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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씨 Oct 24. 2018

3. 그녀와 아들과 며느리와 손주들

세월에 흩어지기 전에 뱉어보는 나의 속내

그녀는 A라는 지역에서 B라는 지역으로 시집을 왔다. 과거 흔히 그러했듯이.

옆동네로만 이사를 가도 아는 사람이 없어 힘든 마당에 그녀는 맘 붙일 곳이 없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왕 인연을 맺어 결혼한 것이니 남편이라도 살갑고 다정했으면 좀 좋을까. 부부 사이는 변변치 못했다고 한다.

외아들을 하나 두었고 과거의 영광이 사그라들어 가세가 기울었을 때, 그녀는 서울로 왔다.

남편은 딴살림을 차렸고 혼자 힘으로 아들을 키워냈다. 아들은 결혼을 했으나 며느리와의 사이는 좋지 못했다. 이유는 많았다. 그들만이 알고 있을 여러 사건과 사연들. 내 남편도 나도 많은 것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썩 다정다감한 고부간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그녀의 인생에는 큰 재산이 없었다. 그래도 슬프지만 다행인 것은 하나뿐인 아들이 사망하여 부양의무를 가진 가족이 없어 생활수급자 지정에 성공했다는 점 정도였달까. 참고로 그녀의 남편은 딴살림 차렸던 여인은 어쩌고 결국 병든 몸으로 돌아와 그녀의 수발을 받다가 진즉에 별세했다.


이쯤 되면 주작 아니냐는 소릴 들어도 할 말은 없다만, 사실이다. 내가 시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병원의 기나긴 대기 시간에 그녀에게서 주워들은 맹락없고 부정확한 모든 이야기를 대략적으로 짜깁기 한 결과물이다. 더 심도 있고 디테일한 개인사는 살짝 접어두었다. 그리고 부양의무자의 존재 유무가 생활수급자 지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은 과거의 일이고 최근에는 좀 바뀌어서 반드시 불가한 일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자세한 조건은 근처 주민센터에 문의하자.


폭발한 나는 왜 이 모든 무게를 당신과 나 우리가 지어야 하며 당신의 여동생도 무관하지 않으며 당신의 어머니 또한 나보다도 그녀와 더 가까운 사이임을 노골적으로 지적했다. 내놔도 팔리지도 않을 집안 땅, 얼마 안 되는 할머니의 재산, 그따위 것이 이 모든 일의 대가라면 난 덕 본 것도 없고 앞으로도 필요 없으니 다 집어치우라며 화를 냈다. 당신이 시간이 없을 때 당신의 배우자로서 내가 그 짐을 나눠갖는 것을 기껍게 여기겠다. 그런데 왜 당신이 시간이 있는 순간에도 나를 끌여들이느냐 당신 눈에는 친정엄마에게 애를 맡기고 시댁일을 보러 다니는 내가 당연한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느냐 우리 엄마는 무슨 죄냐

시댁 문제 때문에 친정에 영향을 미쳐야 한 다는 사실 또한 내게는 수치였다. 부모님을 속상하게 만든 것 같아 부끄럽고 속이 상했다.

당연한 분노를 뱉는 아내를 보며 그는 그제야 속내를 털어놓았다.

며느리와 사이가 안 좋았던 그녀는 자신의 손주들 앞에서도 평탄하지 못한 고부관계를 보임에 거침이 없었고-그 모든 것을 지켜보며 자란 손주들이 그녀를 좋게 보았을 리 만무했다. 남편에게 그녀는 지켜야 할 집안 어른이자 엄마를 힘들게 만드는 불편하고 싫은 가족이었다.

남편은 사건-할머니의 암 선고- 이후로 내내 자신과의 싸움에 빠져있었다.

그는 이 모든 일이 자신에게 넘어온 것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 피곤함을 느꼈다. 집안의 장남으로서 책임감과 손주로서 할머니에 대한 소박한 동정 그리고 어딘가에서 이 모든 난장을 지켜보고 계실 아버지의 시선에 대한 죄책감. 그 모든 범벅을 뒤집어쓴 것이 내 남편이었다.

그래서 내게 기댄 것이다. 보고 있으면 자꾸 그녀에게- 자신의 할머니에게 화가 나니까. 바람나서 자식을 고작 하나 두고 떠난 할아버지에게 화가 나니까. 먼저 가버린 아버지에게 화가 나니까. 그리고 젊은 나이에 남편의 병시중을 드느냐고 대학병원이라면, 병자 수발이라면 치를 떠는 자신의 어머니를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화를 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나는 그가 불쌍해서 울었다. 그저 의무처럼 병원과 친정과 집을 오가며 다정한 손주며느리 흉내를 내고 의사의 설명을 듣고 아무 서류에나 서명을 해대던 사람이 나였다. 그깟 일이 약간의 체력과 나의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었다면 아무 상관없는 자신의 아내가 그 모든 일을 처리함을 핸드폰 하나로 전달받으며 일을 한 남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안심이 있었을 것이고, 아마 죄책감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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