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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sembler Jun 10. 2020

르완다로 떠나던 날

2019.12.18.4P.M. 인천공항 가는 버스 안

아빠는 까스러운 턱수염을 내 볼로 스치고서 포옹을 한다.




출국 당일 아침.

전날 새벽 4시까지 할 일을 마무리했던 터라, 피곤에 절어 일어나기 힘들었지만-

아빠와의 마지막 만남이기에 몸을 일으켰다.



아빠가 포옹해주는데 순간 어린 시절이 확 스쳐 지나갔다.

아빠가 뽀뽀를 해줄 때마다 볼이 까스러워 피하곤 했었지.

아빤 그런 나를 붙잡고서 수염으로 볼을 비비며 뽀뽀를 해주었고.


그게 벌써 적어도 20년 전 이야기다.

세상 예민하지만 아빠바보였던 그 딸이, 어느새 커서 아프리카로 떠난다.


무덤덤하게 딸을 보내는 듯한 아빠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까?

짐 싸기에 묻혀, 여러 일정들에 묶여

아빠 엄마와 제대로 얘기 한 번 나누지 못하고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진 않다.




엄마와 함께 간 시외버스터미널.

엄마와 헤어지기 전 마지막 포옹을 하면서부터 눈물이 났다.

엄마는 나를 안은 채로 기도해주었고, 나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터져 나온 눈물을 닦았다.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스물일곱 딸이 길을 떠난다.

나는 얼마나 성장해서 돌아올까? 어떤 모습이 되어 다시 한국 땅을 밟을까?


엄청난 사명감 없이, 엄청난 기대감이나 설렘도 없이 떠나는 길.

이상하다. 왜 이러지?

좋은 모습으로, 더 나은 나로 돌아오고 싶다.




엄마와 헤어지고 인천공항행 버스에 탑승하자마자 할머니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내가 가는 것을 깜빡했다며, 내가 가는 것이 섭섭하다셨다고.

할머니와 통화를 하면 울음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전화를 미룰까 했지만,

할머니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 더 싫어 바로 전화를 드렸다.


버스 안이라 조용조용하게 통화를 함에도 다 알아들으시는 우리 할머니.

귀가 얼마나 밝으신지, 수다를 떨 때마다 즐거운 우리 할머니와의 통화:)


할머니는 내게 언제든 힘들면 돌아오라 했다.

나는 할머니에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색칠 열심히 하며 건강히 잘 계시라 했다.




이렇게 나는 공항으로 간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

이제 나는, 새로운 시작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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