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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타 Feb 24. 2020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

우리는 어렸지만, 어리지 않았어도 그랬을 것이다.

어제는 연극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 (이하 우도함)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나는 H와 택시를 탔고, 정말 기적처럼 문이 닫히기 직전 함께 도착했다. 불이 꺼지고, 긴 터널 안으로 버스는 덜컹거리며 숨어들었다.


도시는 무너졌다. 그 어떤 서술어를 가져다 대더라도 실은 그것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너진 것들 위로는 희망이 핀다고들 하지만, 때로는 무너져서 끝나야 하는 것들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피어나는 그 희망조차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것을, 너무 많은 사람들은 잊고 지낸다.

흔들리고 갈라지고, 무너지는 땅. 가이아의 배꼽 위에 지은 거대한 성전이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타르타로스 바로 위에 지어진, 거대한 배교의 신전이었음을 아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가이아는 원래 인간들이 있었어야 할 곳으로, 그 깊은 어둠 속으로 인간들과 신전들의 잔해 일부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검은 물들로, 땅과 하늘을 덮어버렸다.

그 검은 물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른다. 수연도, 재인도, 아마 이 세계의 주시자들조차도 모를 것이다. 수연과 재인은 그것을 검은 타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이름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이름이 없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있는 법이다. 무지에 대한 공포를 먹고, 더욱 맹렬하게 클 수 있는 법이다.


어쨌든 수연과 재인은 미래를 사기 위해, 현재를 아주 깊은 어둠 속으로 던지러 갔다. 버스를 타고, 빛이 없는 어둠 속으로. 새벽녘이나 저녁, 한밤중보다도 검은 타르타로스의 한가운데로. 그리고.


(이후 내용은 우도함의 원작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곰팡이가 가득 핀 화장실, 석회 때문에 희뿌옇게 변해 맛도 냄새도 기분도 이상한 수돗물. 낮도 밤도 구분하지 못해 그저 시계만을 쳐다봐야 하는 삶. 알람에 맞추어 일어나고, 옷을 입고, 달리는 삶. 하나, 둘, 던지고. 셋, 넷, 던지고. 무엇을 하는지도, 왜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지만 무엇을 받는지는 확실해서 기침과 굳어가는 몸에도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삶. 그러나 도시가 아닌 곳에서는 무언가 다르단 말인가?

도시에 오기 전, 도시락 가게에서 폭언과 전화벨소리에 뒤덮여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이라고는 그저 ARS와 다를 것이 없었던 그 때와, 무어가 달랐단 말일까.


그렇게 질문하고 나면 또 물을 게 있다. 이 세계와 이 세계는, 얼마만큼이나 다릅니까.

여성, 그리고 청년, 그리고 노동자, 그리고 퀴어. 사회에서 약자로 사는 것이 그 사회에서만 유독 고달픈 일입니까. 죽어가는 몸을 끌어안고, 괜찮으니 조금만 더 벌어서 떠나자, 하다 영영 떠나는 영혼들이 비단 그 사회에서만 있습니까. 버는 만큼 쓰자고 하다가도, 비싼 채소 가격을 보고 자꾸 들었다가 놓았다가, 결국에는 집어드는 젊은 손이 그 사회에서만 서글픕니까. 같은 일을 하더라도 역겨운 시선을 애써 무시해야만 하는 그 닭살이, 그 사회에서만 돋아 올랐습니까. 껴안는 손이 유독 따뜻했던, 마주보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던 그 감정이, 그 사회에서만 반짝였습니까.

나는 어느 질문에도 "그렇다"라고 말을 하지 못한다.


사랑하고 살아남기에 수연과 재인은 너무 어렸다. 그러나, 그러나... 말끝은 점차 흐려진다. 거짓말을 하기에 이 세계를 바라보는 현미경과 망원경의 렌즈들은 너무 잘 닦여 있다. 사랑하고 살아남기 위한 적당한 나이는 이제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 어리지 않았더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커다랗게 뿌리내린 석회 나무를 끌어안고 조각상이 되는 전염병이 있어서, 그렇게 또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들을 몇이나 겨우 엿보고 묻어두어서, 또 어느 도시가 무너지고 전염병에 걸린 이들이 모두 격리되고 말 적이면 또 어느 이들은 그 커다란 버스를 타고 아가리를 쩍 벌리고 선 배고픔 안으로 걸어들어갈 것이다.

비둘기가 날지 못하는 곳, 기형의 생명체들이 버려지는 곳, 인간의 죄악을 다른 인간의 저주 같은 영원으로 덮어버리는 곳, 소돔과 고모라는 오히려 축복받았을 수도 있는 곳으로.


어리든, 어리지 않든, 우리는 그 도시로 함께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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