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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알 Aug 28. 2020

신촌의 풍차 프롤로그

연습작 

(신촌에서 홍대까지 수정판)


동창 네 명이 만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게 벌써 8년이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졸업 직후에 동창회라고 열 명 정도가 만나서 어떻게 놀았는지를 생각해보면, 세월이 헛으로 지나가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겨우 1년, 2년 된 기억들, 숙성되지 못한 기억들에 추억이라며 웃고 떠들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때는 밤새 놀았다. 이번 모임은 11시에 끝났다. 한 명이 수원에 살다 보니 막차시간에 맞춰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모임은 11시경에 끝났을 것이다. 나는 친구들의 눈에서 피로를 읽었다. 그들도 내 눈에서 같은 것을 읽었을 것이다. 무엇에 대한 피로인지는 알 수 없다. 각자의 피로는 각자의 것이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망막에 스크린처럼 비친 피로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그림자의 본체가 무엇인지, 망막 뒤쪽의 관념 속에서 무엇을 걱정하는지, 무엇을 회고하는지,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는, 발설해선 안 되는 각자의 비밀이자 업보였다. 분명한 건 이제 우리는 옛날만큼 서로를 좋아하지 않고, 의리는 자발적 감정이라기보다는 피곤한 의무가 됐고, 각자의 삶이 서로 다른 경로로 분화했다는 사실이었다. 동창들은 이제 같은 길을 가는 동료가 아니었다. 내 일이 아닌 다른 이야기에 울고 웃어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아니면 그럴 수 있는 능력이 퇴화하든, 그러려고 하는 의지가 쪼그라드는 것이든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당산에서 11시에 헤어졌다. 짧은 동창회에서 느낀 피로 때문인지 그 날 따라 공복감이 들었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마침 친구에게서 연락이 와서 신촌에 지금 대학 동기들이 모여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그 쪽에 합류했고, 물담배를 피면서 시시콜콜한 동기들 뒷얘기를 잠깐 했다. 나를 제외한 동기들은 언젠가 자기들끼리 떠났던 부산여행의 추억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부산 클럽이 어쨌고, 수변공원에서 어쨌고, 나는 맞장구를 치면서 모든 얘기를 단 한 톨도 남기지 않고 흘려보냈다. 내일은 몇 시에 일어나야 하나, 내일은 무슨 옷을 입어야 하나, 내일 점심에는 무엇을 먹어야 하나, 등을 생각하고 있을 때, 한 놈이 내 어깨를 치며 클럽을 가자고 했다. 얘기가 나왔을 때 행동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한 놈은 몸이 안 좋다고 그냥 집에 가겠다고 했다. 나는 집에 가고 싶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클럽을 간 게 2, 3년이 됐지만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럽에 가겠다고 했다. 그게 12시경이었다. 


신촌 창천초등학교 인근에서 홍대 놀이터 인근까지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다. 어느새 동교동 삼거리를 지났고 어느새 홍익대학교 정문을 지났으며 어느새 동기들과 한 때 자주 갔던 클럽의 문 앞에 도착했다. 이 클럽에는 언제나 외국인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세계 각지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오늘따라 라틴계 음악이 많이 나왔는데, 그에 맞춰 어느 한 커플이 탱고스텝을 밟았다. 다리를 요란하게 움직이고 흐느적대는 그 춤을 하나 둘 따라하기 시작했고 곧 모두가 스텝을 번갈아 밟으며 살랑살랑 몸을 흔드는 기묘한 열정의 장이 펼쳐졌다. 한참을 춤을 추니 힘이 들었다. 구석 의자에 앉아서 클럽 내부를 조망했다. 사람들의 표정이 보였다. 웃는 사람이 소수이고 오히려 무표정이 다수였다. 이글거리는 열정이 담긴 무표정이었다. 허공을 응시하는 사람의 표정, 영혼이 나간 잠깐 나간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때만큼은 쉬지 않고 건들거리는 사지가, 육체가, 심작박동이 그들의 영혼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춤을 추면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도대체 왜 저런 춤을 추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도 있었다. 눈을 감고 음악에 몸을 맡긴 채 두 팔을 풍차의 날개처럼 돌려 대는 이도 있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움직임도 있었다. 짧은 머리에 짧은 수염이 얼굴을 덮은 백인 남자 서넛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주위를 훑는 게 보였다. 호기심, 설렘, 기대로 달아오른 얼굴이었다. 그들 뒤로 춤은 추지 않고, 누군가가 다가오길 바라는 눈으로 고개를 돌려 대는 여자들이 있었다. 두 그룹이 만날 수 있을까?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내 뒤에서는 치렁치렁한 머리를 앞으로 넘긴 탓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디제이가 고개를 박은 채 디제잉에 몰두했다. 입구 쪽에는 사람들이 미소를 띠며 새로 입장했다. 입구에 달린 푸른 조명이 그들의 얼굴을 퍼렇게 물들었다가 금세 메인 스테이지의 빨간 불빛에 자리를 내줬다. 붉은빛이 그들의 각양각색 피부색과 칵테일을 물들였다. 사람들이 들고 있던 맥주병의 은색, 혹은 검은색의 포장지에 상표마다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극적 천연색의 조명과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비트가 한 마디를 이뤘고, 이 젊은 군상들의 움직임이 그 마디 안에서 음표가 돼 멜로디를 채웠다. 이 시공간은 각각의 마디가 비슷한 듯 살짝 변주된 채 끝없이 이어지는 하농 연습곡을 닮았다. 순간은 네온사인으로 범벅이 된 수채화로 포착됐고, 순간의 형식은 조금씩 변주를 이뤄 영원히 반복되는 듯한 굴레에 내 의식을 가두는 듯했다. 시간의 흐름이 조금씩 멎어가는 듯했다. 


