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장의 출발점은 '인정'이다
어린 시절 운동을 잘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도 부러웠다.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이들이 부러웠고,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게임기나 전자제품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모든 부러움은 내가 갖지 못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결핍이 되어 오랫동안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흔히 '타고났다' '천재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로 타고난 사람인 건 맞지만, 처음부터 완벽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물론 간혹 처음부터 완벽하게 느껴지는 극소수의 사람들도 있긴 하다)
대부분은 불완전하다. 가지고 있는 구성요소가 다르다.
세상의 기준에 따라, 나이에 따라, 상황에 따라 좋고 나쁨은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일 때 그 한 번의 판단, 그 한 번의 평가는 평생 남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진짜 성장은 타고남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히려 결핍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는 걸 배웠다.
예컨대 나 빼고 가족들은 다 홍대 미대(아버지), 플로리스트(어머니), 이대 미대(동생) 출신으로 예술가들이다. 그래서 나는 늘 내가 미적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정말 오랫동안 옷도 잘 못 입고, 컬러감각도 없고, 눈썰미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오히려 일반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미적 기준이 높은 축에 속했다. 서당개 3년의 좋은 사례랄까.
물론 예술가를 할 만큼 뛰어난 능력은 없다. 하지만 어릴 때 느끼던 것만큼 형편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게 포인트다.
무언가를 하다 보면 취향에 잘 맞는 일들이 있다. 그건 해봐야만 알 수 있는데, 그게 꼭 내가 그 일을 잘해서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다.(어쩌면 인생의 함정은 거기에 있는지도)
하지만 세계 최고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라면, 어떤 일이든 그 방법을 배우고, 깨닫고, 반복하면서 성장시키다 보면 어느 정도는 잘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일이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정말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다.
그런데 어떤 일이든 그 능력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 대체로 누군가의 "인정"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인정은 연료다. 자신감을 만들고, 그 자신감은 행동을 부른다. 반복되는 그 루틴이 성장을 만든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어쩌면 슬럼프라는 과정은 타인의 인정을 너머 자신만의 기준점을 잡을 수 있도록 신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성장은 "인정"에서 시작된다.
불만은 "부정"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어떤 일이든 처음에는 잘 못하는 게 정상이다.
다재다능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모든 면에서 타고난 사람들은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오히려 자기는 뭘 잘하는지 모르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노력했을 것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었을 거고,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는 경우도 있었을 거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인정"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을 인정하고 나면, 내면의 성장판이 열린다.
자신이 부족한 걸 알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를 배우면 확확 달라진다.
반대로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마음의 알고리즘이 좀 복잡하다.(뭔가 꼬여있달까?)
단순히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경험이 부족하거나, 지식이 부족한 것인데, 경험을 더 하거나 지식을 더 배우려고 노력하기도 전에 자신은 "재능"이 없는 것 같다며 스스로를 부정한다. 한두 번 해보고 어떻게 재능을 논할 수 있는지, 어떻게 자신을 그렇게 빨리 판단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내 생각엔 어렸을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자신을 판단하고 평가한 기준에 따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교육체계는 개개인의 장점을 기다려주거나 인정해 주는 방식이 아니라, 오로지 못하는 것만 뭐라고 하고, 못하는 것에 집중하게 만드는 방식이라서가 아닐까 싶다.
좋은 부모나 선생님은 함부로 아이들을 판단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지켜본다.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기다려준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격려해 주고,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준다.
스스로를 인정한다는 건 아주 간단하게 들리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돌아보면 가장 무거운 짐은 인정하지 못한 나 자신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중에 하나다.
나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고?
평생 그 콤플렉스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냥 "인정해야지"한다고 인정이 될까?
그렇다. 정말 쉽지 않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간단한 일이기도 하다.
운동해서 좋은 몸을 만드는 건 쉽지 않지만, 헬스장에 한번 가는 건 간단한 일인 것과 같은 이치다.
결론은 하나다. 반복해서 인정해야 한다.
결국 성장이란, 매일 나 자신을 다시 껴안는 일이다.
어제보다 단 한 걸음만 나아갔다면, 그건 이미 가치 있는 진보다.
현재의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안주하라는 뜻이 아니다.
진정한 인정이란, 내가 지금 정확히 어디서 출발하는지 인식하는 것이다.
내가 어디서 출발했는지, 나의 첫 시작이 어땠는지 모르면 방황하게 마련이다.
기준점이 외부에 있으면 내가 얼마나 성장했느냐와 상관없이 그때그때 명확하지도 않은 모호한 타인의 기준에 휩쓸려 자신을 폄하하기 쉽다. 하지만 나의 출발점을 알면 다른 사람이 잘한다고 말해도 내가 어제보다 후퇴했다면 반성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부족하다고 평가해도 내가 어제보다 전진했다면 스스로 칭찬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초심자에게 권하는 첫 번째 레슨.
그리고 늘 스스로에게 되묻는 말이기도 하다.
처음 기준을 낮춰라.
부족한 나를 인정하라.
대신 안주하지 말고,
조금씩 꾸준히 성장해 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