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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알 Sep 11. 2021

곧 돌아올 거야, 나 뭐 저지른 일 없어

34년만의 무죄 판결, 커티스 크로스랜드는 환갑에 가족과 재회했다


1987년 커티스 크로스랜드는 미국 펜실베니아주(州)에 사는 26세의 평범한 흑인 남성이었다. 그는 가정이 있는 남자였다. 아내와 6살, 2살 된 자식이 있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평범하고 안온한 인생을 살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당시 그는 물리치료사 조수로 일하면서 관련 공부를 위해 대입을 준비했다. 그는 조수가 아닌 진짜 물리치료사가 되고 싶었다.


그해 정체 모를 남자들이 그의 집 문을 두드렸다. 경찰이었다. 그들이 크로스랜드를 데리고 사라졌다. 60년 인생의 분기점이 된 순간이었다. 크로스랜드는 문을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곧 돌아올 거야. 나 뭐 저지른 일 없어.” 그때 다시 집으로, 가족들의 곁으로 돌아오는 데 34년이 걸릴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리치료사를 꿈꾸던 청년은 영문도 모른 채 법정에 서야 했다.


그는 자신이 1984년 필라델피아에서 발생한 식료품 가게 주인 피살 사건의 용의자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해 식료품 가게 문을 닫으려던 가게 주인 토니 허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있었다. 범인이 잡히지 않아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크로스랜드의 존재로 사건이 급물살을 타며 풀리기 시작했다. 그는 2급살인, 강도, 범죄 도구 소지 등 혐의로 기소됐고, 유죄를 선고받아 기어코 살인자가 됐다. 4년 뒤인 1991년 2심이 있었으나 선고는 바뀌지 않았다. 종신형이었다.


준엄한 사법절차에 따라 평생을 교도소에서 보내는 삶이 그의 운명이 될 터였다. 그러나 그 운명이 기적적으로 방향을 뒤틀었다. 6월 22일 펜실베니아주 항소심 법원인 커먼웰스 법원이 34년 만에 당시 판결이 잘못됐음을 인정한 것이다. 주문서를 쓴 아니타 브로디 판사는 크로스랜드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석방을 명했다. 그러자 필라델피아 지방 검사인 래리 크래스너는 30년 전 기소 당시 검찰이 그에게 씌웠던 혐의를 취소했다.


“정말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도 알겠지만... 30년도 넘는 세월이에요. 제발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문을 두드렸는데, 마침내 그 날이 왔어요.” 그가 언론에 심정을 밝혔다.


34만에 이뤄진 크로스랜드의 귀환은 곧 구멍 뚫린 정의를 기우는 일이었다. 래리 크래스너 필라델피아 지방 검사가 이 일에 뛰어들었다. 그는 2018년 필라델피아 검찰에 ‘유죄 판결 진실성 판단 기구’(Conviction Integrity Unit, CIU)를 설치했다. 잘못된 유죄 선고가 있는지 심리하는 기구다. 크래스너가 이끄는 CIU팀은 사건 수사 초기부터 작성된 필라델피아 검찰, 경찰의 기록을 수개월 동안 검토했다.


그는 무언가가 심하게 잘못됐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에 대한 기소는 증인 2명의 진술을 바탕으로 이뤄졌는데, 증인 중 한명인 델로레스 틸그만은 경찰에 크로스랜드가 다른 사람과 살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증인 로드니 에버렛도 경찰에 크로스랜드가 토니 허 씨를 살해한 사실을 자신에게 자백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 두 증인 모두 후에 증언을 번복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사실이 경찰과 검찰에 기록으로 남아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크로스랜드의 변호인 측은 이를 전달받지 못했다. 어떻게 변호인에게 이 같이 중요한 진술을 전달되지 않은 것인지조차 불명확했다. 당시 이 사건을 맡았던 검사는 “이 건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다”면서 “항상 재판 향방을 가를 중요한 증거는 변호인에게 공유하는 것이 내 원칙이었다”고 항변했다. 좋은 원칙이다. 그러나 그 원칙이 얼마나 훌륭한지와 별개로 실제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죄 없는 사람의 34년이 희생됐다. 무려 34년이.


