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줏대없는 한국 투자자들
Words by Jeong-Yoon Lee
이것저것 보고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몇 가지 말하고 싶은 주제가 떠오른다.
요즘 꽂힌 큰 덩어리의 생각 중 하나는 바로 디자인 비용은 어떻게 매겨야 하는가이다. 디자이너로 있다 보면 개인적으로 견적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게 된다. 나 같은 경우 직장인 디자이너였기에, 한 작업물의 가격을 매긴다는 게 늘 쉽지 않았다. 몇 번 해보면 나만의 기준이 생기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궁금하다. 제조처럼 딱 떨어지는 단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기준으로 삼는 가격은 도대체 어떻게 매겨지는 걸까? 그러다가 김바비의 바비위키 ‘대기업 로고에 가치를 매기는 기준(펜타그램 편)’을 보게 되었다.
로고의 가격은 결국 의뢰한 기업의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시티그룹 로고 20억, 쉐이크쉑 로고는 공짜로, 세계적인 디자인이 탄생했다. 동일하게 ‘로고’라는 작업이지만, 디자인의 비용은 브랜드가 처한 여러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떤 곳은 0원에 진행되기도 하고, 어떤 곳은 몇천만 원에서 몇십억 원 사이까지 올라간다. 기준은 명확하다. 내가 동네 카페 로고를 만드는 것과 애플의 로고 리브랜딩을 맡는 것. 이 둘이 같은 가격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격의 기준’이 주식 투자와도 연결된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한 기업의 로고 디자인 의뢰를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얼마를 불러야 할까?” 고민할 때, 우리는 그 기업의 가치, 비전, 성장성, 시장 포지션 등을 본다. 반대로 정부 지원을 받아 단기 이벤트용으로 제작하는 로고라면 100만~200만 원 선에서 끝날 수도 있겠지.
기업의 입장도 같다. 대부분 한 군데만 견적을 받지 않는다. 최소 2~3군데 비교 견적을 받아보고, 가격만큼이나 포트폴리오가 큰 영향을 끼친다. 이전에 브랜딩을 맡았던 회사들이 누구나 아는 브랜드라면 신뢰도가 바로 올라가고, 설득도 훨씬 빨라진다.
이런 구조가 주식 투자와 굉장히 닮아 있다. 내가 어떤 기업에 투자하려 할 때도 그 기업이 괜찮은 회사인지, 시장성은 있는지, 실제 매출이 나는지, 부채는 적정한지, 대표는 믿을 만한 사람인지 등을 꼼꼼하게 따져본다. 디자이너로서 그 기업에 견적을 제시하는 일은, 어찌 보면 그 기업의 미래 가능성과 시장성을 함께 고려하는 투자금 결정과도 비슷하다. 한 번 인연이 되어 일을 맡게 된다면 그 회사를 공부하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관심종목처럼 지켜보게 된다. 지속 가능함이 결국 장기 투자 포트폴리오가 되니까.
하지만 한국 투자자들은 여전히 장기투자보다 단기투자 성향이 강한 것 같다. 뉴스 한 줄, 전문가 유튜브 한 편에도 쉽게 흔들리는 모습을 많이 본다(느낀다). 참 쉽게 휘둘린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더더욱 중요한 건, 나만의 투자 방식을 갖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잘 알고,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건 이제 너무나 당연한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창의적인 재능과 기업을 움직이는 경영자, 이 두 가지를 같이 고려하다 보니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을 보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사람은 결국 ‘그릇’의 크기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아무리 미친 재능을 갖고 있어도 그릇이 작으면 경영은 어렵다. 창의적 재능을 뜻밖의 뻘짓에 쏟아붓는 모습을 보면, 그저 시간이 아까울 뿐이다.
나도 지금은 주식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고 싶지만, 한 종목에 묶여 있다 보니 내년까지는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 그래도 올해 주식을 시작한 것만으로도 내 인생에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회사의 마케팅 업무에서 초반부터 빠르게 움직이고 성과를 내려 애쓰는 이유는 하나다. 그 결과가 다음 단계로 가는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라는 말을 초반에 듣는 게, 차라리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Credit
글. 이정윤
사진. 이정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