기를 전해듣고 맥베스는 세 마녀에게서 예언을 듣는다. 모든 사건은 거기서 시작한다. <석세션>에서 모든 발단은 로건 로이다. 로건 로이가 유령의 입도 마녀의 입도 빌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켄달 로이에게 사실상 '나는 너에게 CEO 자리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통보한다. 그리고 이제 드라마는 탁구 경기처럼 되어 버린다. 그냥 탁구 경기도 아니고 올림픽의 결승전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 말이다. 인물들은 대사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거나 말하고 이것은 다른 사건들을 촉발시킨다. 그리고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시즌 4까지의 모든 여정은 켄달 로이가 시즌 1 1화에서 로건이 주는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결국 켄달 자신의 안일함과 부주의함이 모든 사건을 초래한다.
이 부분도 셰익스피어와 닮았다. 우리는 학교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배울 때 가장 큰 특징이 등장인물의 성격적 결함이 비극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배운다. 켄달의 성격적 결함은 셀 수 없다. 앞에서 말했던 안일함, 우유부단함 뿐만이 아니라 아버지처럼 절대 독해질 수 없다는 점, 중요한 순간에서 항상 판단 실수를 한다는 점이 있다. 이 모든 것이 모여서 켄달을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결함 중에서도 켄달의 가장 큰 결점이 안일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로건은 켄달에게 'killer'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켄달은 절대 그러지 못한다. 살인자는 단순히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등 뒤를 조심해야 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당신을 막으려고 뒤를 쫓아올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들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켄달은 뒤를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이다.
처음에 <석세션>의 장르는 코미디였고 에미상 출품에도 코미디 드라마로 올라간 적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 시즌은 드라마 부문으로 올라갔다. 나는 그 이유가 켄달이 만들어낸 비극에 있다고 생각한다. 켄달은 코미디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파멸을 불러오는 것을 선택했기에 이 드라마는 비극이 되었다. 비극의 특징 요약: 비극은 주인공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것이다. 이 간단한 공식에서 켄달은 완벽한 조건을 달성했다. 내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시즌 1 10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켄달은 아버지의 뒤통수를 치는데 거의 성공하지만 실수 하나로 자신의 운명을 순식간에 뒤바꾸어 놓는다.
웨이터를 죽인 것.
사실상 켄달이 직접 죽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냐면, 마약을 하고 기분이 좋아진 켄달이(끊었던 마약을 다시 한 것 자체가 실수였다) 더 많은 마약을 찾기 위해 마약 공급책을 아는 웨이터에게 같이 마약을 찾으러 가자고 부탁하고, 약에 취한 켄달이 운전을 맡고 웨이터는 조수석에 앉는다. 운전을 하던 도중 갑자기 튀어나온 동물에 깜짝 놀라 핸들을 틀게 되고 그들이 탄 차는 강물에 빠진다. 켄달은 사투 끝에 차에서 빠져나오는데 성공하고 웨이터를 구하러 몇 번 물에 들어갔지만 결국 구하지 못한다. 켄달은 자신의 평판에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 이 사실을 숨기지만 로건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걸 은폐하는 대신 회사를 차지하려는 켄달의 계략을 철회하라고 말한다. 켄달은 그 순간 이성을 잃어버리고 울면서 아기처럼 아버지에게 안긴다. 그리고 로건은 켄달에게 말한다. "You're my number one boy." 가장 듣고 싶었을 말을 가장 불행할 때 들은 것이다. 물론 이 불행은 아버지 때문이다. 웨이터를 죽여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 조건부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이때 켄달이 일으켰던 일은,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탁구 경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온다. 시즌 3 피날레에서 켄달은 자신이 웨이터를 죽였다는 사실을 형제들에게 고백하고 시즌 4 피날레에서 시브가 켄달을 배신하면서 말한 이유에는 켄달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도 있다. 그 말을 들은 켄달은 말한다. 자신은 이것밖에 할 줄 아는게 없다고. 물론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은 그의 아버지 로건 로이다. 그가 켄달이 할 줄 아는 것을 한 가지밖에 없게 만들었다. 회사를 경영하는 것? 아니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 켄달은 이제 자신의 운명에 영영 갇혀 버린다. 평생 받을 수 없는 것을 갈구하면서. 음식을 갈구하는 에리식톤처럼.
잠깐 와이드샷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석세션>이 연극적이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에는 카메라 기법도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주는 해외 칼럼이 있다. (출처는 글 하단에.) <석세션>은 와이드샷을 다른 드라마보다 많이 사용하는데, 이것은 연극의 그것과 닮았다. 연극은 카메라를 통해 보는 것이 아니고 눈으로 직접 무대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연극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객들은 볼 수 있다. 이것은 <석세션>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복되는 와이드샷을 통해 시청자는 드라마의 인물들이 뒤에서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와이드샷이 중요한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하나의 사건이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 남지 않고 다른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게 이 드라마에서 와이드샷이 하는 일이다.
이 비극에서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시즌 1 시작과 시즌 4 피날레에서 인물들이 전혀 달라진 점이 없다는 점이다. 보통의 이야기는 이런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서 인물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셰익스피어적 비극이다. 인물이 가진 결함 때문에 인물은 변화하지도 못하고 평생 자기 자신으로 있는다는 것. 로이 형제는 앞으로도 영원히 충족되지 않을 사랑을 갈구하면서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 이것이 진정한 비극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탈출할 수 없다는 것만큼 지독한 비극이 있을까.
HBO Succession: How does the show portray abusive relationships?
Vox - https://www.vox.com/culture/22777228/succession-episode-5-season-3-recap-review-retired-janitors-of-idaho-logan-ab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