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쌓인 여독을 풀어보자
(이동경로: 코토르-쉬코다르-티라나)
몬테네그로에서의 마지막 새벽이 밝았다.
풀어놓은 짐을 다시 주섬주섬 챙겨 집채만한 배낭을 다시 매고 건물밖으로 나왔다. 코토르 성벽 안은 어젯밤의 쿵짝거리는 광란의 거리와는 정반대로 차갑고 깨끗하고 조용한 거리로 바뀌어 있었다. 비록 3일이었지만 즐길만큼 즐겼기 때문에 딱히 미련이 남지 않은 채 좋은 기억만 가지고 국제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티라나까지 9시간동안의 장거리 버스탑승을 대비해 잠깐 마트에 들러 간식과 물을 챙기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세르비아에서부터 보스니아로, 보스니아에서 몬테네그로로 올 때마다 경로가 겹쳐 버스를 같이 타고 온 중국인 부부와 같이 탑승하게 되었다. 그들이 중국어 이외에 외국어를 거의 못해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눈만 마주쳐도 눈웃음 지으며 인사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코토르에서 티라나로 가는 버스는 직통이 아니고 몬테네그로 웬만한 도시(부드바, 포드고리차 등등)와 알바니아 웬만한 도시는 다 거쳐서 가는 완행노선이었다. 처음에는 지겨울 줄 알았지만 탑승하고 나니 버스 창문 너머로 몬테네그로의 온갖 아름다운 모습들을 훑어볼 수 있었다!
부드바에서 넓게 펼쳐진 비치의 에메랄드 빛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 아드리아해의 새파란 바다위에 동그랗게 세워진 성벽도시 스베티 스테판을 지나 버스는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몬테네그로의 수도 포드고리차를 지나 알바니아 국경에 도착했다.
알바니아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면서 일주일을 계획했던 곳이었다. 이동 동선을 몬테네그로에서 바로 코소보를 통해 내려갈지, 아니면 티라나에만 잠깐 들렀다가 마케도니아로 넘어갈 지 고민하다가 알바니아 남부 도시들의 사진을 보고 무조건 최남단 사란다까지 찍고 넘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알바니아는 서양식 이름이고, 알바니아에선 자국을 Shqiperia(슈찌뻐-리아)라고 부른다. 알바니아는 독특한 언어뿐만 아니라, 주변 발칸국가와는 매우 이질적인 종교문화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국민의 70%가 무슬림이고, 코소보와는 형님 동생하는 사이이다. 당연히 세르비아와는 철천지 원수 사이.
아침 7시에 출발해서 밥 한끼 못 먹은 채 오후 2시쯤 되어 쉬코드라에 도착했다. 버스가 잠깐 멈춘 사이 밖으로 나가봤다. 돈달라는 애기들이 쫄래쫄래 붙었지만 나도 갓 입국한 터라 줄 돈도 없다... 밖에는 모스크들이 있었고 낡은 자동차들이 매연을 내뿜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버스 근처의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버스는 다시 출발해 오후 늦게 티라나에 도착했다. 모스크바에서 출발할 때만해도 쌀쌀해서 오들오들 떨었는데 한 달만에 도착한 알바니아에서는 뙤약볕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티라나 서북쪽에 위치한 '독수리' 터미널에 내려, 다음 버스고 뭐고 더워서 은행부터 찾았다. 현금을 좀 뽑은 후 배낭 깊숙이 넣고 호스텔로 출발했다.
비록 티라나에 처음 와본 것이었지만 어딘가 익숙했다. 골목골목 걷는데 서울 어딘가와 되게 비슷한 느낌이었다.
편안해졌다. 국경을 열 번 넘으면서 항상 긴장하고 겁먹고 그랬지만, 티라나는 오히려 편안하고 따뜻했다. 지나온 도시들인 코토르, 모스타르, 사라예보 전부 각각의 개성이 매우 뚜렷한 관광지라면, 티라나는 그냥 사람사는 동네같았다. 해방촌이나 녹두거리를 걷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호스텔에는 주인아저씨와 다른 아저씨 둘밖에 없었다. 주인아저씨는 미국인이었고, 다른 아저씨는 국적은 기억이 안나지만 영어를 잘 했다.
짐을 풀고 간단하게 씻고 아무 레스토랑에서 대충 점심을 때운 후 티라나의 중심인 스칸데르베그 광장으로 바로 향했다. 불행하게도 광장은 폐쇄됐고, 철제울타리 너머로는 기존의 잔디밭 광장을 뒤집어 엎고 대리석 바닥으로 채우고 있는것이 보였다. 칙칙한 티라나에서 그래도 매력적인 것이 드넓게 펼쳐진 초록색 잔디밭과 그 한가운데 강인한 스칸데르베그 동상, 그리고 그 뒤로 세워진 샛노란 근대이태리식 쌍둥이건물이었는데.. 아쉬웠다.
광장 옆에는 티라나의 상징인 모스크와 시계탑이 있다. 시계탑에 올라가면 알바니아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모스크는 오스만 투르크 시절 건설된 티라나의 대표적인 이슬람 유적이다.
그렇게 여기저기 지나다니면서 가볍게 산책하며 둘러보다가 미술관을 발견했다. 날씨도 덥고 중간에 쉴 겸해서 미술관에 들어가봤다. 역시 오길 잘했다. 알 수 없는 난해한 그림들(개인적으로 취향이 아님)이 아닌, 알바니아 민족예술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알바니아의 이순신장군 쯤 되는 스칸데르베그 장군의 모습, 19세기 알바니아 여성과 아이들, 20세기 알바니아의 사회주의예술 등 볼거리가 넘쳐났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은 푸른 빛의 빨치산 그림. 새벽에 삼삼오오 모인 그들을 위로하듯이 악기를 연주하는 노인과 그들을 둘러싼 푸른 빛의 우울함과 고단함이, 흔해빠진 강하게 전진하는 파르티잔의 모습보다 훨씬 솔직해보여서 좋았다. 다만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 '우울한 빨치산'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하여 감옥에 보내졌다고 한다.
미술관 옆에는 티라나의 '피라미드'가 있다. 알바니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알바니아 독재자 '엔더 호자'. 그가 그 스스로를 기념하기 위해 지으려 했던 거대한 피라미드 건물이 완성되지 못한 채로 지금까지 버려져 있다. 깨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건물 내부에는 쓰레기만 뒹굴고 있고, 낙서가 가득한 외벽은 이 곳 젊은이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피라미드를 지나 골목골목을 걸으며 사람 사는 모습들을 구경하다가 호스텔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체리 한 바가지와 맥주를 샀는데, 물가가 너무 착해서 감동이었다. 맥주 한 캔에 300원. 체리 한 바가지 1000원. 물가가 싸면 마음도 풍족해진다.
호스텔로 돌아와 주인아저씨와 룸메아저씨와 함께 루프탑으로 올라와서 맥주를 마셨다. 히피같이 생긴 주인아저씨는 직접 만든 쭈굴쭈굴한 담배(누가 봐도 마리화나)를 피면서 도날드 트럼프를 온갖 단어를 써가며 욕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늦은 밤까지 맥주와 체리를 먹으며 선선한 바람을 맞고 있다가 들어와서 잤다. 내일 아침에는 새벽 일찍 일어나 티라나를 떠나 남쪽으로 떠나야 한다.
관광도시들을 거쳐가다보면, 여러 멋진 건물들과 유물들을 구경하게 되지만서도 지치기 따름이다.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한 달깐 끊임없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쌓인 여독을 풀기 위해 너무나도 알맞게 선택한 휴식처 알바니아에서의 힐링은 지금부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