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냈습니다>
기억은 때때로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기억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기억의 고통을 느껴본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한 번쯤 떠올렸을 수 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깨끗하게 지울 수만 있다면…….’ 누구나 기억하고 싶은 것은 오래 기억하고, 지우고 싶은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기억을 의지대로 통제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기억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이 있습니다. 1987년,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 교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억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방에 앉아서 무엇이든 떠오르는 대로 말해보세요.” 학생들은 각자 그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자, 조금 전에 했듯이 떠오른 생각을 이야기해보세요. 그런데 이번에는 한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흰곰을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흰곰’이라고 말하거나 ‘흰곰’을 떠올렸다면, 그때마다 여러분 앞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을 치세요.”
학생들은 별로 어렵지 않은 실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흰곰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말하려고 하니, 조건을 달기 전에는 자연스레 생각하던 것이 뒤죽박죽 되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흰곰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종이 딸랑딸랑 계속 울렸습니다. 이 실험 뒤, 대니얼 웨그너 교수는 한 가지 실험을 추가했습니다. 이번에도 학생들에게 떠오르는 것을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단 이번에는 흰곰을 생각해도 된다는 조건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흰곰을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흰곰에 매달려서 쉴 새 없이 종을 쳤습니다. 흰곰에 집착하게 된 겁니다. 반대로 처음부터 흰곰을 생각하라는 지시를 받은 대조군의 학생 10명은 종을 치는 횟수가 훨씬 적었습니다.
웨그너 교수는 이런 현상을 ‘반동 작용’이라고 일컬었습니다. 흰 곰을 생각하지 말라는 ‘생각의 억제’가 오히려 그 생각을 더 하도록 만들었고, 생각이 허용되었을 때는 억제된 만큼 더 집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생각을 억압하는 것이 오히려 그 생각에 더 몰입하게 만들고, 억압이 풀릴 때는 억압했던 만큼 반동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난 뒤,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또렷하게 생각납니다. 기억이란 의지와 반대로 흘러갑니다. 기억하고 싶은 것은 잊고 반대로 기억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라지기는커녕 끊임없이 그 생각이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희한하게도 기억하기 싫은 것만 자꾸 생각나는 법입니다.
사람은 경험과 학습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키워갑니다. 학습된 능력은 기억을 통해 뇌에 저장됩니다. 우리가 상처라고 일컫는 것도 같은 과정을 밟습니다. 경험이 기억으로 남아 현재의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상처입니다. 그런데 기억을 잘할수록 능력이 커지는 것처럼 상처도 기억하면 더 커집니다. 그래서 능력을 키우는 방법이 그것을 계속 기억하는 것이라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상처의 기억보다 현재에 더 집중하는 겁니다. 과거의 기억이 놓인 자리에 현재의 시간이 들어올수록 상처는 작아질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이별을 경험하고도 우리는 다시 사랑을 시작합니다. 가슴 아픈 이별을 경험했다고 내 안의 사랑이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별을 통해서 새롭게 발견한 가치도 있습니다. 이별을 겪기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삶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이별은 내 삶을 재정비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관계도 맺고, 새로운 꿈도 꾸고, 새로운 사랑을 하는 것도 이별이 가져다주는 선물입니다.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우리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별한 사람들을 위한 애도심리 에세이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냈습니다』 https://url.kr/tkwb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