간만에 보니 이것도 참 별난 구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환희가 넘치는 공간이 연극무대처럼 느껴졌다. 이게 다 연극이고 저들이 다 배우라면 저들에게 무대 밖의 삶이 있을 것이다. 밥을 먹기 위해 돈을 버는 일상의 삶이 있을 것이다. 이 환희의 이면에는 내 일주일과 비슷한 밥벌이의 삶이 있지 않을까, 저 사람들도 나 같이 10평이 안되는 월세방에 살고 있지 않을까, 저 사람들도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니까, 이 따위 생각을 하며 깔루아밀크를 홀짝댔다. 커피우유의 단맛 뒤로 알코올의 쓴맛이 스며들어왔다. 어쩐지 모든 게 피곤해졌다. 공복감은 그대로였다. 그래도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춤을 추던 여자한테 손짓으로 인사를 했다. 3시경이었다.  


나가는 길에 빅터를 만났다. 그는 자기 이름을 빅터라고 밝혔다. 촌스러운 이름이었다. 이름이랑 별개로 인상적인 만남이었다. 클럽 앞 골목에 사람들이 서넛 모여서 담배를 피는 중이었다. 그 중 한 외국인 남자가 소주를 병째 나발을 불어 댔다. 나 역시 그런 적이 있다. 어릴 때 돈이 없어도 한참 없던 시절, 클럽 안에서 술을 주문하는 건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건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기에 우리는 대책을 찾아야 했다. 클럽에서 제대로 놀려면 더 과감해야 하고 보다 제정신을 통제하지 못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클럽에서 춤을 추다가 담배를 피러 나갈 때마다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샀다. 그걸 돌려 마셨다. 통째로, 벌컥벌컥, 나발을 불다가, 알코올의 공장 냄새, 쓴 맛이 목 전체에 가득 찬 느낌을 들고 다시 클럽으로 뛰어들곤 했다. 클럽 안에서 파는 맥주나 칵테일은 7000원 선이었고 소주는 4000원이었다. 3000원이 아까워서 저렇게 나발을 부는가? 외국인이 소주가 좋아서 굳이 저러는 꼴을 본 적은 없다. 정말 3000원을 아끼려고 저러는 것인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프랑스 생 뭐라고 하는 도시에서 왔다고 한다. 고우클랜인지 코클랜인지 정확한 발음은 모르겠으나 빅터라는 퍼스트 네임은 기억하기 쉬웠다. 머리를 빡빡 민, 키가 멀대 같은 백인인 빅터는 가까이서 보니 소년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다. 왜 여기서 소주를 먹느냐고 하니까 그는 그것이 자기 스타일이라고 답했다. 나는 그에게 술을 사줄 테니 1층에 있던 라운지로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두 잔째 깔루아밀크를 마시며 빅터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자기가 교환학생이라고 밝혔다. 빅터는 서울은 놀라운 도시라며 골목골목이 살아 있는 것 같다고 감탄을 전했다. 나는 대충 맞장구를 쳤다. 그러하냐, 서울은 확실히 큰 도시다. 어느 골목을 가봤길래 그런 생각을 하는가? 그러자 빅터는 “이 근방의 골목은 다 가봤습니다, 외국에서 골목 다니는 걸 좋아하니까요.”고 했고, 나는 “이 근방 어디 골목이 그렇게 인상적이었길래?”하고 되물었다. 나는 이어진 대답을 듣고 그 진위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근대 유럽의 성과 도시구조를 닮은 곳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골목을 갔는데 갈 때마다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분명 같은 길로 갔는데 다른 풍경이 나오더군요. 미로인 줄 알았죠. 그 끝에서 본 골목이 딱 그랬습니다. 오래된 유럽 마을의 골목이랑 똑같았다니까요. 풍차도 있었어요.”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건 당신이 잘못 본 게 아닙니까? 한국에 왜 옛날 유럽 골목이 있죠. 풍차가 말이 됩니까?” “나는 구글 GPS를 켜고 다녔어요. 지도에 표시도 꾸준히 했죠. 여기 별로 표시해둔 곳이 내가 말한 그 골목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빅터는 골목 한 쪽으로 가 소주병을 전봇대 뒤쪽에 숨겨서 버렸다. 그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액정에 표시된 곳의 위치를 보여줬다. 그 뒤로 계속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눴다. 왜 양말을 짝짝이로 신냐고 내가 묻자 그게 유럽스타일이라고 그가 답했다. 그는 한 짝은 노랗고 한 짝은 초록색인 그 양말이 본래 짝짝이가 아니라고 항변 섞인 설명을 했다. 그가 발을 높게 들어서 양말을 보여줬는데, 양말의 끝부분, 그러니까 두 짝 다 발가락 부분에 r이라고 적혀 있어서 그게 진실인 줄을 알았다. 그는 스테이지로 내려갔다. 나도 그를 따랐다. 동기들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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