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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학 Apr 29. 2019

한 달 만에 돌아가도 돼

[막차 호주 워킹홀리데이] 01




내가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시작한 도시는 케언즈이다. 호주 북동쪽에 위치한 이 곳은 청정 바다 해역인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로 유명한 관광지다. 덕분에 리조트와 호텔이 즐비해있고 수많은 식당과 상점들이 있으니 일자리는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선택한 것은 아니다. 호주는 우리 나라와 계절이 정반대라서 5월은 겨울이다. 나는 추위는 질색이었으므로 남극과 가까운 호주 남쪽도시들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러나 케언즈는 적도와 가까우니 그리 춥지 않다는 말을 믿고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정해버린 것이었다.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Great Barrier Reef



케언즈에 도착하기 전에는 도시를 여유롭게 구경하면서 천천히 레쥬메(resume, 이력서)나 돌려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웬 걸. 도시가 작아도 너무 작아서 하루만에 구경이 끝나버렸다. 물론 놀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케언즈에는 라군이라고 시티에서 운영하는 아주 유명한 무료 수영장이 있다. 바다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경치도 좋고 관광객들에게는 인기 만점이다. 하지만 수영도 할 줄 모르는 내가 라군을 즐기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맛집 투어나 하자는 심산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녀봤지만 도시가 너무 작으니 그것도 길게 할 노릇은 못 됐다.



라군 Lagoon



그러다 보니 할 일이라고는 일 구하기 뿐이었다. 나는 초기 자금을 백만원만 들고 갔다. 백만원이면은 호주돈으로 1200불. 이게 어느 정도 돈인지 가늠해볼만한 예가 있는데, 당시 내 첫 쉐어하우스 비용이다. 아주 저렴한 트윈룸에 입주해서 첫 주 90불을 내었고, 보증금 개념의 본드비로 2주치 180불을 선납했다. 첫 주에 주거비만으로 270불이 나갔으니 남은 돈은 금세 1000불 아래로 내려갔다. 게다가 처음 자리 잡으려면 이것 저것 구매해야하니 여차저차 하다가는 한 달만에 이 돈이 떨어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 안에는 일을 구해야 했다.


처음 레쥬메를 뽑았던 날이 기억난다. 호주에서는 한글 프로그램이 열리지 않으니까 워드 프로그램으로 작성한 레쥬메. 그 레쥬메를 인쇄하러 오피스 워크라는 대형 문구점으로 향했다. 



오피스 워크 Office Work



그곳에는 나와 같은 워홀러들이 있었다. 나는 벌써 경쟁자라도 만난 듯이 잔뜩 긴장했다. 스무장의 레쥬메를 뽑고, 그 레쥬메를 돌리기 위해 무작정 시내를 걸었다. 처음에는 구인광고가 붙어있는 곳만 찾았지만 그런 곳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자 호주에 오기 전, 수많은 워홀 경험담이 떠올랐다. 무작정 두드려야 한다. 그말에 심호흡을 하고, 구인광고가 없던 첫 상점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일자리를 찾고 있는데요.

-아, 어떡하죠. 지금 우리는 사람을 구하지 않는데요.

-괜찮아요. 이력서만이라도 받아주실래요?

-네. 두고가세요.


막상 첫 레쥬메를 두고 나오니 별 거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이곳엔 나와 같은 워홀러들이 수 천명 들렀다 갔을 거다. 그러니 이건 민망한 일도 아니고, 용기냈다고 대단한 일도 아니다. 



케언즈 길거리 이정표



그래도 있지, 스물 아홉 나이에 이런 식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많이 어색했다. 


대한민국이었다면 온라인 지원 하나로 모든게 처리 되었을텐데, 이곳에서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니까 온라인 지원에서는 현지인을 이길 수 없다. 하물며 이렇게 직접 이력서를 돌리러 다녀도 나는 더 영어 잘하는 워홀러들, 유럽권 워홀러들을 이길 수가 없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노력한다고 해도 내 순번은 제일 마지막이라는 거다. 방황은 더욱 깊어져갔다.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내 영어실력으로 이게 될까?

나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

한국이었다면 훨씬 더 편하게 일자리를 구했을 텐데, 뭐지?


일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은 곧 괜히 왔다는 후회로 변하고, 성격 급한 나는 급기야 호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라군Lagoon의 오후



실제로 호주에 나와보면 생각보다 사람들이 1년을 꽉 채워 있지 않는다. 몇 달만에 한국이 그리워서, 일자리가 잘 안구해져서, 몸이 안 좋아져서, 호주 생활이 안 맞아서 등등 각자의 사정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그렇다. 그들에게는 꼭 호주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으니 더더욱 그렇다. 오히려 나이가 많을수록- 이렇게 호주에 나온 것이 큰 결심이고 다신 없을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포기하지 못한다. 


떠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주변에서 군소리 들으며 나온 워홀을 '실패'라는 이름으로 남기고 싶지 않기도 하다. 채 한 달도 안 되어 돌아가면 그게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일까. 나에게 호주에 가지 말라고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밖에 더 되지 않을까.



라군 Lagoon




-언니, 일은 구했어?


그때쯤 멀리 캐나다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고 있는 동생이 내 안부를 물어왔다. 나는 아직까지 연락온 곳이 없다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내심 동생이 회초리를 때려주길 바랐다. 나약한 소리하지 말라고, 아직 시작일 뿐이라고. 그런데 동생의 답변은 의외였다.


-언니, 그런데 꼭 남아있을 필요는 없어. 사람들이 워킹 홀리데이 가면 1년을 꼭 채워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구. 사람마다 다 다른거잖아. 일찍 돌아간다고 해서 실패가 아니지 않을까. 여기가 아닌걸 깨닫고 돌아가는 거면 그거보다 좋은 경험은 없다고 생각해.


나는 그 말에 감동을 넘어서 감명을 받았다. 돌아가도 된다는 응원을 받아서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경험이니 좋게 생각하라는 말에 위안을 받기는 했지만 내가 용기를 얻은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무지개를 본 날



동생 말이 맞다. 나는 이방인이지만 떠돌이는 아니다. 그말은 즉 돌아간 곳이 있다는 것. 대한민국에서 별 볼일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적어도 외국인 노동자는 아니다. 호주에 나와보니 자국민이라는 메리트가 어떤 것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험한 일이어도 내가 하려고만 하면 할 일은 있다. 집이 없다 해도, 학력이 없다 해도, 자격증이 없다 해도. 그래도 할 일은 있다.


그날부터 묘하게 여유가 생겼다. 언제든 한국에 돌아가도 케언즈가 그립지 않게 일상을 즐겼다.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동네 식당에서 밥도 먹고, 라군을 산책했다. 그러면서도 낙천적인 마음으로 한 번 더 구직을 해보자고 레쥬메를 고치고, 또 냈다. 돌아갈 곳이 생기니 야 안 받아줄거면 말아, 이런 배짱으로 변했다고 할까. 그러니 더 뻔뻔하게 매니저까지 대면해서 일자리 있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고. 나는 일자리를 구했다.


하지만 이건 나의 이야기일 뿐. 워킹 홀리데이는 반드시 넘어야하는 산도 아니고, 반드시 1년을 채워야하는 계약도 아니도. 일종의 지하철 정기권이다. 당신은 돈을 냈고, 지하철 승강장에 왔지만, 원하지 않으면 타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돌아갈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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