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5. 꼬마도마뱀과의 짧은 동거, 미안..
그 녀석과의 동침
동침 1일째.
이사 온 첫 날, 샤워하기 위해 화장실 문을 연 순간, 마주쳤다, 그 녀석과.
화장실 샤워부스에 딱 달라붙어 있는 조그마한 생물체, 도.마.뱀.
새끼 도마뱀인지, 원래 크기가 작은 건지, 내 새끼손가락만한 크기에 연한 줄무늬를 가진 그 녀석은,
날 보더니 움직이지 않고 죽은 척을 했다.
왜 하필 개미 한 마리 죽이면서도 온갖 난리를 떠는 내게 온 걸까, 너란 녀석.
바퀴벌레가 아님에 감사하며, 하지만 쉽게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그 녀석과 대립했다.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샤워를 해야 되니 용기 내어 샤워기로 물을 뿌렸는데,
아니 웬 걸. 이렇게나 빠르다니!
그 녀석은 물을 피해 빠르게 벽을 타고 올라갔다.
안되겠어!!!!
..니가 먼저 자리 잡고 살았으니, 오늘은 내가 피해줄게.
결국 나는, 큰 방의 화장실을 두고서 작은 방에 가서 씻고 잠이 들었다.
동침 2일째.
다음 날, 아침에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그 녀석과 또 인사.
“Good morning!” 아니다. “Mwaramutse!”
이번에는 구석에 숨어서 없는 척을 하고 있다.
다 보인다, 이놈아ㅠㅠㅠ
동침 3일째.
새벽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불을 켰는데, 내 이민가방 위에 올라 타있는 녀석.
3일 만에 그 녀석은 화장실에서 내 침실로, 자리를 거주지를 옮긴 것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작은 생물들을 잘 발견하는 걸까....ㅠㅠ
그래도 도마뱀은 파리나 모기를 다 잡아먹어 준다니,
온갖 벌레들을 잡아먹어주길 바라며 내 침실에 돌아다니도록 그냥 뒀다.
어떤 때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리나케 도망가는 뒤꽁무니를 보기도 했고,
어떤 때는 벽을 따라 빠르게 기어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동침 3일째 밤.
거실에서 노트북 작업을 하다가, 할 일이 생각나 몸을 일으키기 위해 뒤를 돌아봤는데
이제는 화장실에서 침실로, 침실에서 거실로 진출한 녀석.
자기도 왜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모르겠다는 듯, 정신없이 빠르게 기어온다.
으아, 이젠 안 되겠어.
바깥에 대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 청년을 불렀다.
“저것 좀 잡아줘ㅠㅠ 걔 엄청 빨라..”
르완다 사람들은 바퀴벌레도 해롭게 생각하지 않아 죽이지 않고 둔다고 들었기에,
그 녀석을 양 손으로 꼭 잡아 바깥 풀숲에 놓아주는 상상을 하며.
그 청년은 뭔가를 들고 오겠다며 바깥으로 다시 나갔다.
‘빗자루일까?’ 생각하며 그를 기다렸지만,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나무 꼬챙이 2개.
OMG
내가 상황을 이해할 겨를 따윈 없었다.
이내 그는 그 막대기로 그 녀석을,
콕..찔러버렸다.
뒤에 서서 바라보던 나는,
잘린 꼬리와 몸통이 따로따로 꿈틀대는 것을 보고는 기겁해서 소리를 지르고,
그 청년은 휴지를 달라 한 뒤 찔린 그 녀석을 휴지에 꽁꽁 싸서 집 밖으로 나갔다.
미안하다, 녀석아ㅠㅠ
동침 3일째에 그 녀석은 사라졌다.
개미도 벌벌 떨며 죽이는 내가 도마뱀과 3일이나 같이 산 건, 아주 놀라운 일.
미안해, 하지만 매번 마주칠 때마다 놀라기엔 내 기력이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