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리스 미디어 블록체인의 기술 (4)
블록체인의 특징 중 하나는 내용이 한 번 기록되면 수정할 수 없는 비가역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이는 블록체인에 상태 변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블록체인 상태 변화 방식으로는 UTXO, 어카운트(account), 메모리(memory) 방식이 있다. 예컨대 한 지갑에서 암호화폐를 이체해 다른 지갑에 보낼 때 상태인 잔고는 변경된다. 블록체인에서는 이러한 상태 변화가 모두 기록되고 기록된 후에는 원칙적으로 수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블록체인도 수정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프로토콜을 바꿀 수도 있고, 스마트 컨트랙트를 바꿀 수도 있으며, 거래를 되돌릴 수도 있다. 즉 법을 바꿀 수도 있고, 계약을 수정할 수도 있으며, 거래를 무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이 현재는 대단히 까다롭다.
일반적으로 블록체인에서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포크를 해야 한다. 블록체인에서 포크는 크게 소프트 포크(soft fork)와 하드 포크(hard fork)로 나눠진다. 소프트 포크는 기존의 블록체인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새로운 규약을 적용하거나 기능을 추가하는 업그레이드다. 반면 하드 포크는 특정 분기점에서 기존의 블록체인으로부터 분리되어 고유한 블록체인을 만들어가는 업그레이드다.
하드 포크 사례로는 비트코인이 증인 분리, 즉 세그윗(segwit, segregated witness)을 단행했는데, 중국 채굴자들이 이에 반대하고 비트코인 캐시(Bitcoin Cash)를 만들어 나간 사례가 있다.
세그윗을 하는 이유는 블록체인의 확장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블록체인의 블록은 원래 거래 내역과 서명이 결합된 형태로 생성된다. 비트코인의 경우 1개 블록의 크기는 1MB로 제한돼 있다. 이 제한을 유지하면서 한 블록에 더 많은 거래를 다룰 수 있게 하기 위해 거래 내역과 서명을 분리해 각각 따로 분리한다. 비트코인은 세그윗으로 블록 크기를 최대 4배 늘린 효과를 거두었다.
또 이더리움에서 DAO 해킹이 일어났을 때, 해킹 거래를 무효화하기 위해 해킹 거래 직전 블록부터 시작해 새롭게 블록체인을 이어가도록 사례가 있다. 그 결과 해킹 거래를 포함한 기존의 이더리움은 이더리움 클래식으로, 해킹 거래를 폐기한 새로운 이더리움은 이더리움으로 분기됐다.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이 이끄는 이더리움 재단은 이더리움을 인정한다. 기존의 중앙화된 서비스에서 업그레이드는 업체가 전권을 갖고 진행한 반면, 포크는 주요 개발자와 거래소 등이 협의를 통해 포크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
변화무쌍한 미디어 환경과 사업 환경에서 일상적인 업데이트나 업그레이드를 합의를 통한 포크 형태로 진행한다면 미디어 블록체인의 활용도를 높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그레이더블(upgradable) 블록체인 기술들이 연구되고 있다. 예컨대 블록체인 기술 스타트업 해치랩스(Haechi Labs)에서는 주소 변경과 데이터를 대규모로 옮기는 데이터 마이그레이션(data migration) 없이 여러 개의 스마트 컨트랙트를 한꺼번에 변경할 수 있는 이더리움 기반 업그레이더블 스마트 컨트랙트 기술을 개발 중이다.
더 나아가 탈중앙화된 그로스 해킹이 가능한 블록체인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사실 블록체인의 비가역성은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발전해온 린 스타트업, 애자일 개발(agile development), 그로스 해킹 등의 패러다임에 부합하지 않는다(Reis, 2011; Ellis & Brown, 2017). 미디어 블록체인처럼 실용화된 서비스가 중앙화된 서비스와 경쟁하려면 그로스 해킹이 가능한 업그레이더블 블록체인이 필요하다. 서비스 일부를 그로스 해킹 실험을 위한 샌드박스(sandbox)로 만들고, A/B테스트를 수행한 뒤, 성과가 좋은 쪽을 서비스 전체에 적용하고, 이를 하루에 수십 번씩 연간 수만 번씩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그런 업그레이더블 블록체인 말이다.
기술적인 난점을 극복한다고 해도 업그레이더블 블록체인이 작동하지는 않는다. 그에 맞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우선 업그레이더블 블록체인은 세 층위에서 동작한다. 가장 높은 층위에서는 프로토콜에 대한 업그레이드가 이뤄진다. 주로 하드 포크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다음 층위에서는 스마트 컨트랙트의 업그레이드가 이뤄진다. 스마트 컨트랙트 업그레이드는 해치랩스가 시도한 것과 같은 업그레이더블 블록체인 기술이 사용될 수 있다. 가장 낮은 층위에서는 탈중앙화된 그로스 해킹이 이뤄진다. 서비스의 UX를 개선하는 그로스 해킹은 기본적으로는 스마트 컨트랙트 업그레이드 기술을 그로스 해킹을 위한 마케팅 기술(martech, marketing technology)에 응용해서 쓸 수 있다. 그로스 해킹은 가장 빈번하게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다. 세 층위는 연동될 수 있다. 즉 그로스 해킹 결과 중 일부는 스마트 컨트랙트 업그레이드나 프로토콜 업그레이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업그레이드를 위한 탈중앙화를 위한 프로세스도 마련해야 한다. 대략적인 밑그림을 그려보면 우선 미디어 블록체인 생태계 내의 그로스 해커들은 누구나 자발적으로 개인 또는 팀 단위로 그로스 해킹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의미 있는 그로스 해킹 실험은 보상받는다. 그로스 해킹 실험을 위한 샌드박스는 플랫폼에서 사이드체인을 만들어 실행할 수 있다. 그로스 해킹 실험은 복수로 동시에 진행될 수 있어야 한다. 의미 있는 그로스 해킹 결과는 사전에 거버넌스 수준에서 정의한 그로스해 해킹 평가 규약에 따라 실제 구동 중인 플랫폼에 자동으로 반영된다. 물론 한 번에 전체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부분적으로만 지속적으로 반영될 수도 있다. 전체 플랫폼에 반영될 때는 단계별로 신중히 확장한다.
이 글은 박대민, 명승은이 2018년 공저한 연구서 <미디어 블록체인, 플랫폼리스의 기술>에서 분량 문제로 빠진 부분 등을 보완한 것이다. 아래는 연구서 링크.
* 이 글은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연구용으로 작성됐으며 투자 권유를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닙니다. 모든 투자는 전적으로 투자자 자신의 판단과 책임에 따라 스스로 투자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여야 하고, 그에 대한 결과는 투자자 본인에게 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