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하고 평화로운 알바니아 남부
(앞 포스트에서 계속)
https://brunch.co.kr/@akkakii/19
(이동경로: 티라나-블로라-히마라)
새벽에 일어나 티라나 북부의 버스터미널로 갔다. 원래 1~2년 전만 해도 알바니아 각지로 가는 버스(라고 쓰지만 사실상 푸르공-봉고차)들이 한 데 모여있지 않고 방향별로 따로 떨어져 있고 출발 시간도 자기 멋대로라서 외국인 입장에서 계획을 세우는게 참 골칫거리였다. 영어로 된 정보들이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다행히도 얼마 전에 버스 시스템이 다 정비가 돼서 티라나 북부 쌍두독수리 로터리 터미널에서 전부 출발하게 되었고, 시간표도 생겼다! 호스텔 아저씨한테 시간표를 받아서 아침 일찍 택시를 불러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 출발시간까지는 조금 남아서 먹을 것을 좀 사려 했지만 문을 연 상점이 하나도 없었다. 터미널 입구 앞 좌판대에 맥락없이 놓여있는 크로와상 과자와 먼지 쌓인 콜라 한 병을 구입해 가방속에 넣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출발하여 남쪽으로 계속해서 내려갔다. 알바니아 최남단 도시인 ‘사란다’로 가는 버스인데, 도중에 들르는 도시에서 그냥 버스기사에게 내려달라고 하면 되는 식이다. 사란다로 가는 버스는 두 경로가 있어서, 하나는 지로카스트라를 들르는 내륙노선, 나머지 하나는 블로라와 델미, 히마라를 거치는 해안 노선이 있다.
나는 바닷가에 갈 거니까! 창 밖의 경관을 보려 일부러 오른쪽 창가에 앉았다.
버스가 출발한 후 ?시간쯤 지나서 블로라에 도착했다. 블로라는 아드리아 해에 접한 항구도시인데, 딱히 볼 건 없다. 티라나랑 비슷한 느낌인데 대신 바닷가가 있을 뿐. 버스는 블로라에서부터 바닷가를 달리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로 손꼽히는 ‘알바니안 리비에라’가 시작된다.
눈이 시릴정도로 푸른 아드리아해의 경관을 바라보면서 얼른 저 에메랄드빛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었다.(이 때는 저 바닷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몰랐음) 한동안 바닷가에 바짝 붙어 달리던 버스는 내륙으로 살짝 들어가 산길을 구불구불 오르기 시작했다. 이 곳도 알바니아의 정말 아름다운 국립공원이지만, 차가 없었기 때문에 이동이 자유롭지 못해 눈물을 머금고 뺐던 곳이다. (다음에 올 때는 꼭 렌트카를 빌릴 것이다...운전 연습도 좀 해서)
버스는 쉴새없이 산길을 이리저리 올랐고, 중간에 어떤 상점-식당에 멈추어 사람들은 식사도 하고 기지개도 펴고 그랬다. 나도 고기 한 두점 시켜서 잠깐 먹은 뒤 개랑 놀았다. 다시 버스는 출발해 산의 꼭대기까지 올랐고, 그 뒤로는 구불구불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염소떼로 인해 버스는 자주 멈추었고 거북이처럼 산기슭을 따라 내려왔다. 그리고는 구름 아래로 내려오면서 쭉 펼쳐진 알바니아 남부의 해변들!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드리마데스와 델미를 지나 드디어 히마라에 도착했다. 히마라의 호스텔은 정말로 깔끔하고 시설도 마음에 들었다. 애교 넘치는 고양이가 한 7마리 정도는 있었다... 호스텔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짐을 푼 뒤 자전거를 빌려타고 바람을 맞으며 바닷가로 가서 우선 해물 파스타를 먹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5월 말이라서 그런가? 이 따뜻한 날 이토록 큰 해변에는 나 말고는 커플 하나밖에 없었다. 통째로 해변을 전세낸 기분. 입고 있던 옷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바다에 들어가려는 순간! 차가운 물에 심장이 굳을 뻔했다... 그래도 좀 몇 번 물을 끼얹고 나니 또 마냥 좋아져서 첨벙대면서 혼자 잘 놀았다...! 다만 물이 맑은 대신에 자갈 해변이어서 발이 엄청 아프다는 것. 아쿠아 슈즈같은게 없더라도 쪼리는 필수다.
그렇게 물에서 놀다가 춥다 싶으면 기어나와 보자기에 드러 눕고 나른하게 있기를 반복했다. 천국인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놀다가 또 다시 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마을 한 바퀴를 쭉 돌았다.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를 지나올 때는 쌀쌀하고 그래서 선크림이 필요없었는데, 남쪽으로 내려오니 해가 너무 강해졌다. 선크림도 사고 보스니아에서 다친 발가락도 치료할 겸 약국에 잠깐 들렀다.
히마라에는 비치가 두 개 있는데, 가운데 언덕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다. 자전거라서 언덕 올라가느라 힘들었다. (다음날 자전거 타고 돌아다닌 것에 비하면 이 언덕은 껌이었음)
아무튼 그렇게 놀다 보니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서 새파랗던 하늘은 기력을 잃고 점점 파스텔 톤으로 변해 연보랏빛 노을이 되었다. 나는 얼른 다시 해변으로 후다닥 달려가서 자갈밭에 자리잡고 앉았고, 지는 해를 또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는 꼬맹이들 몇 명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마냥 아름답고 평화롭고 그랬다.
해가 지고 나서 해변가의 한 식당에서 수블라키를 먹고(알바니아 북쪽은 이탈리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 남부는 그리스의 영향이 커서 수블라키나 무사카 같은 그리스 음식들이 많다!) 다시 자전거 타고 뽈뽈뽈 호스텔에 돌아와 가뿐히 샤워하고 거실에서 호스텔 주인이랑 수다를 좀 떨고 고양이들이랑 장난치다가 뽀송뽀송한 침대에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밤은 모기와의 대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