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룡이 Apr 23. 2020

엄마의 그릇들

부엌 찬장엔 보물이 있습니다. 아마 제가 가진 물건들 중에 가장 값진 것들이 아닐까 싶을 만큼 귀한 것들입니다. 검은 머리가 넘실거리던 젊은 시절의 엄마가 직접 모은 접시들이에요. 그것들은 천장에서 조심스레 넣어 보관하다 소중한 손님들이나 가족들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 소중하게 꺼내셨어요. 반질반질하게 닦은 접시 위로 소복하게 담긴 음식들이 어린 꼬마가 보기에도 좋았는지 여전히 기억납니다.  

엄마의 그릇들

이사를 꽤나 많이 다녔음에도 엄마는 그릇을 마치 자식 다루듯이 어르고 달래어 봇짐장수처럼 이고 다니셨습니다. 예쁜 접시이긴 하나 모두가 알만한 브랜드 제품도 아니거니와 무겁고 번거롭기에 ‘왜 저걸 저리 들고 다닐까’ 생각했어요.  


아마, 엄마는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손에 익고 마음에 맞는 물건을 가진다는 게 얼마나 경험하기 어려운 귀중한 일인지 말이에요. 그러니 아장아장 걷던 소녀가 결혼을 하고 독립적인 가정을 꾸릴 때까지, 열 손가락을 꼬박 채울 만큼의 이사를 했음에도 그 그릇들을 가지고 이동하셨겠지요. 그리고 제가 결혼할 즈음에 엄마의 시절이 묻어있는 그 그릇들을 유산처럼 물려받았습니다.

벌써 저에게도 그 그릇에는 몇 가지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결혼 첫 해에는 시어머님과 남편과 처음 보내는 설날이라고 직접 만든 어설픈 떡갈비를 담았고 김장 때에는 보쌈을 했네요.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접시에는 탱글한 과일을 넣어두었고 크리스털 종지에는 반찬을 담아 먹곤 합니다. 살림이 어설펐던 새댁의 느린 칼질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 만큼 시간이 흘렀고 엄마의 그릇은 딸의 찬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설레는 마음은 새로 산 물건에서만 얻는 게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오래된 물건에 담겨있는 추억에서도 얻습니다. 아낌없이 지금의 순간, 지금의 것들을 사랑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