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is the answer
나의 첫 이메일 주소는 tesdw@hanmail.net 이었다.
대학생 때 처음 인터넷 이메일을 만들고, 고등학교 때 별명이었던 '테스(tes)'와 이름의 약자였던 dw를 합해서 만든 아이디였다. 언뜻 들으면 테스는 멋진 닉네임 같지만, 어원이 썩 좋진 않다.
내가 변씨라는 이유로 여러가지 별명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싫어했던 별명이 '변태'였다.
하지만 별명이라는 게 그렇다. 내 취향이 아닌 타인의 취향으로 결정되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친했던 친구들끼리 별명으로 패밀리가 결정되었다.
피부가 유독 까맣던 친구는 깜스, 반에서 가장 뚱뚱했던 친구는 뚱스, 입술이 두꺼워서 '쥬디'라고 불렸던 친구는 디스, 엉덩이가 유독 컸던 친구는 빵스, 그리고 변티 혹은 변태로 불렸던 나는 테스가 되었다.
그렇게 타인에 의해 결정된 ID(identity, 정체성)을 가지고 오랬동안 살았다.
그러다 어느날 사업을 독립한 후로 이메일을 새롭게 만들고 싶어졌다.
이제 다음의 시대는 저물고, 네이버의 시대가 오던 시기였다.
그렇게 만들어서 지금까지 쓰고 있는 아이디가 바로 'listans'다.
도대체 무슨 단어인지 알 수 없는 이 아이디는 "Love is the answer"의 약자다.
나름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만든 아이디였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한 이후로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 삶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사실 무엇이 먼저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스스로 내 ID를 다시 부여했다는 점이다.
사실 대학시절 나의 가장 큰 화두는 '꿈과 정체성'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교회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이 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또 사회에서 요구하는 또는 인정하는 이상적인 인재가 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저 내가 원하는, 내가 살고 싶은 그런 이상적인 사람(삶)이 있었지만, 여전히 닿지 못한 내가 있었다. 내가 살수 있는 삶은 하나인데, 저마다 답이라고 말하는 인생의 표지판이 3개로 갈라진 느낌이었다.
그걸 참 오랫동안 품고 살았고, 고민했었다.
아마도 내 인생의 3가지 키워드는 그런 고민의 결과로 얻어진게 아닐까 싶다.
바로 사랑(Love), 성장(Growth), 상생(Symbiosis) 이다.
교회에선 사랑을, 나 스스로는 성장을,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상생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삶은 결정하지 않으면 전진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고민만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3가지를 다 아우르는 답이 나에겐 "책(Book)"이었다.
책은 그 무엇보다 큰 사랑을 담고 있고,
나 자신을 성장시키고,
결국 상생하며 함께 나가갈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이메일 주소에는 사랑을,
처음 세운 법인 이름에는 성장을 (법인 이름은 성장과균형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꿈을 찾아 시작했던 책방에는 상생을 담으려 했던 것 같다.
(사이책방의 사이는 시간,공간,인간이라는 3단어에 공통적으로 포함된 '間'(사이 간)자에서 착안해 만든 이름이다.)
사이책방의 철학은 "사이필성(四利必成)'이었는데, 고객이 이롭고, 내가 이롭고, 함께 하는 파트너가 이롭고, 그렇게 만들어진 일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철학이다.
사이라는 단어에 또 한번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었다.
어찌보면 참 쓸데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나에게 이런 게 무척이나 중요했다.
삶은 한번뿐이고, 그 삶을 대충 살고 싶진 않았다.
대충 살지 않으려면 반드시 먼저 "뜻(志)"을 세워야 했고, 10대때부터 이어져온 삶의 화두는 그렇게 긴 세월을 거쳐 나름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 과정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 꿈을 향해 가는 중이다.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글을 썼고,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대화를 나눴고, 많은 일들을 겪었다.
많은 칭찬을 들었지만, 그만큼 많은 실망을 안겼고, 듣고 싶지 않은 많은 욕을 들어야 했다.
삶은 정말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원하지 않는 것들을 견뎌야 하는 시련의 연속이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약간의 겸손을 배웠다. 나를 아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겸손을 많이 배워서 그나마 이정도인 것이지, 겸손을 배우지 못한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내 삶을 어떻게 써내려가야할지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방향은 정해졌고, 목표도 분명하다.
적어도 그 2가지만 확실해도 삶은 제법 선명해진다.
오늘 어제보다 한걸음이라도 더 전진했는지만 확인하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으로 느리더라도 확실한 한걸음, 또는 반발자국이라도 멈추지 않고 간다면
반드시 도착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으니까.
달라지는 건 그저 시기일 뿐일테니까.
문득 조용필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내가 했던 고민들과 해답들은 그저 나만의 고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수가 없네
내가 아는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수 없다는걸
우린 깨달아야 돼.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세상 모든것들을 사랑하겠네
나는 아직 이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할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나와 좋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만큼은 최선을 다해 사랑해 보고 싶다.
그게 지금 나의 초라한 지혜로 닿을 수 있는 최대한의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