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부부의 팁
아내와 나는 스물에 만나 11년을 연애하고 결혼했고, 이제 결혼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처음 연인이 되었을 때를 떠올려보면, 막 10대를 벗어난 어수선함과 성인이 되었다는 때 이른 긴장감이 공존하던 때였던 것 같다. 당시 아내와 내가 주고받았던 사랑은 실용보다는 낭만이었다. 무용하고 비합리적이며 서툴었으나 좋았다. 당연히 서로 다투기도 많이 다퉜다.
특히 나는 연인이 된 지 100일째 되던 날 입대했으면서도 애인에게 집착하고 짜증내기를 일삼던 파렴치한이었기 때문에, 우리 둘의 다툼은 20대 초반에 극단적으로 집중되었다. "보고 싶어, 사랑해."로 시작한 통화는 자주 "됐어, 끊어."로 끝났다. 기분 상하는 일이 생기면 나는 얼른 대화로 풀어보려는 인간이었고, 아내는 일단 속으로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한 인간이었다. 아내에게는 나의 시도가 닦달이었고 나에게는 아내의 침묵이 회피였기 때문에, 결국 다툼의 원인은 온데간데없고 서로의 태도를 탓하기 바빴다.
정말 행운처럼, 딱 한 번, 어쩌다 내가 '닦달'하지 않고 하루쯤 각자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정말 기적처럼, 아내는 아주 정돈된 말들로 내 마음을 이해해 주었다. 그때 깨달았다.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아내의 말은 회피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 이후로 서로의 관계와 대화에 대해 "내가 맞다."라는 어리석은 오만함을 떨칠 수 있었다. 덕분에 20대 중반 이후로 지금까지 약 10년 동안 우리 부부는 서로 다툰 횟수가 5번이 채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다툼이라 부르기보다는 '치열한 논쟁'정도에서 마무리되었으니 적어도 서로에게만큼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부럽지 않은 배려와 처세를 갖추게 되었다 봐도 좋을 듯싶다.
내 입으로 말하고, 내 손으로 쓰긴 민망하지만 우리는 주변인들에게 '다정한 부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우리 부부 관계가 다정하고 살갑기 때문에 지나친 겸손을 떨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어디 내놓고 자랑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부부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고, 각진 마음의 모서리를 차근차근 깎아내며 다정해지려 노력하는 중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인들에게 인정받은 다정한 부부의 상징으로서 한 가지 팁을 이야기해 본다면, 바로 '사실과 감정을 구분하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 거창하지 않은 방법이고, 어쩌면 교과서에 나올 법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인으로 살다 보면 모두 깨닫지 않는가. 평범이 가장 어렵고, 옳은 것으로 옳다 말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말하는 것이 가장 용기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잘못하면 사과하고, 호의에는 감사하는 태도를 갖추기는 의외로 어려울 뿐 아니라, 혼자 실천하다가는 손해 보는 기분마저 든다. 사회에서는 불특정 다수, 또는 특정 다수와 관계 맺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부부는 '두 사람'이다. 그냥 두 사람이 아니라 서로를 가장 소중히 여기기로 약속한 '두 사람'이다. 적어도 두 사람 사이에서는 어려운 것을 기꺼이 해낼 용기와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과 감정을 구분한다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본의 아니게 나로 인해 아내의 기분이 상할 만한 상황이 생겼다. 물론 나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었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원래 의도와도 다르게 아내에게 전달된 것 같지만, 그래서 사실 나도 억울하긴 하지만 -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우선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
(1) 사실 : 지금 이 상황은 아내가 화날 만하다. 그리고 그 원인은 내가 제공했다.
사실이 위와 같다면 모든 걸 차치하고서, 나는 사과하는 것이 맞다. 그러면 사과해야 한다. 그 사과에 100%의 진심이 담기지 않아도 괜찮다. 억울한 마음 40%에 사과해야겠다는 마음 60% 정도면 훌륭하고, 심지어 비중이 그 반대여도 무방하다. 중요한 건, 최선의 마음을 담아 사과하는 것이다. 그럼 일단 '사실'에 대해 적절한 행동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감정'은 사실과 좀 다르다.
(2) 감정 : 나는 미안하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억울한 감정이 남았다. 아내는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긴 했지만 서운함이나 분노가 모두 가시지는 않았다.
보통 이 지점에서 많은 연인과 부부들이 악순환을 반복한다. 상대방의 사과를 '사실에 대한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감정적인 진실성'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럼 사과한 사람은? '사실에 대한 사과'에 충실하지 않고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겉으로 꺼내 보이는 실수를 한다. "아니, 그래서 사과했잖아." 따위의,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을 해대는 것이다.
사실 인간에게 언어는 대부분의 경우 삶이나 감정보다 성급하다. 물론 충분히 숙고하여 생각이 삶에 스민 다음에 말을 하거나, 감정을 추스르고 난 뒤에 건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상에서는 언어가 먼저 입 밖으로 나선다. 실천하지 못할 명언과 도덕률을 '입으로만' 뱉거나,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으면서 일단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때문에 언어와 삶, 사실과 감정 사이의 갭을 줄이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부부는 서로의 그러한 시간까지 고려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잘못한 사실'이 있는 사람은 '미안한 감정'이 온전하지 않더라도 일단 사과해야 한다. '사실에 대한 사과'를 받은 사람은 당장은 마음이 풀리지 않더라도 일단 사과를 받아야 한다. 각자의 감정은 그다음 지점에서 따로 다뤄야 할 주제다. 그래서 우리 부부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이어진다. (아내와 나는 이름 끝자를 따서 '빈이', '름이' 라고 서로를 부른다.)
아내 : 그런데, 아까 그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빈이 의도는 그게 아니었겠지만 나는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어.
나 : (당황스럽고 억울하지만) 름이 입장에선 충분히 그렇게 생각이 들 수도 있었겠네. 그것까지 생각을 못했어. 앞으로 비슷한 상황에선 내가 더 조심하고 신중해야겠다. 진짜 미안해.
---- '사실'에 대한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카페에 도착해 주문을 하기까지, 약간의 서먹함이 유지된다. 그건 각자의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므로 서로 터치하지 않는다. ----
아내 : 빈이, 아까 내가 무시당하는 것 같다고 서운하다고 이야기했을 때 바로 사과해 줘서 고마워. 생각해 봤는데 내가 좀 예민했나 싶기도 하고 그러네. 이제 서운하지도 않고, 나 기분 좋아!
나 : 나도 사실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거든. 원래 의도는 그게 아니었으니까. 근데 생각해 보니까 름이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겠더라고. 름이도 바로 사과받아줘서 고마워. 나도 이제 억울한 건 하나도 없어. 내가 잘못했지! 으이구, 입이 방정이야 방정!ㅋㅋ
---- '감정'에 대한 대화까지 마무리되었다. 우리 부부는 자칫 다툼으로 이어질 뻔한 상황을 자주 이렇게 정리 정돈한다. 그러면 다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지는 기분이 든다. ----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부부도 수년 동안의 시행착오, 치열한 전투, 오해와 의심의 밤들을 거쳐 몸에 익힌 일이다. 하지만 평생을 함께 하자고 마음먹은 마당에, 몇 년의 노고가 별 대수인가.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순 없어도, 부부만큼은 서로에게 가장 좋은 사람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하게도, 그런 노력은 결국 타인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는 일로 자주 이어진다. 결국 부부는 서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찾아온 은인들의 관계 아닐까.
모쪼록 '저렇게 사는 부부도 있네.' 정도로 가볍게 읽고서, 종종 시도해 보시길. 사랑은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는 소중히 대하기 어렵다. 우리 부부도 아직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