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실이 Sep 25. 2022

어떻게 민원처리 우수자가 될 수 있었나?

다음부터는 안 하고 만다

나는 지자체 공무원이다. 조직 내에 여러 업무가 있겠지만 나는 그중에서 민원과 맞닿아있는 업무를 하고 있다.

민원대에 앉아있는 것은 아니라서 대면으로 그들을 상대할 일은 그들이 사무실에 찾아오지 않는다면 거의 없지만, 전화 업무가 굉장히 많은 편이다.


내가 전화로 만나는 사람들을 비율로 따지면 평범한 사람 70%, 이상한 사람 20%, 좋은 사람 10% 정도인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은 쓸데없는 말 없이 본인이 궁금한 걸 물어보고 이에 대한 답을 해주면 끊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은 전화를 받을 때 이런 일로 수고를 하게 해서 죄송하다고, 친절하게 안내해줘서 고맙다고 좋은 하루 보내라며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사람이다. 이상한 사람은 말도 되지 않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잔소리를 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욕하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과 통화하고 업무를 매일매일 처리하면서 어떻게 덤으로 민원처리 우수자에 두 번 선정됐는지 간단한 팁들을 써볼까 한다.

어찌 보면 상당히 뻔한 팁들이지만, 이러한 것들은 나도 업무를 하면 할수록 자꾸 잊게 되는 기본적인 것들이다.

그래도 계속 생각하면서 의식적으로 이러한 태도를 몸에 익히도록 한다면, 나중에 민원인들을 대면할 때 크게 동요하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우수자에 선정된다고 해서 기분이 엄청 좋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이거를 목표로 업무를 한 게 아니도 어쩌다 보니 얻게 된 거라서 크게 기쁘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상금을 주기 때문에 조금의 뿌듯함은 느낄 수 있다.


1. 민원인들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기

- 민원이 접수되면 한 가지 요구사항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본인이 민원을 접수하면서 본인이 뭘 원하는지, 행정에서 어떻게 처리해주길 바라는 걸 본인도 모를 때가 있다. 이런 경우는 상당히 난처한데, 내 입장에서는 사실 본인의 요구가 무엇인지 자기 스스로가 모른다는 것을 납득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나는 민원을 처리해야 하는 자리에 앉아있으니까 최대한 민원의 요지를 정확히 파악하도록 노력한다. 내가 민원을 처리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명확히 작성하고 증거자료까지 첨부하여 내가 한번 더 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고 처리할 수 있게끔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정보가 부실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는 일단 접수된 민원의 글을 꼼꼼하게 읽어보고 어느 법령에 해당하는지 찾아본다. 그래도 파악이 안 되거나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그 민원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본다. 나는 이걸로 한번 친절공무원 사례에 잠깐 이름을 올렸던 적이 있는데, 한 민원인이 정보를 잘못 기재했던 적이 있다. 보통은 정보가 잘못되어 처리할 수 없다고 답변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전화를 걸어 꼼꼼히 이것저것 물어보고 처리해줘서 그런 태도가 고마웠다고 민원인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줬던 적이 있다. 적극적으로 민원을 처리한다고 해서 나에게 눈에 보이는 인센티브가 떨어지는 구조는 아니지만, 원래 이 조직은 금전으로 환산되는 가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 너머의 가치가 중요한 곳이다. 민원을 처리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계는 이 사람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 법정 기한까지 미루지 않고 빠르게 처리하기

- 민원은 시간이 생명이라는 말이 있다. 법정 기한 안에만 처리하면 사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민원인들이 답변을 기다릴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빠르게 처리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가끔은 기한이 남았는데 이거 언제 처리되냐, 빨리 해달라고 조르면 해주기 싫은 게 사람 마음이다. 이런 경우가 아니고서는 웬만해서 기한 연장을 하지 않고 민원을 처리하도록 한다.


3. 민원인들의 말과 기분에 공감해주기

- 솔직히 업무 실무처리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이것만 잘한다면 반을 먹고 들어간다. 사실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민원인들을 살살 달래가면서 좋은 말로 타이르는 게 나도 지칠 때가 있다. 애도 아닌데 왜 기분을 맞춰줘야 하고, 선생님~ 하면서 어르고 달래야 하는 걸 하기 싫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태도는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 어디 화 풀 곳이 없어서 여기에 와서라도 짜증과 화를 털어내야만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빨리빨리 공감해줘서 달래 놓으면 금방 이성을 찾고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나도 사람에게 치여서 공감하는 태도를 가지고 싶지 않을 때가 더 많은데 그래도 이 태도는 계속 내가 이 업무를 하며 연습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4. 돌파구 찾기

-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흔히 말하는 기가 빨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저 인류애가 상실되어 사람이 꼴도 보기 싫을 때가 있다. 아무랑도 말하기 싫고,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고 조용한 곳에서 잠깐 쉬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아마 이 문제는 아는 사람을 상대해서 그런 게 아니라 어딘가 존재하는 민원인 A를 날마다 상대하다 보니까 발생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에게 지쳤다면 잠깐 사람을 떠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내 주변의 좋은 사람들에게서 좋은 에너지를 채워 다시 직장에 돌아가면 괜찮아진다. 뭐든 나만의 돌파구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사실 거창하게 "어떻게 민원처리 우수자가 될 수 있었나?"라고 써놓았지만 나도 왜 2번이나 선정됐는지 잘 모르겠다.

만족도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아마 민원을 자주 넣으시는 분이 고생한다고 열심히 사이트에서 눌러주셨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사람을 상대할 때 빠르게 상대의 본질을 파악해서 사람을 다룰 수 있는 건 나와 함께 일했던 내 동료들에게서 인정받았던 항목이다.

퇴직하기 전까지 사람을 상대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든 이를 악 물고 버텨야지.

다음 편에는 왜 우리 과장님이 그렇게 인기가 많은가?를 탐구하고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남의 불행을 먹고사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