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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er Jan 21. 2018

2011년 9월

모르고싶은 여자

 13일

히코노미코리?히코노모코리?나는 히코노미코리 성향이 좀 있나바ㅋㅋㅋㅋ

스무살땐 친구들이랑 있는게 즐거워서다같이 왁자지껄 술자리도 좋아하고소주 삼겹살 한잔 노래방 즐겁게 다 좋아하는 줄 알았다

아니..야

난 술도 좋아하는 친구랑 집 근처에서 한병가지고오래오래 밤 늦어갈 때까지 질겅질겅 마시는 게 좋고웬만하면 집이랑 먼곳에서 술마시는 것도 안 땡겨

잘 모르는 사람들이랑 친해지길 바래삼겹살 소주 코스 회식은 질색이얌 애초에 난 그런걸로 못친해져하다못해 명절도 온가족이 다 모여앉아 왁자지껄한게 싫어서할머니랑 할아버지랑 오래오래 얘기할 수 있는 시간대가 좋다 

그래도 오래된 친구들이 부르는 곳이라면 좋아 ㅋㅋㅋㅋㅋ때론 보쌈 삼겹살 족발에 소주일지언정


14일

겸손한 삶

말하기를 두려하진않지만

듣기를 즐거워하는 삶

두딩딩 내 친구와 광화문에서 보름달보는 삶

서 친구와 마주보고있는 삶

맘쓰이는일있을때초콜릿 먹지말고 는 삶

사랑받기보다 사랑주는 삶

비교하지 않는 삶

나를 믿

흔들리지 않되 귀기울여듣는 삶

눈마주치면 웃어주는 삶

그대신 좋은 어른이 되자 중얼거리는 삶

댓글 4

그런 (하트) 2011/09/14 06:52

야근수당 받는삶^^* 2011/09/14 17:35

밥먹어조~~~ 2011/09/14 08:10

ㅋㅋㅋㅋ하스왐 친구얌ㅜ.ㅜ 2011/09/14 17:34


17일

혼자 산다는 게 유독 느껴지는 시간이 있다. 단체로 술을 마신다거나, 회식을 간다던가 하는 자리에서 분명히 웃고 떠들다 집에 들어오는 시간. 함께 지내던 친구에게 거리감을 느낄 때도 있다. 몇마디 주고받은 말이 상처가 되면 냅다 지지않으려고 상처주는 말을 하는 관계도 있다.

그렇지만 실망하고 관계를 닫아버리지 말자. 자존심들이 섞인 우열감에 공격도 상처도 주고받다 관계를 그만두지 말자.

조금만 더 기다리면- 뾰족 뾰족 날 서 있던 관계는 인내와 양보를 먹고 따스해져 난 또 금새 위로받아 생글 생글 웃고 있다.


어제 왜 안옴 ??? 맨날 없어~!!!ㅋㅋ 2011/09/16 21:50

바보 더 일찍 온거야 2011/09/17 00:02

ㅋㅋㅋㅋ좀보자  이러다 졸업하겠네 2011/09/17 07:08

아 그런거임?? 근데 내가아저씨임?? 언제볼까?? 지가바쁘면서ㅋ 2011/09/17 23:59

내일이나 언제쯤 별다방이나 한번 가자꾸나ㅋㅋㅋ 2011/09/18 03:42

별다방?? 그건 모하는데임 ??? 둘만의 비밀의 방임 ??? ㅋㅋㅋ 2011/09/18 20:40

ㅋㅋㅋㅋㅋ아노ㅏ 스타벅스자나 ㅋㅋㅋ아닌가-***

많이 수정. 난 왜 저 나이에 중이병이 왔지ㅠ 싶지만 20대 초반에 대부분 개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듯하다.


다들 토요일밤이라고 차려입고 클럽가? 얼굴볼개져서 연인이랑 팔짱끼고 난 그사이 집에 돌어가는 길 파리크로와상들려서 당근케잌을 샀


ㅋㅋㅋㅋ과제해야지 누가클럽을가ㅋㅋ 당근케익맛잇냐?? 2011/09/17 09:56

ㅋㅋㅋㅋ아직안먹었오ㅋㅋㅋㅋㅋ슈크림만 찍어먹었다ㅋㅋㅋㅋㅋㅋ 2011/09/17 14:59

아나도 팔짱끼고싶다....ㅋㅋㅋ 2011/09/17 23:58

에휴 2011/10/26 11:16


18일

왜? 난 요새 자꾸 내가 노화가 시작한듯한 기분이 든다ㅋㅋ

소화력도 떨아지고 피부도 쭈그래지고 세포의 노화가 이뤄지는 느낌? 근데 묘하게 그 기분이 내심 너무좋다 이야 난 사람들이 다 좋아 아하하 막무가내 몇년이 떠오를 때도 있지만 음몰라 아무튼 그렇다 온 세상이 내꺼야 이런기분은 이제 아니고


