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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일의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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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 May 01. 2024

Prologue | 내일의 빵

한남동 릴리언


아시타노 팡

明日のパン


일본 어느 예능 TV프로그램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길거리 인터뷰를 했는데. 모든 장바구니 안에는 ‘아시타노 팡’(내일의 빵)이란 게 있었다고 한다. 그건 외국에서 들여온 것도 아니었고 유명 빵집의 빵도 아니었다. 그저 밥도 설거지도 하기 싫은 날 ‘나’를 위해, 냉동고에 넣어두는 오늘의 빵이었다. 그래서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 굽기만 하면 나와 가족을 위한 든든한 한 끼가 되는 ‘내일의 빵’.


우리에게도 내일을 위한 빵이 필요하지 않을까?


12년 차 과장. 조직이 큰 탓에 딱히 위도 아래도 아닌 중간 관리자지만, 이제 곧 더 무거워질 책임과 위아래로부터 오는 관계의 어려움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바로 위 팀장님만 봐도 그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그러니 미리 지금 이 애매모호한 시기에만 나오는 유연한 생각과 성찰들로 '내일의 빵'을 준비해보려고 한다.




릴리언

Lillion


한남동에서 한남오거리를 잇는 좁다란 골목길에 위치한 '릴리언'은 애매한 것들 투성이다. 우선 단독주택을 개조해 빵집보다는 가정집 같은 외관이 그렇고, 브런치 카페처럼 탁 트인 내부 공간도 그렇다. (구석구석 인테리어 소품도 예뻐서 볼거리도 많다.) 또 메뉴는 대형 프랜차이즈처럼 다양한데 구성은 동네 빵집처럼 알차다. 이렇게 ‘릴리언’의 매력은 애매모함에서 온다. 동네 빵집처럼 정성스럽고, 한편으로는 브런치 카페처럼 세련됐고, 맛도 있는 곳. 그리고 모두가 그걸 느끼는지 평일은 이른 점심시간부터 자리가 차고,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이 북적인다.



빵 이야기로 돌아와서 여러 가지 메뉴를 먹어봤는데. 우선 바게트나 파니니 같은 식사빵이 담백한고 맛있어서 샌드위치류를 추천하고 싶다. 거기에 오늘의 수프를 추가해도 좋다. 까눌레나 파이 같은 디저트 메뉴도 있으니 상황에 따라 디저트까지 먹어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메뉴는 반쪽 짜리 바게트에 버터와 사과 컴포트(과일 조각이 씹히는)를 바른 '릴리언 샌드'인데, 촉촉한 속에 버터의 진하고 부드러운 맛이 고소하고 마지막에는 사과 컴포트의 상큼함이 더해져 손을 멈출 수 없는 맛이었다.





내일을

준비하는 마음



10년 차 이후로 회사는 더 이상 일만 하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일 때문에 느끼던 어려움은 언젠가부터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바뀌었다. 그게 상사와의 텐션일 때도 있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나 후배 문제일 때도 있었다. 이전보다 업무의 자율성은 커졌지만, 그만큼 같이 일하는 후배들이 번아웃 되지 않도록 멘탈 관리의 역할도 더해졌다. 이런 역할들이 아직까지는 낯설고 어렵다. 그래서 잘 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나만의 기준과 원칙을 세우는 중이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길을 걷고 싶다. 상황이 허락된다면 아이가 클 때까지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니 지금의 경험과 성찰들이 미래의 어느 날 나에게 ’내일의 빵‘이 되어 수많은 문제의 실마리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오늘도 좋은 점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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