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반격(反擊)
1. 쳐들어오는 상대방을 맞받아 공격함
2. 적인 상대방의 공격을 되받아 공격하다
- 'Daum 한국어 사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아주 오래전 TV에서다.
그때가 정확히 언제쯤인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오래 전임에도,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가 나의 장기기억에 깊이 자리해 앉았다. 절대로 잊히지 않는 '엄석대'라는 강렬한 이름도.
권선징악에 바탕한 영화의 내용은 흥미진진하다.
엄석대는 강력하고도 절대적인 거악(巨惡) 임에도, 영화 속 일부 인물들에게는, 오히려 완벽한 선(善)의 모습으로 인식된다. 악은 권력자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교묘하게, 조직적으로 온갖 악을 행하다가, 결국에는 나름의 최후를 맞는다.
영화가 머릿속에 각인된 후에는, 어쩌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등장인물, 선과악의 여러 구도들이, 마치 우리 사회의 단면을 묘사한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고는 했다—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이문열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은, 권력의 속성이 잘 나타나 있고, 그에 쉽게 편승하는 여러 인간 군상도 잘 표현되어 있고,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를 교훈으로 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당대표에서 쫓겨(?)나, 자기 나름 억울해 죽을 뻔하던 이준석이, 2023년 3월 3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들고, 내용이 국민의힘 상황과 같다며, 윤석열을 엄석대에 빗대어, 책을 언급했다.
※ 군복무 시절, 부대 내 도서관에 있던 각 10권짜리인 이문열의 삼국지, 수호지를 재미있게 읽었으나, 그 후로는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게 되었다. 그저 가끔씩 망언을 작렬하시는 연로한 작가라는 이미지만 남아있다. 그러니 영화를 이미 먼저 접한 마당에, 굳이 소설을 읽어보려고는 하지 않았다.
시놉시스
OO국민학교 5학년 2반 급장 엄석대.
그는 어느 학교, 어느 반에나 있는, 흔한 급장(=‘반장’의 옛날 말)들과는 아주 다르고,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아주 다른 여러 모습을 보이는 독특한 인물이다.
담임선생님인 최 선생(배역 : 신구)에게, 엄석대는 완벽한 학생이다. 학업에서 항상 전교 1등을 하는 우등생이고, 청소검사, 체벌 등 선생님이 해야 할 많은 일들을 대신해 주는 믿음직한 급장이고, 반 아이들을 확실하게 통솔하는 리더십까지 갖춘 학생이다. 엄석대의 탁월함 탓에, 교무실의 다른 모든 선생님도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 믿음이 이미 너무나 확고한 나머지, 그들은 사실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담임선생님의 두터운 신뢰 속에, 선생님의 권한 상당 부분이 엄석대에게 있다. 엄석대는 심지어 같은 반 친구에게 체벌도 직접 행한다. 친구들을 복도에 꿇어 앉히고, 시간표에 있는 수업의 순서를 마음대로 바꾸고, 청소검사를 해서 하교 여부를 정해주고, 온갖 심부름을 시키고, 물건을 빼앗는다.
하지만 교내 모든 선생님들에게, 5학년 2반은, 우등생 엄석대가 잘 통솔하는 우수한 학급이다.
문제의 인식
시골로 발령받은 공무원 아버지를 따라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전학 온 한병태. 5학년 2반으로 배정받은 한병태는, 선생님이 정해준 자리배치를 마음대로 바꾸는 급장, 점심시간에 급장에게 물을 떠다 주는 당번이 있다는 것 등... 첫날부터 학급이 너무나 이상하다고 느낀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 또한,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5학년 2반이 아주 비정상적인 학급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엄석대는 권력자(선생님들)를 속이고, 약자(학생들)를 짓밟는다. 학급의 부장들은, 엄석대의 충직한 부하이자 정보원으로 활동한다. 위협이 되는 대상은 폭력으로 제압하고, 친구의 물건이 탐나면 협박하여 갈취한다. 엄석대의 세상은 견고하게만 보였다.
서울에서 공부를 곧잘 했던 병태는, 학업에서라도 엄석대를 이기기 위해, 밤늦게까지 열심히 시험공부를 한다. 하지만 시험시간에 과목별 반최우수 학생들의 답안지를 가로채가는, 엄석대를 이겨낼 재간이 없다.
엄석대를 둘러싼 인간들의 군상은 대략 3 부류로 분류가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선생님들,
불합리한 줄 알지만 수용해 버린 약자들(학생들),
그리고 엄석대의 강력한 조력자들
현상에 대해 각자가 처한 바와 관점이 모두 다르다. 선생님들은 정보의 파편들을 그대로 수용하고, 피해자인 같은 반 급우들은 피해를 당하면서도 아무 말이 없다.
전학생 한병태는 문제를 인식했고, 엄석대의 잘못을 선생님들에게 제보도 해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친 한병태는 저항을 멈추고 자포자기하여, 다른 학생들처럼 그냥 현실에 동화되기로 맘먹는다. 엄석대의 제국은 난공불락의 철옹성 같았다.
그러나 그의 제국은 사실 그다지 견고하지 않았다.
발각
제왕 같던 엄석대의 위세는, 6학년이 되고, 새로 부임해 온 김 선생님(배역 : 최민식)이, 2반의 담임이 되면서 180도 바뀐다. 엄색대는 그 이전과 다름없이,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나, 그의 처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김 선생은 담임을 맡은 첫날, 첫 시간에 칠판에 '진실과 자유'라고 적은 후, 이렇게 말한다.
"매사에 진실되게, 늘 자유롭게 행동해라... (중략) 공부를 다소 못하는 건 용서할 수 있지만, 거짓말하는 건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어"
이 말은 앞으로 엄석대에게 닥칠 일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암시였다.
김 선생은 학급을 맡자마자, 2반의 이상한 공기를 바로 알아챈다. 급장을 뽑는 투표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엄석대가 당선되는 것부터 이상했다.
교무실에서 다른 선생님들에게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전교 1등만 했다는 엄석대를, 산수 시간에 불러내 문제를 풀어보게 했으나, 쉬운 문제임에도 쩔쩔매고 전혀 풀어내지 못한다.
그러다 일제고사를 치른 후, 김 선생은 모든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어떻게 엄석대가 1등이 되고, 누가 시험지를 제공했는지... 그리고는 반아이들 모두에게 한 사람씩 자신이 알고 있는 엄석대의 잘못을 말하게 한다
연필을 빌려가고 돌려주지 않음.
새장화를 압수함.
다른 반 여자애들 치마를 들추게 함.
돈을 내면 변기청소를 면제해 줌.
토요일마다 100 환씩 상납하게 함.
이기게 해 준다며 다른 친구와 싸움시킴.
과수원집 아들에게 점심시간마다 과일을 상납하게 함.
여자 목욕탕을 몰래 훔쳐보다가 친구의 손을 자기 바지 속에 넣음.
누나 속옷을 몰래 훔쳐오게 함.
문방구에서 물건 훔치다가 들켰을 때 친구에게 누명을 씌움.
화장실에서 여자선생님 엉덩이를 훔쳐보게 하고,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달라 함.
나쁜 짓은 자기를 시키고, 시키는 것을 안 하면, 중학생을 불러다가 때리게 함.
대략 이런 것들이다.
엄석대의 폭력과 억압에 억눌려있다가, 담임선생님의 비호에 안전함을 느낀 아이들은,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하다 결국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저 새끼 순 나쁜 새끼예요"
* 反擊(반격) (하)에서 계속
* 커버 이미지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화 포스터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