20일

때때로 (사람들은)해본 다음 투덜거린다. 아 괜히 했어, 하나 안 하나 똑같애. 과거 하고싶었던 걸 이루기 위해 안달나 있었던 시간을 아까워한다.

시의 화자도 시대만 다를 뿐, 흐릿흐릿 여산의 안개비와, 굽이치는 강물의 흐름을 갈망하고 있었는데, 막상 보고 돌아오니 별 다를 게 없다.  절경이 일생일대의 소망이 되기엔 평범한 도시인간 들에게 한때 간절한 소망은 대학입시 정도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정도.

 입시생 때 ‘대학에 가면’이란 망상을 했다. 대학에 가면 파마를 하고, 하이힐을 신어야지, 밤새 술잔을 기울이면서 어스름한 새벽까지 이야기를 해야지. 대학에 갔는데 변한 건 없었다. 험을 보기 위한 공부, 학점이 안 나오면 스트레스, 마음이 맞는 친구는 만나기 힘들었다.

누군가에 대한 좋은 감정도 마찬가지. 한 사람을 좋아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그땐 왜 그랬나 싶다. 누군가에게 빠져 사리분별 못하던 과거의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러워질 때도.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 물결을 일으킨다. 돌이 호수에 가한 충동은 호수의 물결을 위아래로 출렁였다. 돌멩이는 내 바램이다. 호수의 물결이 출렁이는 시간들은 대학입시를 위해 참던 시간들, 설레는 맘에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시간들이다. 출렁이던 시간들은 때로 날 아프게도 하고, 설레게도 했다. 그리고 수십번의 골과 마루를 거쳐 다시 출발했던 그곳에 돌아왔다.

 

사건들과 사람들에 설렜다가 힘들어 할지라도 나에게 그것들은 지나가기 마련이었어서 난 또 같은 위치에 서있다.(많이 수정했다) 과장해 빈손으로 태어난 빈손으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욕심부리지않고 또 노력하지않고 있어야 할까?

한 때 생각하기에 인생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다(수정). 인류, 지구와 우주 속에 점보다도 작은내가 많은 걸 바라고 얻기 위해 슬펐다 설레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쿨해지고 무던해지는 내가 더욱 보잘것없이 느껴져 다시금 슬퍼졌다. 그래서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는데, 그렇다고 특별한 깨달음이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할 수 없다. 오히려 우주 안의 작고작은 내가 태어난 이유가 없으니까 더 이유가 있듯이 살아가야 되는 거다.

- 문학적 상상력과 논리 이남호교수님 수업 과제, 주제: 가본자와 안 가본자는 어떻게 다른가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이여.

가보지 못하였을 땐 평생의 한이었는데가서

보고 돌아오니 별다른 것이 없네.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이여.

소동파, 여산연우

요즘 더 좋네ㅎㅎ 2011/09/20 00:27


꽤 많이 수정. 문장도 정서도 비웃다 (비)울고싶어졌다 ㅋㅋ 아, 부끄럽고 부끄러워 문장가가 아닌 나는 더이상의 글은 남기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25일

오만한 사람! 자신감과 오만함이 헷갈린다, 요새 사람들은 참 자기 포장을 잘 해서 또 워낙 캐릭터들이 입체파다 보니, 겸손함과 자신감과 오만방자함을 이젠 구별조차 하지 못하겠다. 내 눈앞에 있는 누군가(다른 말로 거울 앞을 바라보면 서 있는 나 자신의 행동을 보고 있자면,)가 오만한지 아닌지 알 노릇이 없다.

 스스로 나는 겸손하다, 라고 생각하는데도 내면을 들여다 보면, 내 자신 안에 오만함이 오글오글 웅크리고 앉아있 깜짝깜짝.

