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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er Aug 24. 2019

8월 2

1. 나랑 같이 연구실을 쓰는 E는 나보다 딱 한 달 차이로 들어왔다. 기본적으로 명랑하고 밝은 애라 인스티튜트에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큰소리로 웃으면서 인사하는데 나는 그게 참 신기하고 또 배워야 할 점 같다. 상냥한 친구라 혼자 있는 내가 외로울까봐 금요일이면 주말에 뭐해? 하는 거 없으면 우리랑 같이 놀래? 라고 물어봐준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아니 나 계획이 있어(나랑) 무드가 아니고 피로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내 플랜 같은 대답을 부루퉁한 표정으로 한다. 변명 아니고 정말로 진심인데 서운해할까봐 그 와중에 신경(만)쓰인다. 
그러길 한 달 반, 그는 오늘도 물어주었고 - 주말에 뭐해? 우리 하이킹 갈건데 같이 가자! - 나는 오늘도 거절했다. 
얘가 지난 몇 주동안 캠핑을 가고 하이킹을 가고 바비큐를 가고 영화를 보고 야외 수영장에 가고 카누타러 가는 동안 나는 클라이밍을 가거나 클라이밍을 가야되서 쉬어야 하거나 클라이밍을 했기 때문에 쉬어야 하거나 그냥 피곤해서 쉬어야 했는데 그 대답들을 몇주 째 들은 오늘 드디어 하나도 서운해하지 않고 박장대소했다. 너는 클라이밍밖에 없냐고 똑같은 거 하면 지겹지않냐고ㅋㅋ나는 진지하게 말해주었다. 어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고ㅋㅋ사실은 그것만으로도 벅찬데ㅋㅋㅋㅋ실력도 안 늘고 근육도 없고 정체기 n년차...  

우리는 이렇게 알아가고 있다. 유럽에 갓 온 그는 컬쳐 디프런스에 대해 종종 말하지만 내가 알게된 것은 그들에게 있어 너에게 있어 또한 그들 혹은 네가 바라볼 나에게 있어 컬쳐 디프런스 따위 없다. 코리안 떼고 아시안 떼고 여자애 떼고 사실 조금 이상한 날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주기 시작하는 에싼에게 감사하다ㅋ.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만큼 나도 사실은 걔랑 수다를 많이 떤다. 걔야 아닐 테지만 내 기준에선 에싼은 내 수퍼바이저빼고 나랑 말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다. 자전거가 또 고장났고 내 나무는 죽어가고 어제는 인터넷이 끊겼어, 그리고 지난 주엔 나 코리안 만났다고 이런저런 일상사를 공유하다 보면 특유의 눈주름을 지으면서 너 친구도 있었냐고 크게 웃는다. ㅋㅋ. ㅇㅇ 놀랍지? 나 친구 없어보이는데 있을만큼 있음 이라고 대답해주고 왔다ㅋ.


2. 요새 나의 주 고민은 내 고무나무의 부활 여부이다. 사람이 참 신기한 게, 관심 항목이 하나 더 느니 같은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에게 함께 사는 식물이 있는지 물어본다. 고양이와 서양난을 두 개 키우고, 앞마당에 방울 토마토와 허브를 방치하고, 그리스에서 온 거북이와 함께 베란다에 허브밭이 있고, 알로에를 기르고, 물잔디를 어항에 담아놓은 애도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 지나치는 배터리 관련 인스티튜트는 평유리로 된 건물인데, 남의 집 벤쟈민이 잘 자라는 게 보인다. 저 집 애는 이파리가 많고 싱싱하네. 좋겠다, 부러웠다.


가끔은 꽃집에도 들린다. 꽃집 할머니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식물이 아닌 나에게 관심이 없다. 조금 구경해도 괜찮냐고 하면 파란 눈동자로 고럼 고럼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들어가버린다. 혼자 남은 나는 녹색녹색한 식물들에 하나씩 눈길을 준다. 꽃집 온라인 계정에서도 나무와 꽃들을 구경한다. 나무가 눈에 들어오다보니 꽃에도 눈이 간다. 자꾸 보다보니 내가 어떻게 생긴 나무들을 좋아하는지 어떤 꽃들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벤쟈민이 부활하는 데 성공하면 데려오고 싶은 애도 생겼다.


벤쟈민을 들여다보며 한 가지 알게 된 건 나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인풋과 아웃풋에 끊임없이 신경을 쓰는 데에 참으로 서툰 인간이란 것이었다. 사실 공부를 할 때도 운동을 할 때도 또한 사람을 알아갈 때도 마찬가지인데 나의 인풋에 대한 상태의 변화를 꾸준히 모니터링하는 것에 놀라울 정도로 취약하다. 결국은 밸런싱이 잘 잡혀있지 않고 극단적인 구석이 있다는 얘기다. 이걸 서른을 넘기고서야 전주인이 두고 간 나무를 말라 죽인 후에야 깨달았다는 걸 더 반성해야 된다.


사람들이 네 나무 이름이 벤쟈민이냐고 물어온다. 왜 벤쟈민이냐고도 물어온다. 학명이 고무나무 벤쟈미나다. 작명에는 그다지 센스가 없다. 블루베리는 벤쟈민과 비교도 안 되게 손이 안 간다. 이름을 부를 일이 없을 정도로 잘 자란다. 블루베리가 가지마다 베리들을 내놓을 줄 알았는데, 사실 한 6년이 지나야 겨우 몇 알 내놓는다고 한다. 플라스틱 포장된 블루베리 삼백그램에 조금 숙연해졌다. 맛있다고 입안에 텀벙 텀벙 털어놓기에는 한 식물이 몇 년이 지나고서야 겨우 몇 알 내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


3. 작년 이 즈음 받은 가장 따뜻한 말은 친구 어머니로부터의 격려와 위로였다. 어머 네 얘기들었다며 포옹해주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앗 이런 엄마가 계셨기에 내가 너랑 친구하고 싶었구나 같은 생각을 했다. 친구도 친구의 어머니도 친구의 친구들과 그리고 나에게도, 내가 그 날 받은 따뜻한 마음들만큼 안녕한 여름을 보내었기를 기도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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