크래스너 팀이 옛 기록에서 발견한 사실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수감돼 있던 에버렛은 관대한 처분을 기대하고 거짓 증언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에버렛의 부인이 다른 가해자를 봤다는 진술서, 정보를 줄 테니 도와달라며 에버렛이 형사에게 쓴 편지. 모두 다 수사기관 내 기록과 자료로 남아 있었다. 실제로 증인들은 경찰의 강요와 협박 탓에 거짓 증언을 했다고 고백했다. 텔그만은 “그 아니면 나였다”면서 “그들이 나를 감옥에 잡아 넣을 것이라 협박했고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경찰이 처음에 다른 용의자를 지목했다는 기록도 있었다. 반면 크로스랜드가 살인에 연루됐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크로스랜드는 사법당국이 판결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애썼다. 그는 역량 있는 변호인을 구할 돈이 없었고, 기껏 구한 변호인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스스로 변호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그는 교도소 도서관에서 관련 도서를 읽으며 법학을 공부했다. 34년 동안 수십번의 청원을 제출했고, 그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하는 증인을 3명 확보했고, 다른 용의자를 봤다는 증인까지 찾아냈다. 이런 과정 끝에 그는 지난해 초 CIU에 자기 사건을 다시 봐달라고 요청했다. 크래스너 지방 검사가 그의 노력에 드디어 응답한 것이다.


그는 “매년 무죄를 주장하러 법원에 갔지만, 닫힌 문을 마주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잠을 푹 잔 적이 없는 것 같다”면서 “그렇지만 항상 무죄 선고를 받는 날, 그 날에는 푹 잘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되뇌었다”고 말했다.


영문도 모르고 경찰에 잡혀간 지 34년이 지났고, 이제 그의 꿈은 물리치료사가 아니다. 그는 가족과 지내면서 이제는 보다 괜찮은 직장을 잡을 계획이다. 당장 그는 막연하게나마 수감 중 쌓은 법학 지식을 활용해 또 다른 무고한 사람들의 가족을 도와주는 일을 생각하고 있다.


그가 체포됐을 당시 아들 리신 크로스랜드는 2살배기였다. 이제 그는 36살이고 두 아이의 아버지다. 리신은 “우리는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시달려왔다”면서 “새 옷도 없었고, 가스가 끊기고, 전기도 끊기고 생활 속에서 배를 곪고 지내야 했다”고 말했다.


잘못된 사법이 찢어놓은 가족의 삶이 이제 봉합될 수 있을까? 크로스랜드는 “여전히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데에, 누군가 나를 원하고 바란다는 사실에, 나를 맞기 위해 팔을 벌린다는 사실에 엄청난 기분이 든다”면서 “나를 바라고 원하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집에 오다니, 이게 무죄 선고의 가장 좋은 부분”이라고 말했다.


24일 그가 석방된 순간, 그와 가족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다가 도로 교통을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34년 만에 집에 가는 거라고요. 내 결백이 밝혀졌어요.”

크로스랜드가 한 운전자에게 사과하며 말하자, 그 운전자가 이렇게 답했다.


“Praise God(하느님을 찬양합시다).”


국내 보도

https://www.yna.co.kr/view/AKR20210801042800009


- 이 글은 CNN, 워싱턴포스트, 필라델피아인콰이어러의 보도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 내용 중 제가 1차적으로 취재한 내용은 하나도 없음을 밝힙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커티스 크로스랜드의 몫일 것이고 그 다음이 저 언론사들의 몫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https://www.inquirer.com/news/curtis-crosland-exonerated-philadelphia-da-ciu-20210625.html

https://edition.cnn.com/2021/07/31/us/curtis-crosland-philadelphia-murder-exoneration/index.html

https://www.washingtonpost.com/nation/2021/08/01/philadelphia-man-exonerated-murder-charge-pr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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