 어떤 사람이 정말 겸손하고 자신감넘치는 사람일까 쌍안경을 쓰고 한참을 둘러봐도 참 찾을 수가 없다. 특히나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 미덕인 요즘은 더더욱 그렇다. 자신있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자신감과 오만함은 정말 종이 한장 차이? 똑바로 보면 자신감, 뒤집어 보면 오만함, 이렇게?  오만한 자와 자신감과 견손함을 겸비한 자는 원래 그렇게 의식이 고루고루 섞여있는 건가?

 그럴바에야 차라리, 겸손함? 오만함? 관심없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야...같이, 자의식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반해버리는 게 낫겠다.

 그러다 어젠가 그젠가 문득, 혼자 비오는 길을 걷다, 곰곰곰 생각해봤다. 나 겸손한가? 나 요새 좀 애가 오만하고 안하무인 아니야?

 어떤 사람이 겸손한가, 어떻게 해야 겸손한 사람이 되지? 겸손한 자신감과 오만함은 정말 종이 한장 차이일까?   마냥 하늘높은 줄 모르고 떠드는 것이 오만방자함의 기준이 되진 않아,  고작, 나보다 얼마든지 잘나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달아 겸손하다 할 수 없다,

  진정 겸손한 사람은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을 구분짓지 않아, (동시에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느끼고)

  나의 편협한 기준을 내세워 잘나고 본받아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 짓는 것 자체가 겸손과는 거리가 멀다,  내 기준으로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을 구분하고,   나아가 못난 사람을 인도하려 들지 말것,  못난 사람이 어디있나, 다 내가 스스로 씌운 색안경 때문이다. 하다못해 거울앞에 서 있는 스스로에게도 배울점이 얼마나 많은데,  너가 배워야 할 점이 없는 사람이 없을리 없다.  

  겸손은 모든 사람을 스승삼아 좋은점을 먼저 보고 배우려는 자세. 겸손, 미덕이다, 진짜.   성현들의 말씀은 틀린 것이 하나 없다.

  ***와.. 진짜 마음이 예뻐지는 건 얼굴이 예뻐지는것보다 어렵네...얼굴이 예뻐지는 것도 어려운데...


25일

하나만. 자정에 근접해지는 야밤, (안암의 목요일밤같은 날들이 요일불문...) 벌건 대낮엔 자신만만한 사람들로 메어졌을 큰길가가,  술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자는 양복쟁이 취객들과, LG25시 패밀리마트의 앳된 새벽 알바생들로 이뤄진다. 나는 그 가운데에 이질적인 존재다. 추리닝, 삼선쓰레빠짝 끌고 총총 산보나온 이질적인 존재. 그러다 보면 별별 생각이 다 난다. 해야할 생각들은 없어지고 순 잡념들만.

 그 중 한 개다,  지방에서 서울로 학교를 온 사람들도 많고, 한국에서 해외로 유학가버린 사람들도 많고, 또 이사를 가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생활의 터전을 옮기고.

 비교적 변화없는 삶을 이어왔던 나에게도 공간의 변화있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의든 타의든 공간의 변화쯤은 자연스레 경험한다.  새로운 공간에선 새로운 이미지, 뉴 캐릭터를 정립한다.

 철딱서니없는 사람이 어느 공간에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기도 한다. 어딘가의 사람들에겐 비밀얘기 들어주는 통로였다가, 어딘가에선 루머의 근원지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또 누군가에겐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타는 외로운 애였는데, 반대로 그룹의 중심에앉아 있기도 하다.

 취한 위치와 공간에 따라 변하는 겉모습들이 각기 다르다고 해서,  본질이 변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단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한 곳에 머무르길 꺼리는 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변해가는 주변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지는 새로운 가면! 나는 그게 좋다.   가면이 내면을 늘 꽁꽁 감추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가면이 내면의 실루엣을 보여줄거다.

  그러다 어느 공간에 이르러, 만족할만한 가면을 찾으면 그 공간에 뿌리를 뻗어내려가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을 만나 지나쳐가다, 마음에 드는 나를 비춰주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을 때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게 되는 게아닐까? 혹은, 수많은 공간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나쳐, 다시 어느 장소로 되돌아가는 게 아닐까?


25일

기다리면 돼

  유독 혼자 산다는 게 몸소 느껴지는 시간이 있다. 단체로 술을 마신다거나, 회식을 간다던가 하는 자리에서 분명히 웃고 떠들다 집에 들어오는데 울고싶을 때가 있다. 늘 함께 지내던 친구에게 거리감을 느낄 때가 있다. 몇마디 주고받은 말이 나에게 상처가 될 때가 있고, 그래서 상처주는 말을 하는 만남이 있다.

