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슥슥 Oct 08. 2023

이곳으로 휴가를 떠난 후, 회사를 그만두었다.



작년 9월 8일. 힌나노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맑고 쾌청했다. 사나웠던 적이 없다는 듯이 아주 푸르고 깨끗했다. 여행에 게으른 내가 고심 끝에 예약한 북스테이 숙박마저 취소하게 만들었던 태풍이었는데 나를 놀리듯 하루 만에 기상 정보가 달라진 것이다. 날씨 변덕에 황당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휴가 이튿날부터 맑아진 하늘은 서둘러 다음 여행지를 정하라고 나를 채근했다. 그렇게 떠올린 뜻밖의 장소는 ‘학교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졸업한 지 10년이 넘은 대학교의 도서관. 왜 이곳을 떠올렸는지는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조용하고, 책이 있고, 가능한 편안한 곳이면 어디든 괜찮을 것 같았는데 공교롭게도 모교의 도서관이 이 모든 조건에 부합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13년 만에 등굣길에 나섰다. 백팩을 멘 학생의 차림으로 말이다. 어울리거나 말거나 학교에 가까워질수록 부푸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정문을 통과했을 땐 묘하고 벅찬 기분까지 들었다. 기쁘면서도 뭉클한 느낌. 아니나 다를까. 캠퍼스 내부에 들어서니 감정이 더욱 요동쳤다. 교정 벤치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재학생들에게 주책맞게 인사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코끝이 찡한 반가움이었다. 회상에 푹 잠긴 졸업생을 반기듯 교정 또한 아름다웠다. 저 멀리서 힘을 잃은 매미소리가 운치 있게 들려왔고 가을이 오고 있는 소리는 볼을 간지럽히는 바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띡 ㅡ 

미리 받아 놓은 모바일 열람증으로 무사히 도서관 출입을 하고 정면을 바라보는데, 우습게도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그 자리 그대로 멈춰 서고 말았다. 내부가 그야말로 '새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흔적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완전히 달라진 낯선 장소. 그 모습은 마치 번화가에 막 생긴 북 카페를 연상시켰다. 모던하고 트렌디한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군데군데 통유리의 세미나실과 미팅 룸까지 마련된 모습.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이런 뜻이구나 싶었다. 고동빛의 나무 테이블에 앉아 종이 인쇄물로 시험 공부하던 게 생생한데, 요즘 후배들은 콘센트가 내장되어 있는 책상에 앉아 아이패드와 맥북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격세지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탈바꿈한 그곳을 하루 종일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아주 오랜만에 채워지는 감각을 느꼈다. 어느 여행지에서도 받았던 적 없는 또렷한 감정이었다. ‘좋다’라는 표현보다 ‘살아 있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한 기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작은 신경까지 그곳의 에너지를 흡수해 팽팽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폐관 시간이 되어 그곳을 빠져나온 후에도 한동안 그 주변을 맴돌았다. 다소 지나친 감정이라는 것을 나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면서도 거듭 떠오르는 이런 의문들에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왜 이토록 내게 충만함을 주는 걸까.’ 
‘왜 계속 이곳에 머무르고 싶은 걸까.’  





답을 찾기 위해 망각의 언덕에서 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옛 기억을 끄집어 올려보았다. 내가 이곳에서 행복했던 순간이 과연 언제였는지 되짚어 본 것이다. 그에 대한 단서는 의외로 사소한 곳에 있었다. 오로지 나의 취향과 관심사에 근거해 비실용적인 교양 수업을 들었던 때, 빈 강의실에서 대학내일 잡지를 읽으며 다이어리에 필사하던 때, 그리고 공강 시간 때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순간들까지. 시간을 거꾸로 돌리다 보니 희미했던 기억 몇 가지도 되살아났다. 영상 제작 전공 수업이 재미있어 혼자 공모전을 준비해 밤새워 편집을 했었던 경험과 텍스트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일이 즐거워 조별 발표에서 파워포인트 작성을 거의 도맡아 담당했던 경험까지. 그땐 왜 무심히 흘려버렸을까. 평범한 대학생활의 단면이라 치부했던 이 순간들이 사실은 홀로 사색하며 무언가 만들어내길 좋아했던 나의 내향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결국 나에게 학교는 흥미 가는 대로 배움을 누린 공간이자 주체적으로 움직였던 최초의 장소였던 셈이다. 한마디로 가장 나다울 수 있었던 공간이었던 것그제야 내가 직장인 자아로 살면서 놓치고 있는 게 보였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눈앞에 닥친 일만 하다 간과했던 그것은, 내 안엔 없다고 함부로 단정했던 주체성이란 기질이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때 우주의 기원 같은 거대한 형이상학적 문제에서 시작하지 마라. 대신 당신의 삶의 경험에서 시작하라.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시작하라. 최근 경험에 대해 잠시 성찰하라. 어떤 경험이 다른 경험보다 더 의미 있었는가. 그리고 어떤 경험이 별로 의미가 없었는가. 지금의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나면 미래에 그런 경험을 더 많이 보장하는 선택을 하는 법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학교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후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회사를 나왔다. 안전한 퇴사를 위해 여러 시행착오를 겪다 모교를 방문한 뒤 불쑥 퇴사를 결정한 나를 누군가는 감정적이라 비난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태풍이 지난 후 떠난 그 여행이 결정적인 계기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당시 읽은 저 책의 문장처럼 나에겐 다른 경험들과 구별되는 선명하고도 의미 있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타성에 젖어 비실거리던 일상에 생기를 돋운 소중한 체험을 단순한 에피소드로 대강 마무리 짓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 순간을 변곡점으로 만들고 싶었다. 내 삶에 작은 균열이 생긴다면 그 시작점은 바로 여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아마 낙관했던 것 같다. 이제껏 걸어온 경로를 이탈하는 일이 내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더 많이 보장하는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기대는 첫 단추에서 빗나가고 만다. 퇴사 직후 불안장애를 겪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 예정) 

매거진의 이전글 부업을 포기 하고 이것부터 살펴본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