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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동주 Apr 23. 2020

영화 '미드 소마'

천국이라는 이름의 지옥.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영화 '미드 소마' 전작으로 '유전'이라는 작품을 선보여 화제가 되었던 영화감독의 후속작이다. 장르는 공포영화로 오컬트와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영화이고, 요즘 공포영화의 틀을 깨버리는 영화라고 할 수 있었다. 보통 공포영화라고 한다면 시작부터 끝까지 어두운 배경, 스산한 분위기를 유지한 채 일행이 패닉에 빠져 나쁜 일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 '미드 소마'라는 작품은 마치 천국을 가장한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공포영화라고는 믿지 못할 밝은 분위기가 영화 내내 펼쳐지고, 주인공 일행들은 축제를 즐기지만, 영화 초반 마을을 소개해주는 장면에서는 기괴한 그림들이 걸려있는  것을 다시 상기한다면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2시간 30분 정도 되는 긴 러닝타임을 생각한다면 언제 갑자기 시작될지 모르는 일이다.

 '미드 소마'는 스웨덴의 하지 축제를 지칭하는 말로 실제 스웨덴에 있는 하지 축제라고 한다. 사실상 어딘가 밝아 보이는 공포영화는 어느 정도 있었다.'트루스 오어 데어'라는 영화도 그 중 하나이다. 하지만, '미드소마'는 어딘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전부 흰색의 옷을 입고, 함께 춤을 추며, 웃고 마을을 소개해준다. 이렇게 공포영화가 맞는건가 의심 될 초반의 1시간을 긴장하게 만들어 준 것이 영화 속 장치, 쉽게 말해서 떡밥이다.

대표적으로 이 그림도 그 중 하나이다. 이 그림 하나에 영화 속 전반적인 줄거리가 전부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영화 속 떡밥들은 마을 소개 장면에서 계속해서 비춰 주는데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싶었다. 축제에 관련 없어 보이는 우리에 갖혀 있는 곰, 인생의시기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총 72년으로 나뉜다고 했던 마을 사람. 그리고 노란색으로 덧칠해져 있는 의문의 집. 던져 놓은 떡밥들을 기억해뒀다가 하나씩 풀어가는 것도 이 영화의 매력이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라고 불리우는 영화의 특징은 주인공들의 답답함에 있다. 왜 저렇게 행동 하는 걸까? 보는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만, '미드소마'에서는 주인공들의 행동에 답답함을 그나마 덜 느끼게 된다. 논문의 주제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마을을 계속 조사하는 조쉬와 크리스티안을 보면 사람에 따라서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대니를 본다면 자신의 가족의 죽음으로 피폐해진 정신에 자신의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과도 사실상 이별여행을 오게 된 셈이라 기댈 곳도 없었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자신들의 축제 제물로 사용하려고, 친구들을 데려온 마을출신 펠레도 그렇지만, 마을이 수상하다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논문에 눈이 멀어 서로 본인이 이 마을을 주제로 하겠다고 티격태격 하는 장면에서도 다른 의미로 무섭다고 느꼈다. 


 '미드소마' 한국으로 생각한다면 명절에 조상들에게 제물을 바치겠다고 유학중인 한국인이 자신의 외국인 친구를 명절에 초대해서 조상들에게 바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어떻게 보면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면도 있지 않은가 싶지만, 이 또한 아리 에스터 감독의 신선한 소재를 통해서 밝은 분위기에서도 긴장하게 만드는 연출력과 실력을 통해서 자신입증해내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첫 작품 '유전'이라는 영화도 심리를 다루기도 했다. '미드소마'처럼 사람간의 심리를 통해서 계속 긴장하게 만들다가 결국 끝에 가서는 펑 하고 터지는 그러한 연출이다. 한국영화 중에서 '곡성'을 재밌게 봤다고 한 아리 에스터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 다르지만 비슷한 면모가 있으니 말이다


극중 대니는 불안과 정신피폐로 인해 힘들시기에 집단광기를 만나 결국에는 편안해지는 장면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그와 동시에 광신도에 동화 되서 편안해지는 대니를 보면 나 자신이 이질적으로 보이기 까지 했다. 대니의 행적을 본다면 사람의 가장 약한 곳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아닐까 한다. 우린 가로막힌 벽에 의해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다. 지쳐있거나, 외로운 마음의 병이 싹을 터 발아하기 까지 그 누구도 다가오지 않으려 할 때, 이미 약해질 때로 약해진 우리는 그 누군가 작게만 속삭여도 모든 것이 달콤하게 들리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가 강하다고 느끼지만, 어느 순간에는 벌레에게도 노려지며 무시당하는 존재가 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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