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우정이라는 탈을 쓴 음모들
파리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두 남자가 이야기 하고 있다. 크로스(버트 랭커스터)와 장 로리에르(알랭 들롱). 미국으로 오는 내내 둘 사이는 절친처럼 보이지만 사실 로리에르는 CIA의 명령에 의해 파리에서 크로스를 죽여야 하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를 보면서 인간적인 정을 느낀 로리에르는 명령을 거부하고 크로스를 살려 주었다. 그렇기에 미국 공항에서 헤어지만서 장이 "여기서 부터는 서로 모르는 사이 아닌가요?"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크로스의 부인에게 안부 전해 달라는 말을 끝으로 둘은 그렇게 갈라진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크로스를 미행하는 자들이 나타나게 돼고 크로스는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그 자를 제압하고 다시 탈출한다.
다른 쪽에서는 장을 CIA로 불러 들인다. 파리에서 실패 했으니 이젠 여기서 크로스를 제거하라는 CIA 첩보부장 맥클라우드(존 콜리코스)의 밀명이 주어지자 상당히 혼란에 빠지게 된다.
한편 크로스는 CIA 요원으로서 미국 CIA의 아랍지역 첩보전 일선에서 뛰고 있는 베테랑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은 강대국들끼리 벌이는 게임의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 다는 냉정한 현실을 깨닫고는 이 무서운 게임에서 발을 빼기 위해 비밀리에 탈출자금을 모으기 시작하고 그 일환으로 미국의 최대의 적인 소련 KGB 요원인 자코프(폴 스코필드)를 만나 미국측 정보를 넘기기도 하며 CIA의 눈을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피해 다닌다. 그러던 와중에 파리에서 장 로리에르도 만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CIA와 국가를 배신한 크로스, 마음을 바꾸고 다시 크로스를 잡기 위해 CIA와 손잡은 장 로리에르, 맥클라우드 첩보부장,자코프 그리고.. 그리고...... 크로스가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부인까지.. 이들 사이에서 갈등과 반목 자중지란까지 겹치며 결국 이들이 걷고 있던 살얼음판에 점점 금이 가기 시작하는데......
1970년대 강대국들 사이에서의 냉전상황의 어두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 작품은 언뜻 지루한 것 같으면서도 꽤 긴박하게 흘러간다. 제목 <<스콜피오>>는 극중 알랭 들롱의 별명으로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오늘 혹은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정말 1분1초도 불안과 공포속에서 허우적 댈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각국 스파이들이지만 어떻게든 정상적으로 인간답게 살려고 발악하는 첩보원들의 애환이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영화와 영화가 개봉했던 당시의 1973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이라는 측면도 있지만(물론 당시 우리나라는 유신정권으로 훨씬 더 암울하긴 했다.)1963년에 개봉한 <<레오파드>>이후 10년만에 함께 공연한 버트 랭카스터와 알랭 들롱 이 두 사람의 명연기도 큰 몫을 한 것도 결코 간과 할 수 없다. 버트 랭카스터야 1953작 <<지상에서 영원까지>>, 1960년작 <<엘머 캔트리>>로 유명한 초 베테랑 배우이고 <<엘머 캔트리>>로는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한 명실상부 헐리우드 최고의 배우니 더 말할 필요 없는 최고의 연기파배우이다. 알랭 들롱 역시 58년작 <<사랑은 오직 한 길>>을 시작으로 60년작 <<태양은 가득히>>, 70년대 초의<<암흑가의 세 사람>>, <<암흑가의 두 사람>>, 볼사리노 시리즈를 통해 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꽃미남스타이다. 물론 연기력도 외모만큼 빼어났다. 이미 한 차례 손발을 맞춰 본 적이 있는 두 명배우들이 함께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니 영화 속 주인공들이 느끼는 희노애락, 스토리의 긴박감을 두 배 혹은 그 이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