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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연 Dec 04. 2023

영감은 택배기사처럼 찾아온다.

글쓰기의 단순함, 그리고 반복하는 힘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달린다.  매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거론되는 그는 노년의 나이에도 매일 달린다. 하루키 씨는 전업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몇 십 년간 게으름 없이 한결같이 달리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책 표지에 자신의 모습을 담았는데 예순을 넘어서도 뺨은 팽팽했고 눈은 젊음의 생기를 안고 있었다. 그는 오전 달리기 이후 낮에 성실하게 글을 쓰는 단순한 삶의 패턴을 가지고 있다 줄곧 밝혔다.  달리기와 글쓰기는 닮았다. 한 점에서 출발해, 트랙(선) 위를 멈추지 않고 움직이면 다른 지점에 도착한다는 면에서 동일한 형태이다. 하루키 씨는 단순하고 가벼워서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가졌던 것일까.


김영하 작가는 한예종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에 마감을 넘긴 학생에게는 가차 없이 F를 줬다고 한다. 마감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글에 주인이 되지 못한 채 쫓기고 쫓기는 객체로 전락하게 만드는 몹쓸병에 걸렸다고 여기는 듯 했다. 특히 소설을 쓸 때 작가는 전지전능한 시점으로 상황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관찰하고 주인공들에게 특정한 상황을 부여하고, 죽이거나 살리는데 주저함이 없는 신적인 존재인데 그런 작가에게 주체성이 없다면 더이상 소설가가 아니다.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영감은 택배상자 같은 것이다. 주문을 하고 결제를 하면, 원하는 일시에 도착하는 택배 말이다. 물론, 가끔 배달사고가 일어나긴 하지만 정확하게 배송받을 확률에 비해서 현저하게 낮고, 늦더라도 오긴 온다.


그동안 나는 영감에 대해서 오해했다. 번개나 벼락이 치듯, 우루루쾅, 하면서 섬광과 함께 짧은 순간 쏟아지는 축복 같은 것으로 여겼다. 그 영험한 빛이 내리기 전에는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한 것으로 여겼다. 열 손가락을 오공본드로 붙인 듯 꼼짝도 하지 않으면서, 글은 쓰고 싶다는 갈망으로 항상 불안하고 목말라 했다. 마감을 지키지 않는 게으른 글쓰기에도 핑계는 존재해서 어떤 특정한 시기가 되면 모든 것이 되어 있을 것이라며 나를 위로하고 달랬는데...  결국 자기 위로로 얼룩진 빈종이만 남았다.


글을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삭제 버튼을 누르면 된다. 그리고 흡족할 때까지 거듭 수정하면 될 일이다. 김훈 작가도 원고지에 연필로 원고를 쓰며 지우개 똥으로 다보탑을 쌓을 정도로 지웠다 썼다를 반복한다고 하는데, 내가 뭐라고 한번에 완벽한 글을 쓰겠나. 안그래도 나약한 내가 혼자 있다면 유튜브나 보면서 누워 있기 기 마땅(?)하기 때문에, 퇴근 후에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온다. 요즘은 일주일에 서너번 종각 스타벅스에 와서 앉아 있는데 사람들은 각자의 삶에 집중하거나 대화를 하고 있고, 나는 하얀색 트랙 위를 타이핑 치면서 끝없이 달리기 하고 있다. 우와하고, 숨을 돌리며 돌아보니 벌써, 이렇게 글을 한편 썼구나! 오늘 달리기도 성공이다.


매일 타이핑 치며 빈 트랙 위를 타박타박 달려보자.

택배기사처럼 영감이 내일도 '띵동' 찾아오겠지.

<출처: tvN 알쓸신잡>




"아무리 거기에 올바른 슬로건이 있고 아름다운 메시지가 있어도 그 올바름이나 아름다움을 뒷받침해줄 만한 영혼의 힘, 모럴의 힘이 없다면 모든 것은 공허한 말의 나열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그때 몸으로 배운 것은, 그리고 지금도 확신하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말에는 확실한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올바른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공정한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됩니다. 말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제멋대로 왜곡되어서는 안 됩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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