  그렇지만, 미리 실망하고 관계를 닫아버리지 말자. 자존심을 내세운 우열의식 속에서 서로를 공격하고 상처주고 상처받는 관계에 쉽게 실망하지 말자.

  조금만 더 기다리면, 상처받아 상처주기 위해 안달나 있는 가 했던 나는 그사이 따스해진 서로의 관계에 위로받아 생글생글 웃고 있다. 가식적이고 피상적인 관계는 어느새 따스하고 진심섞인 만남이 되어 있다.


25일 01시

웬만해선 영화관에서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나지만, 딱 한번 영화를 보고 펑펑 운 기억이 있다. 실미도. 너무 울어 숨을 헉헉거리고 호흡조절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의 그 장면은 다같이 기차안에서 폭파하는 감동의 마지막 장면도 아니었고, 육지로 나가는 선임이 불안을 감지하곤 후임에게 따스한 말을 건네주는 어두운 해안가도 아니었다.


고문에 견디지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동료의 머리통을 괴로워하며 달려나가 철퇴로 후려치는 장면이었다.  잔인했다. 눈물보다 눈을 가릴 씬이었는데 이 왜 그렇게 내슬픔을 동요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저밑에서 감정이 자꾸 올라와 영화가 끝나고 한참울다가 엄마한테 혼이 났다. 지금도 실미도는 나에게 그런 영화다. 어두운 바닷가 철퇴를 들고 질주하는 남자의 괴로움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수정. 실미도는 십년넘게 지난 지금도 생생한 몇 안되는 영화다. 생각해보면 당시의 내가 느꼈던 동요는 지금의 나에 이르는데 영향을 미쳤다. 장면은 군의 혹독하고 비인간적인 훈련을 못이긴 탈영병들이 간호업무를 맡던 이들을 강간하고 뒤따라온 상부 군인에 의해 두 손발이 묶여 고문당하는 바닷가였다. 이때 이들과 함께 훈련받은 설경구역의 군인이 달려와 오열하며 그들을 철퇴로 내려쳤다.  


냉정한 나의 젊은 엄미는 말했다. 감당하지 못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매체는 보는 게 아니야.


25일 15시

이상하지, 한 때 난 정말 안 울었는데. 슬픈 영화, 슬픈 책, 흑흑대며 궁상떨게 하는 모든 매체들을 싫어하는 조금은 가증스러운, 미운 구석이있는 애어른이었는데, 요즘은 거대한 몸집이 되어버린 애보다 어른인 나는 너무 쉽게 울음이 난다.

함께 영화를 관람한 엄마그만 좀 울라고 길거리에서 폭풍같이 낸 다음부터는 동요할 거 같은 영화는 꼭 혼자 보러 가게 됐다.

  영화 엔딩 장면이 올라가며, 배경음악 속에서, 이상하게도 그 영화관의 아무런 사람들도 영화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틈이야!

  뭐가 그렇게 슬펐을까. 470 타고 오면서 왜 울었을까 생각했다.  사라가 수용소에서 경찰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름을 묻는 노부부에게 제이 아닌 다른 이름을 얘기했다.

 왜 울까. 그런데 내 울음은 의미가 있나. 얼룩진 역사를 대중매체를 시청함으로 개개인의 삶에 주는 의미. 굳이 되 짚어봐야 하는 이유가 뭘까. 하여 영화 시청자의 동요된 감성이 사회에 주는 것은 뭘까.   


사라의 열쇠! 원형운동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불안함이 감돌고 사이 빨간 모자를 쓴 여자아이가 눈에 밟히는,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30일

졸업사진 찍는 날. 이른 아침,뒤뚱거리게 하는 구두,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는 참빗으로 잔머리 빠져나간 것 없나 몇번씩 눌러앉히고 얼굴에 송송 분칠하러 뛰어가면서 나는 다리위의 쌩생 자동차들보다 더 빠르 뛰어들어가고 싶은 사람이 되는 상상을 했다.

뛰어들어가는 상상을 한 것도 아니야, 뛰어들어가고 싶은 충동도 아니야, 뛰어들어가고 싶은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하고 상상을 한 것이다. 아주 조심스럽게.


