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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n 06. 2023

소소한 이별

나는 잔병치레가 거의 없는 편인데 아주 까끔 호되게 앓는다. 올해의 잔병은 3월의 코로나로 끝난 줄 알았더니 주말 시작하자마자 체증에 주변이 빙빙 돌아 이틀을 내리 누워있었다. 간만의  휴일에 떴는데 속도 모르고 몸뚱이가 도와주질 않는다. 나흘 중 절반을 잃고 나니 그저 아쉽다.


며칠 전 집 바로 앞에 있던 편의점이 없어졌다. 나는 슈퍼마켓이나 시장을 선호하는 편이라 편의점은 잘 이용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집 앞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터라 몇 번인가 이용했었다. 지나쳐 오길 수십 번,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비밀 곳간을 둔 듯 든든했었는데 이젠 텅 비어버렸다.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데 뭘 그리 아쉬워하나 싶지만 사실 나는 이런 사소한 끝에도 마음이 휑하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홍대 지역 텅텅 비어가기 시작했을 때 본가 주변도 그를 피하지 못하고 가게가 하나 둘 사라졌다. 늘 보던 풍경, 익숙하던 모퉁이는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춘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 가서 우연히 만난 새로운 혹은 옛 인연을 만나 벌어지는 일을 모티프로 한 외국영화를 볼 때면 수십 년째 변화의 급물살을 타는 중인 우리나라와의 괴리를 느꼈다. 200~300년은 훌쩍 넘은 건물들로 둘러싸인 유럽 어딘가의 거리를 소개를 듣자면 은근히 부럽기도 하다. 너흰 돌아가도 뼈대는 남아있겠구나, 우리는 다 밀어버리고 주차장으로 바뀌어 일기 일수란다-노인처럼 중얼중얼.


키워 본 적도 없으면서 펫로스 증후군에 관한 글들을 읽으면 슬픔에 동화되어 그립고 먹먹해진다. 유기견이나 유기묘 입양 공고를 꾸준히 들여다보지만 쉽게 데려오지 못하는 것도 반은 그런 이유에 있다. 끝내도 마음이 덜 쓰이는 식물만 만지작 거리는데, 사람이 떠나가는 건 더하면 더했지. 각자의 흐름이 있고, 그저 시절 인연이며, 결대로 흩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마음은 출렁인다. 이젠 그만 사랑하게 됐다며 떠나가는 걸 사람들은 어떻게 견디는 걸까. 인간은 정말 강한 존재인가 보다. 나는 따라가지 못하지만.


자꾸 하다 보면 이골이 나서 괴로움도 덜한 걸까. 나는 아직 경험을 덜해서 사소한 일에 헛헛함을 느끼는 걸까. 그럼 마음을 단련하기 위해 더 많은 이별을 해야 할까. 삶을 꼭 그런 괴로움으로 가득 채워야만 하나. 어쩐지 투덜이가 된 채 어느덧 길어진 낮에 지는 해를 바라보니 봄이 사라졌다. 그제야 떠올린다. 비워야 다시 채우는구나. 지나간 것에 미련한 손을 뻗을게 아니라 다가오는 것을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하는구나. 밤을 메우려 틀어놓은 플레이리스트의 이름 모를 팝송이 귓가를 맴돈다. 아둔하게 멍해진 내 옆에 여름이 씨-익 웃으며 다가와 털썩 앉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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