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희 Feb 25. 2024

24.02.06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겠다 마음을 먹은 지 4년이 되는 해이다. 어느 날과 똑같이 덕양구에 있는 작업실로 출근을 했다. 밖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다. 흐린 날씨 탓인지 늦잠을 잤다. 7일 내내 작업실로 출근하고 그중 하루이틀 약속을 다녀오거나 하면 꼭 몸에 병이 난다. 몸이 무거워지고 일어나기 힘들어진다. 점점 체력이 떨어지고 있다.


아무튼 느지막이 작업실에 출근을 하고 요 며칠 잠이 안 와 마시지 않던 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마시고 어제 그리다 만 그림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문득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다. 매일매일 그림 그리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할 일이 참 많다. 24년이 시작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 홈페이지 업데이트를 하지 못했다. 업데이트를 해야지 하면서 문득 지나간 날들의 작업을 훑어본다. 12년 13년 14년 도의 작업을 보며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 이렀구나 싶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만큼 겁이 없었다. 조금은 막무가내였고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 주체 없이 흘러내리던 시절이었다. 내 작업과 글들 모든 것들이 홈페이지에 남아있다. 지금도 그때도 작업이 내 인생의 전부였다. 인생에 큰 방황의 시기가 왔던 때 나는 작업을 그만두고 도망쳤다. 생각해 보면 20대의 나는 현실에서 도망을 잘 치던 사람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핑계로 시도 때도 없이 휴학을 했고 여행을 갔다. 덕분에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까지 여행은 원없이 다녔다. 학부생 때도 그리고 대학원을 다닐 때도 방황을 핑계 삼아 휴학으로 도망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정말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 오자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쳤다. 회피하고 도망친 대가가 무엇인지 회피한 만큼 얼마나 큰 책임을 져야 하는지 경험으로 이제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돌고 돌아 지금의 내가 있다. 도망쳤던 시기는 내게 부끄러운 시간들로 남아있다. 그 당시 만나게 된 친구들과는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만날 때마다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하지만 내가 이 시기를 말하는 유일한 때이다. 나를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무엇을 겪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저 회사에 다니다 다시 작업을 하는구나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부끄러워 숨기고 싶었던 과거.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말은 정말이다. 인생을 살며 시간이 해결해 준 많은 것들이 있다. 과거의 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부끄럽지만 이것 또한 내가 선택한 것이었고 그 결과가 지금의 나라는 것을 깨우치게 해 준다. 며칠 전 전시 때문에 작업에 대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인터뷰를 하며 여러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그러면서 내가 내 과거 어느 한 부분을 계속 숨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끄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이제는 그만 숨기고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나를 받아들이고 살자. 내 작업의 흐름과 내 생각의 흐름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앞으로도 계속 작업하며 그 작업을 전시하고 또 내가 어떠한 생각들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사람인지 관객들에게 계속해서 이야기하며 살아가야 하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