30일 20시

졸업사진 찍기 전날, 화장품, 구두, 원피스,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수업끝나자마자 찾아간 광화문의 사무실 생각이 난다. 주렁주렁 내려오는 식물들 사이로 보이던 얼굴보다, 음성보다, 모락모락 열올라오던 녹차물의 열기보다, 여태껏 선명한 것들은

단한번의 만남이었지만 아저씨가 나에게 말해준 사소한, 어쩌면 예의상, 그것도 아니라면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라서, 조금은 후한 칭찬들이었다.

칭찬을 받은 사람이 칭찬이 스스로에게 과하다는 생각이 들 땐 어떻게 하지?

대부분의 내가 받은 칭찬에 늘 부정해왔다. 나의 시간에 따라 부정하는 이유는 전부 다르다.

아주 아주 세상에서 나만 잘난 것 같던 어린 시절엔 받는 칭찬에 언제나 손사레를 치며 사양했다.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 때문이었다. 어쩜 칭찬에 겸손해할수록, 아니 겸손한 척 할수록 사람들은 나에게 더 많은 칭찬을 주니까! 당연히 칭찬은 내가 받아야 할 것, 이라고 생각하면서 얌전히 고개를 숙였던 나는 내숭백단의 오만하고 헛똑똑이 꼬마애였다.

열네살 땐 칭찬을 부담스러워했다. 칭찬의 내용과 상관없이 내가 누구 눈에 든다는 사실, 누가 나를 마음에 들어한다는 사실에 몸둘바를 몰랐다. 나를 좋아해서, 내가 마음에 들어서 나랑 친해졌는데, 내가 싫어지면 어떡하지? 하고 조금은 무서웠던 것 같기도 하다.

열일곱살 땐 타인의 칭찬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어느 누가 나에게 주는 칭찬에 내가 의미를 부여하고 겸손해하고 몸둘바를 몰라 할 필요가 없었다. 무슨 상관이야? 저 선생님이 날 좋아하든 말든, 실망하든 말든 난 언제나 여기 있는데. 스스로 칭찬에 의미를 부여하고 내가 그 칭찬보다 모자란 사람일까 두려워 할 필요가 없어지자 칭찬에 대한 내 반응도 가벼워졌다. 칭찬을 들으면 겸손해하는 것보다 활짝 웃으면서 아 정말이요? 감사합니다 하고 웃었다. 물론 그 당시 트렌드도 그랬다.

스무살 땐 더 이상 칭찬듣지 않았다. 칭찬받을 일도 없었고, 칭찬받기 위해 연연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칭찬이란 단어에서 무뎌져갔다.

 

칭찬을 부정하지 않은 경험을 처음으로 했다. 동시에 칭찬이 나에게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으면서도.이유는 칭찬이면의 것을 볼 수 있었으니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깜짝 놀랐어. 우연인 것 같아요, 저는 딱히 대단한 뜻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에요.

칭찬에 걸맞지 않다고, 그 칭찬은 나에게 너무 과대평가된 것이라고, 그렇지만 나는 칭찬에 너무나 감사하다고.

아 어려워...ㅠ.ㅠ.ㅠ 아직 이야기조차안했는데 어떻게 풀어야할지 모르겠다

요샌 글쓰는것도 말하는것도 졸사도 입고 나갈 옷을 정하는 것도 너무어려워. 사람만나는 게 제일 어려워. 숙제해야할것도 내일모레 사는 것도 너무어려워. 깔깔거리는 것도 어렵고 문자 하나 보내는 것도 너무 어려워.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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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사진을 찍었다. 찍기 싫었지만 참고 찍기로한 결정. 가면갈수록 신나지는 사람들 기분에 더 다운되기만 했다.

하나같이 손을 허리에 얹고 골반을 비틀고 다리를 앞으로 내미는 에쓰라인이 산다며 프로필포즈를 요구하는 사진가님들도  고까웠다. 왜 그러지. 난 이런 내가 맘에 안든다.


그 시간의 언저리에 마음먹고 기분이 들쭉날쭉했던 당시의 내가 맘에 안들었던 게 사실 오늘내일은 아니었다. 막상 그 증거물을 읽으니 아니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기함하였다... ㅠ. 이 일기의 제목을 <모르고 싶은 여자> 정도로 하고싶은 마음이다. ㅋㅋㅋㅋㅋ수고해라 스물셋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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