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2026)의 상승세가 무섭다. 설연휴에 전략적으로 개봉했다 쳐도(명절을 노리고 개봉해도 망하는 영화도 많다) 현재 한국 극장가의 상황을 보면 개봉 3주 만에 600만을 돌파했다는 건 전성기의 천만 관객 못지않은 흥행실적이라 할 수 있다. 스코어가 워낙 좋다 보니 영화계에서는 조심스레 천만 관객을 점치는 분위기도 있다.
역사 장르가 흥행하는 건 낯선 일은 아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역사 장르를 논할 때 언급했지만, 사극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를 어떻게 흥미진진하게 만들 것인가. 익숙하기에 접근하기 쉽지만 반대로 그만큼 식상하기 쉬운 게 이 장르가 가진 양날의 검이다.
영화가 역사를 다룰 때는 너무도 유명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거나 반대로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재조명하는 방식이 일반적인데, 전자엔 김한민 감독의 <명량> 3부작이 있고 후자엔 추창민 감독의 <광해 : 왕이 된 남자>(2012)가 있다. '이순신의 해전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거나, '승정원일기의 사라진 15일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라는 질문은 역사를 이미 알고 있어도 사람을 궁금하게 만든다.
역사를 개인의 영역으로 끌고 내려오는 인물들. 좌측부터 <왕과 사는 남자>의 엄흥도, <광해 : 왕이 된 남자>의 하선, <관상>의 김내경
매력적인 사극의 공식
하나 상상력만으로 흥행에 성공할 수는 없다. <왕과 사는 남자>는 과거 한국 영화계의 천만 흥행 사극의 공식을 답습하고 있다. 익숙한 역사를 다루되 역사 이면을, 그리고 그 역사의 이면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사적인 영역의 미시 역사를 주목한다. 역사의 큰 흐름에서 한 개인일 뿐인 주인공이 거대한 역사와 마주치고, 그로써 사적인 사유를 그 자신보다 큰 가치로 확장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쇠락한 촌락의 촌장 흥도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바람을 들여다보자. 그저 부락민들 고깃국에 쌀밥 먹게 해주고 싶다는 가장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가. 옆촌락에서 유배당한 양반을 거두었다가 큰 부와 명예를 쌓았다는 소식을 질투하는 것조차도 지극히 소시민적이다. 그가 첫 번째로 유배지를 청할 때 관아에서 만나는 사람이 정난의 일등공신 한명회였다는 사실도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살며, 자식 잘 되게 하고 싶은 일개 개인의 소망이 화면을 가득 차지하다가 어느 순간 단종의 유배라는 조선사 가장 비극적인 사건과 맞물리며 새로운 형국이 전개된다.
거시 역사를 미시 영역으로 끌고 오면 글 속의 세계관이 체험의 현장이 된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사극들도 전개가 비슷하다. 왕에 대한 음담패설이나 풀며 광대짓 하던 하선이 왕의 대역으로 끌려 들어가는 <광해 : 왕이 된 남자>, 자식 앞길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관상으로 큰돈을 벌어보려던 김내경이 세조와 대결하는 <관상>처럼, 역사와는 거리를 둔 이기적이고 평범한 백성이 대의와 권력의 암투에 휘말리며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이야기들이 관객들을 사로잡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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