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룡이 Mar 25. 2020

식탁에서만 밥을 먹으라니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송인이 본인은 식탁없이 서서 밥을 먹을 때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혼자 살고 있는 사람이람면 식탁이 굳이 필요하지 않아서 사지 않을 수도 있죠. 저는 그저 '밥을 먹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방송인의 밥 먹는 방식까지 끼어들 생각도 하지 못했죠. 그런데 주변에 있는 패널들이 난리가 났었습니다. ‘아이고’가 메아리처럼 계속해서 나왔고 ‘밥은 식탁에서 먹어야죠!’라는 수학 공식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이도 있었어요. 

저희 집은 아닙니다만


간소하다. 영어사전에는 'simple'이라고 뜻을 찾을 수 있고 국어사전에는 '간략하고 소박하다'로 나옵니다. 간소한 삶은 주변을 둘러싼 물리적 공간이 단순하고, 사회적 관계가 복잡하지 않고, 소유한 물건이 많지 않은 형태를 말하죠. 앞에서 예를 든 식탁없는 방송인처럼요.


그런데 그 기준이 주관적이라 모호해 두부 모자라듯 반듯하지 않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도구만을 필요하는 세상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리는 가장 진보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직업, 종교, 취미 등에서 자유를 보장받고 있습니다. ‘개취’라는 유행어처럼 개인의 취향을 존중받고 ‘취존’이란 명목으로 다른 이의 취향을 존중해야 스스로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예요. 그러니 간소의 기준은 굉장히 사적인 영역이라 모든 이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됩니다. 


간소, 굉장히 사적인 영역





세상에는 ‘당연히’ 소유해야 하는 물건 리스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르니 다른 이들의 생활 방식을 참고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나와 다른 이 살아가는 방식과 퍼즐 조각처럼 맞춰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나로서 살아야 하는데 남으로 사니까 생활이 복잡해져요.




프리랜서로 마케팅일을 하고 글을 쓰는 저의 하루는 많은 이들과 달리 거실로 출근합니다. 노트북과 대형 모니터가 있고 베란다를 통해 바깥 풍경이 보이는 거실에서 하루, 일주일, 한 달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삼시 세끼도 일을 하는 거실 테이블에서 해결하니 사실 상 앞서 예를 들었던 서서 밥 먹는 연예인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식탁을 따로 구입하지 않은 이유는 별도의 부엌 공간을 꽤나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소를 이동해 밥을 먹어야 하는데 저에게는 오히려 불필요한 동선을 생기기에 불편했습니다.


식탁이 없다고 저는 불편하거나 불행하거나 부끄럽지 않습니다.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알고 있고 하루를 보내는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도 알고 있습니다. 누가 먼저 건네지 않아도 손이 가는 옷들이 있고요.  




간소한 생활로 가는 과정


간소한 생활은 스스로를 이해해야만 가능합니다. 생활 반경에서 물건이든 서비스든 마음 가짐이든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들을 구분하는 일상은 그다음입니다. 그래야 추려낼 것을 추려낼 수 있거든요. 그러다 보면 생활을 획기적으로 편리하게 바꿔줄 거라 믿었던 무언가가 실제적으로는 오히려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마주합니다. 혹은 꼭 필요하다 생각한 것들을 다른 무언가로 대체 가능한지 고민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본능을 자극하는 것들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을 '쿨'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금다발이니 카드만 긁고 환경과 같은 다른 가치들은 고려조차 않습니다. 극단적으로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도덕성도 살 수 있다고 믿는 시대입니다. 타인에게나 본인에게나 극단적인 본능 추구는 최소한의 배려도 이해도 없는 선택의 일종이라고 감히 말하겠습니다.




간소하게 사는 목적


일단 본능에 이끌려 저지르고 보면 마치 약물 중독처럼 그 자극을 연료 삼아 더 큰 자극을 원할 수도 있죠. 하지만 많은 경우 '불필요한 일'임을 깨닫습니다. 간소하게 사는 것은 궁극적으로 불필요한 일에 소모했던 에너지를 줄이려는 움직임입니다. 추구하는 가치들을 현실적인 상황에 맞추어 정신적 균형을 회복하는 쪽에 가깝죠. 그러니 간소한 삶을 추구하는 구체적인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간과 자본의 효율성에 초점이 맞춰졌던 생활을 간소하게 꾸리면서 정신적으로 여유로워지는 겁니다. 물리적으로 불편한 생활을 한다고 느낄 수 있으나 물질에 얽매이지 않으니 가능한 것이겠지요.





물론 그렇다고 Essential minimalist 처럼 최소한의 물건만을 가지고 살지 않습니다. 이때까지 사 놓은 물건들도 지나간 업보처럼 간직하고 있습니다. 유혹에 이끌릴 때마다 반성할 용도로요. 덕분에 지금은 꼭 필요한 상황에 목적에 맞는 물건을 만들거나 얻거나, 혹은 사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간소하게 살자는 말은 불편하다는 표현과 결을 달리합니다. 물질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불편함과 편리함, 가지고 싶은 것과 필요한 것 사이에서 줄타기를 계속해야 합니다. 간소하게 살아도 편리할 수 있고 또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대신 자유로운 건 분명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